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차 2PM 팬의 이야기 (3)
준호의 집이 단순한 공간이 아닌,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사라지는 유행이 아닌, 단단한 희망으로 남을 수 있도록.
근 몇 년간 2PM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가 가장 자주 들은 말은 "2PM 아직 해체 안 했어?"였다. 그러면 나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해체는커녕 매우 활발히 활동 중이며, 따라서 '아직' 해체를 안 했냐는 질문은 굉장히 옳지 못하다"라고 열변을 토하곤 했다.
그러던 주변의 공기가 달라지기 시작한 게 언제쯤인지.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긴 친구에게, 직장 동료에게, 학교 친구에게 ‘우리집 영상을 잘봤다’며, ‘준호가 그렇게 멋있더라’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팬들과 오래된 팬들의 온도차는 신선하고 새롭고 그만큼 재미있지만, 뭐니 뭐니해도 준호가 자타공인 FOX 대접을 받는 현상이 가장 신기했다. 그동안 내가 봐온 준호의 이미지는 Fox가 아닌 Cow 쪽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무대 위에서의 끼부림이 남다르긴 하지만, 그 끼부림조차 인생에 도가 튼 COW의 몸짓이라고 여겨 왔다. 핫티스트에게 준호는 여우보다는 미련한 곰, 혹은 못 말리는 소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준호의 가수 생활은, 드라마도 이렇게 쓰면 너무 극적이고 뻔하다고 욕먹을 것 같은 결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준호는 슈퍼스타 K 시즌 1보다 3년이나 앞서 방영되었던,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초(?)격인 슈퍼스타 서바이벌에서 6,500대 1의 경쟁을 뚫고 JYP 연습생으로 발탁되었다.
그렇게 힘들게 입사한 JYP였지만,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제명이 결정되었고, 피나는 노력으로 슬럼프를 극복해 극적으로 데뷔조에 합류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꽤 감동적인 성장물 한 편이 뚝딱 완성되지만, 준호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될 뿐이다.
2PM은 데뷔와 동시에 명실상부 최고의 아이돌이 되었지만, 준호의 이름 앞에는 ‘인기 그룹의 비인기 멤버’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예능에서 준호의 모습을 찾아보는 건 힘들었고, 준호가 말하는 모습이 방송되는 건 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광고와 화보에서는 늘 뒷줄을 차지했고, 가수 비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황당하게 욕을 먹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준호는 '아직 자신의 계절이 오지 않았을 뿐이라 생각한다고, 자신의 계절을 기다리겠다’고 해맑게 미소 지으며 연습에 몰두했다. 그때 준호의 나이가 고작 스물, 스물하나였다.
잘나가던 팀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준호는 ‘진심과 진실은 통한다’는 말만을 묵묵히 내뱉었다. 다른 멤버들이 그랬듯, 과묵하게 주어진 일을 해냈다.
무대 위에서 텐미닛(무대가 진행되는 10분간 어떤 응원도, 함성도 내지르지 않고 침묵으로 시위하는 것)을 당했을 때도, 출연하는 예능과 광고가 줄어들었을 때도, 1위 후보에 오르는 횟수가 줄어들었을 때도, 그는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해내며 무대에 올랐다.
일본에서 2PM이 큰 인기를 얻으며 다양한 기회가 생기고, ‘감시자들’의 다람쥐 역으로 연기에 발을 내딛은 이후부터 준호는 본격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날아다니는 COW’의 역할을 해내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콘서트 투어를 하며 동시에 솔로 앨범-심지어 준호의 자작곡들로 가득 채워진 앨범-을 발매하고 동시에 한국에서는 드라마를 촬영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한 번에 하나도 해내기도 힘든 일들을, 준호는 지친 기색 없이 동시에 거뜬히 해냈다. 몸이 고장 나는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대중 앞에 서고 팬들 앞에 섰다.
혹시 준호만 하루를 48시간으로 사는 건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들기 시작할 때쯤 군대가 준호를 불렀다. 10년 넘게 집에 들어갈 시간도 없는 생활을 했지만, 군대에 가서는 좀 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안도했다. 그가 군대에서 쉼표를 찍고, 쉼표의 편안함에 매혹되어 그 쉼표가 조금 긴 휴식이 된다 해도 이해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준호가 군대에서 지난날을 돌아보았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당연히 ‘왜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렸나, 조금 쉬엄쉬엄 살 걸 그랬다’라는 식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던 것 같다. 근데 이게 웬걸.
이 군인 아저씨는 ‘군대에서 지난날을 돌아보니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쉽다’라는 말부터 꺼냈다. ‘제대하면 더 열심히 달릴 것’이라는 포부와 함께 말이다.
웃음이 나왔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도 절로 나왔다. 입대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편해진다 해도 절대 2PM과 핫티스트라는 이름 앞에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지 않겠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여러분의 10년이니까'였던 사람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에게, 그리고 핫티스트에게 이준호는 무디고 미련한 소였다. 무대 위에서 내뿜는 매력은 계산된 제스쳐도 아니었지만, 애초에 주어진 끼도 아니었다. 준호의 매력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해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빛이었다. 그런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근거 있는 여유, 그리고 이유 있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광채.
우리집 준호가 워낙 화제가 되긴 했지만, 사실 입대 직전 준호의 인기 역시 만만치 않았다. 드라마 김과장의 성공으로 유입된 팬덤도 많았고, 일본에서의 솔로 활동도 꾸준히 잘 되었고, 성공적으로 솔로 콘서트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렇게 모든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입지를 다지고 군대에 들어서는 준호를 보고 나는 ‘지금에서야 준호의 계절이 왔구나-’ 생각했었다.
군대에서 역주행으로 더욱 강렬한 돌풍이 이는 것을 본 뒤에야, 준호의 계절은 이미 계절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되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지만 말이다.
겨울이 되면 사라지는 여름이 아니라, 가을이 되면 찾아보기 힘든 봄이 아니라, 모습을 달리할 뿐 언제나 사라지지 않을, 바람이, 햇볕이 되었다는 걸, 준호의 지난 10년은 이미 그런 단단한 약속을 만들어냈다는 걸 말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준호의 집 주소를 궁금해해도, 아마 앞으로도 준호의 집에서 준호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무대 위에서는 요염한 폭스처럼, 무대 아래에서는 우직한 소처럼, 스크린 안에서는 용감한 카멜레온처럼, 스크린 밖에서는 또다시 우직한 소처럼 연습하는 준호 덕분에, 준호는 앞으로도 집을 자주 비울 거다.
그래도 계속해서 많은 사람이 준호의 집을 찾아주면 좋겠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달리고 달리다가, 길이 없으면 굴착기로 땅을 파서라도 달려가는 준호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 문을 열었을 때 수고했다고 등을 두드리는 친구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준호의 집이 단순한 공간이 아닌,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사라지는 유행이 아닌, 단단한 희망으로 남을 수 있도록. 우리집 준호가 아픔과 슬픔, 힘듦을 모두 끌어안고 피어오른 찬란한 내일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