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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야 NAYA Aug 22. 2021

덕질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미처 몰랐잖아요

14년차 2PM 팬의 이야기 (2)

- 14년차 2PM 팬의 이야기 (1)에서 이어집니다. 


그 시절 사랑하던 잡지들

닉쿤의 미모에 반해 ‘2PM을 좋아하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정작 나는 ‘덕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꼬꼬마 어린이었다. 컴퓨터는 어른들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했고, 핸드폰은 dmb도 되지 않는 슬라이드 폰인 시절이었기에 온라인 덕질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2PM 관련 카드나 잡지를 사 모으는 것밖에 없었고, 나는 그저 열심히 그들의 잡지를 사 모았다. 


(여담으로, 우영과 준호의 이름을 반대로 적어놓은 한 잡지 인터뷰 덕분에, 한동안 우영의 이름을 ‘준호’로, 준호의 이름을 ‘우영’으로 알고 있기도 했다.)      


핸드폰 배경화면도 닉쿤 사진으로 바꾸고, 비밀번호도 2PM 데뷔일로 저장하고, 필통에 2PM 멤버들의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고 다니긴 했지만, 이때 까지만 해도 2PM의 진정한 팬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2PM을 좋아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2PM에 ‘진심’이 된 것은, 하트비트 활동 정도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돌 예능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레전드 방송, 와일드바니

‘와일드바니’, ‘떴다그녀’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헐랭하고 친숙한 동네 오빠같던 그들이, 무대에만 오르면 눈빛이 돌변해 공연을 장악해나가는 모습이 멋있었다. 화면 너머까지 땀 냄새가 느껴질 정도로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서로를 친구를 넘어선 동반자로 대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리더가 조금은 억울한 구설수에 휘말리고, 한국을 떠나 여섯이서 무대에 올랐을 때도 묵묵히 최선을 다해 노래하는 모습이 고마웠다.


초등학생에게 가수는 ‘무대에 서는 사람’이었고, 그들은 늘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무대를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 하나는 그 당시의 내가 2PM을 좋아할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리더의 탈퇴 소식이 전해지고, 황당을 넘어서 당황한 팬들을 위해 회사는 간담회를 개최했다. 그 모든 비난과 루머 앞에 멤버들을 세웠다. 간담회에서 2PM 멤버들은 리더와 더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고, ‘회사의 공식 입장과 달리 멤버들은 리더의 편일 것’이라고 믿던 팬들은, 일제히 등을 돌렸다. 


등을 돌린 후, 다시 2PM에게로 몸을 돌려,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칼날을 던지기 시작했다. 세상은 노력과 최선만으로 살아낼 수 없는 곳이었다.      


6명의 새로운 출발이 되었던 3집 앨범

형언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무수히 많은 루머와 무수히 많은 욕설이 쏟아져나왔다. 멤버들의 사진을 불태우고, cd를 버리고, 포스터를 난도질한 인증 글이 끊임없이 올라왔으며,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새끼를 치듯 끊임없이 번식해나갔다. 


연예 기사 댓글에 필터링이 없던 시절이었고, 어린아이였던 나는 정제되지 않은 분노를 날것 그대로 섭취했다. 불필요한 소음을 무시하지 못하는 어린 나이였고, 덕분에 2PM을 향한 부당한 분노를 오롯하게 받아들이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2pm은, 멈추지 않았다. 늘 그랬듯 그저 묵묵히 무대에 올랐다. 꾸준히 예능에 나왔고, 꾸준히 음원을 발매하고, 꾸준히 무대에 올랐다. 꾸준함은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다. 일본 진출과 동시에 오리콘차트에 이름을 올렸고, 일본 데뷔 2년 만에 ‘꿈의 무대’라 불리는 도쿄돔에 입성했다. 


일본 각지를 돌며 수많은 아레나 투어를 거듭했으며, 2PM이 아닌 솔로로서도 아레나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다시 한번 정상의 자리에 올랐고, 한국에서의 도전 역시 멈추지 않았다.      


따로, 또 같이 활동하는 내내 2PM 멤버들은 늘 ‘2PM 짱팬은 2PM’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개인 화보 촬영을 할 때나 뮤지컬 무대에 섰을 때나, 예능에 출연했을 때나, 심지어 배우로서 시상식에 참여했을 때도 2PM 멤버들은 늘 자신을 ‘2PM의 누구’라고 소개했다. 


개인 활동은 팀을 빛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자신의 연예계 활동은 오로지 2PM을 위해서라고 말하며 말이다.      


군백기 이후 첫 완전체 회동

쉽지만은 않았던 2PM 팬으로서의 삶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2PM을 더욱 소중히 여겼던 멤버들의 진심. 내가 시간과 감정을 쏟는 만큼, 자신의 모든 걸 2PM에 쏟는 멤버들의 열정. 그것이 나를 2PM으로 이끌었고, 핫티스트로 남게 만들었다. 


2PM의 팬으로 살았던 시간을 오롯한 ‘꽃길’이었다고 웃으며 말하기에는 그동안 걸어온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렇다고 ‘가시밭길’이었냐 묻는다면, 또 그렇다고 하기에는 지난 여정이 그렇게 아프지만은 않았다.      


2PM을 좋아해 온 시간은, 그저 멤버들이 먼저 걷는 길을 따라나서는 나날이었던 것 같다. 꽃잎이 흩뿌려져 있을 때는 멤버들이 뿌려주는 꽃내음을 만끽했다. 가시밭길이 나올 때는 멤버들이 먼저 밟아 평평해진, 그다지 따끔거리지 않은 가시밭길을 그저 뒤따라 걸었다. 


온갖 넝쿨로 길이 막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에 휩싸였을 때도, 어느새 가지치기를 완료하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멤버들의 뒤를 그저 따랐다. 그렇게 걸으며 충분히 행복하고, 충분히 벅차고, 충분히 즐거웠다. 그렇게 2PM의 팬이 되었고, 팬으로 남게 되었다.




- 14년차 2PM 팬의 이야기 (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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