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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야 NAYA Mar 14. 2022

10년 만에 종영되는 한 편의 드라마

뉴이스트 해체까지, 14일간의 일기

2012년 3월 15일,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 종영하던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다섯 명의 소년이 뉴이스트라는 이름으로 대중 앞에 나선 날이기도 했다. 앞으로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감히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들의 나이, 고작 열여덟, 스물이었다.      


신사의 품격, 응답하라 1997, 넝쿨째 굴러온 당신, 각시탈, 더킹투하츠, 옥탑방 왕세자,,, 유독 볼 드라마가 많았던 2012년에 시작해 2022년이 되어서야 끝을 맺게 된 뉴이스트의 이야기에는 유독 서사가 많았다. 부침도 많고, 시련도 많고, 그만큼 기쁨과 반전의 크기도 컸다.      


뉴이스트가 데뷔 이후 5년간 (끊임없이 앨범을 내고 활동을 했음에도) 무명에 가까운 서러운 시절을 보냈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유명한 이야기다. 그 이후, 연습생의 신분으로 ‘프듀’에 출연해 엄청난 화제성을 얻고, 보이그룹의 선두주자 대열에 합류하는 유명 아이돌로서의 시간을 보낸 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그 후로 이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앤딩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이 나올 차례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꽉 막힌 결말로 드라마를 마무리 짓고 싶었나 보다.      


지난 3월 1일, 뉴이스트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해체를 선언했다.      




22년 3월 1일 (화)      

1, 2, 3, 4, 5, 6, 7, 8, 9 

그다음에 올 숫자는 당연히 10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믿어온 바로는, 분명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뉴이스트 멤버들은 9 다음의 숫자로 10이 아닌 0을 선택했다. 나의 20대를 꽉 채웠던 아이돌 그룹 뉴이스트가, 어제 해체를 선언했다.      


2월의 마지막 날, 삼일절을 하루 앞둔 월요일. 평소보다 조금 바빴던 것을 제외하면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주관하는 어느 인터뷰를 참관하고 있었다. 인터뷰 중간에 잠깐의 휴식 시간이 생겼고, 습관처럼 각종 SNS에 접속해 피드를 훑었다. 트위터에 접속해 스크롤을 내리다가, 문득 이런 게시물을 발견했다. 뉴이스트 전속 계약 종료 안내.      


심장이 철렁인다는 게 이런 말이었구나, 무방비 상태로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글자를 내려다보다가, 서둘러 공지에 접속했다. 재계약 불발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의 걱정은 ‘몇 명이 플레디스와 재계약을 했나’에 있었다.      


2PM의 경우만 보아도, 소속사가 다르니 단체 활동에 현실적인 제약이 생기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모든 멤버가 계약을 종료했나? 멤버들 소속사가 다 흩어지면 앞으로 뭉치기도 어려울텐데’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읽어내려간 글은 믿기 힘든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요약하자면, 뉴이스트라는 그룹이 활동을 마무리한다는 것이었다. 재계약이 문제가 아니었다. 뉴이스트 팀이 종료된다는 것이 공지의 핵심이었다. 해체라는 선택지는 한 번도 예상해보지 못했다. 뉴이스트는 특별하니까. 러브는 뭔가 다르니까. 뉴이스트와 러브 사이에는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사연이 가득하니까. 그러니까 뉴이스트의 시간이 멈춘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경우의 수였다.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오후를 보냈다. 여기서 이렇게 뉴이스트를 포기한다고? 내가 뉴이스트를 소중히 여긴 만큼 멤버들은 뉴이스트가 소중하지 않았던 건가? 아니 그런데 갑작스레 이런 결정을 한 데에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혼란스러웠다. 서운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온 마음 다해 응원하던 가치가 한순간에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저녁, 멤버들의 손편지가 업로드되었다. ‘우리 어쩌면 다시 만날 수도 있어요’라는 감성적인 희망 따위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담백하고 깔끔한 편지였다. 뉴이스트로서 보내는 마지막 인사. 공손하지만 단호한 마무리. 일말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은 마지막 감사. 편지를 몇 번이고 읽어 내려가는데, 왜인지 눈물이 났다. 하루아침에 그들을 잃었구나.      


밤늦게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눈꺼풀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처음 보는 내 새끼’였던 아론에 대한 첫인상이 떠올랐다. 뉴이스트W의 첫 팬미팅을 보기 위해 화정체육관으로 향하던 언덕이 생각났다. 매주 밤도깨비를 챙겨보고 사서 고생을 본방사수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뉴이스트W의 마지막 공연과, 뉴이스트로서 만난 첫 콘서트가 떠올랐다. ‘여기 계신 분들 다 러브라고 불러도 되냐’고 묻던 목소리가 생각났다. 그만큼 힘들었던 시간들이 스쳐갔다. ‘신화 선배님같은 장수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다짐하던 목소리도 생각났다.      


너무 예상하지 못했던 선택이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22년 3월 2일 (수)       

앨범 발매 공지가 떴다. 앨범이라니. 3월 15일에 마지막 곡을 발매한다는 공지를 봤을 때, ‘이제는 안녕’ 뭐 대략 이런 내용을 담은 디지털 싱글 하나를 발매하겠거니 했다. 그런데 앨범이라니.      


그들은 대체 언제부터 이별을 준비했다는 말인가. 해체 앨범을 준비하면서, 어떻게 그 오랜 시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팬들과 대면할 수 있었단 말인가. ‘The Black’ 콘서트가 마지막 콘서트였을 것을, 작년 연말 공연이 마지막 연말 무대였을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활동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나름 멤버들에는 준비할 시간이 많았던 끝이었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그 오랜 기간 몰래몰래 멀어지고 있었다는 생각에 서운함도 커졌다. 일단 앨범을 주문했다. 반가운지 서운한지, 내 감정을 알기 힘든 하루였다.      



22년 3월 4일 (금)       

컴백 타임테이블이 떴다. 마지막 앨범을 위한 카운트다운이라니. 평소라면 손꼽아 기다렸을 내일이지만, ‘포토 릴리즈’와 ‘트랙리스트’, ‘뮤비 티저’ ‘곡 발매’까지 빼곡이 적힌 날짜를 해체 카운트다운으로 봐야 할지, 컴백 카운트다운으로 봐야 할지 몰라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 후에는 버스 광고 안내문이 올라왔다.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는 시내버스에 10주년 앨범 홍보물을 부착했다는 안내였다. 각 멤버들의 얼굴이 붙은 버스들은, 각 멤버들의 상징 방향이 담긴 지역을 돌아다닐 예정이었다.      


이쯤 되니 서운한 감정보다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커지기 시작했다. 10년의 아이돌 여정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앨범의 타임테이블. 평범하지는 않은 끝인 건 분명했다.      



22년 3월 5일 (토)       

첫 포토 이미지가 공개되었다. 뉴이스트의 데뷔 때 그러했든, 리더 JR의 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중세시대 귀공자스러운 옷을 입고, 활과 화살촉을 들고 있었다. 뉴이스트의 정체성이었던 ‘기사’ 세계관의 연장선으로 보였다. 사진은 정말 멋있었지만, 10주년 앨범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해체 앨범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아련한 컨셉으로 사진을 찍었을 법도 한데, 뭐 하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10주년이었다.      


3월 15일은 뉴이스트의 데뷔일이다. 3월 14일은, 이제 데뷔일 전날이 아닌 해체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뉴이스트의 10주년 앨범은 해체 다음날인, 3월 15일에 발매된다. 이 날은 그들의 데뷔일이기도 하다. 나는 이들의 마지막이 여전히 복잡하다.      


뉴이스트 JR이 김종현으로, 뉴이스트 백호가 강동호로, 뉴이스트 렌이 최민기로, 뉴이스트 아론이 곽아론으로, 뉴이스트 민현이 황민현으로 불릴 시간이 이제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22년 3월 9일 (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지난 5일간 모든 멤버의 오피셜 포토가 공개되었다. 모두 활과 화살을 소품으로 늠름하고 고귀한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민현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공지가 떴다. 다른 뉴이스트 멤버들과는, 접촉이 없었다고 한다.      



22년 3월 11일 (     

또다시 금요일이 돌아왔다. 트랙리스트가 공개되었는데, 재녹음한 노래가 8곡, 신곡이 2곡이었다. 1번 트랙이 ‘여보세요’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 신곡 타이틀 제목이 ‘다시, 봄’이라는 것도 곱씹어 보게 되었다. 겨울이 지나 봄이 왔다는 의미이자, 다시 만나기를 의미하는 곡이려나. 두 곡의 신곡을 어떤 가사로 채웠을까. 이제는 그들의 마지막이 마냥 서운하지 않다. 궁금하고 설레는 마음도 크다.      



22년 3월 12일 (     

프리 리스닝이 공개되었다. ‘다시, 봄’ 가사에 재회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있을지 궁금했는데, 다행히(?)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가 담겨있는 듯 했다. 이럴 거면 왜 그리 매몰차게 해체를 선언했나 울컥하는 마음이 살짝 올라왔지만,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를, 마지막 노래를 얼른 듣고 싶다. 마음껏 듣고, 마음껏 만끽하고 싶다. 우리 모두의 마지막을.      



22년 3월 14일 (     

그렇게 오늘이 되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유독 마음이 차분했다. 지난 2주간 나름의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해체일이 되자 마음이 다시 붕 떴다. 내일이 되면 그룹 뉴이스트는 없다. 더이상 그들의 음악을 들을 수 없다. 더이상 그들이 함께하는 무대를 볼 수 없다. 이 단순한 사실이 하루종일 머릿속을 맴돈다.      


아론의 인스타에서 ‘뉴이스트’라는 소개 글이 없어졌다고 한다. 포털 사이트에서는 ‘플레디스’소속이라는 글자가 사라졌다고 한다. 정말 끝이구나. 그런데 나는 누구와 이렇게 예정된 이별을 맞이한 적이 있었던가? 지금까지의 모든 헤어짐은 헤어진 지도 모른 채 맞이하게 되곤 하지 않았나? 우리는 이날 헤어질 거야. 이렇게 예고를 받고 준비한 이별이 있었나? 없었던 것 같다. 99년 12월 31일에 지구 종말을 하루 앞뒀다고 믿은 사람의 심경이 이랬으려나, 싶다.      


뉴이스트가 무명 아이돌로 견뎠던 5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중학생이던 내가 소맥을 마시는 대학생이 되기까지 걸린 만큼의 무게와 비슷하겠지. 뉴이스트가 유명 아이돌로 지냈던 5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여전히 견뎌내는 시간이었을까? 어쨌든 그 5년은, 기말고사가 끝난 후 프듀를 몰아보던 내가 직장인이 된 만큼의 깊이를 가진 시간이다. 결코, 마냥 가볍거나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거다.     


이제 나는 준비를 마친 것 같다. 후회되는 것은 없다. 열심히 그들을 응원했고, 그들의 성장을 지켜봤다. 아 한 가지 후회되는 게 있긴 하다. 작년 말에 열린 콘서트를 마냥 즐기지 못했던 것. 그날은 개인적으로 꽤 힘든 날이었다. 


꿈꾸던 기업의 면접을 볼 기회가 생겨서, 일주일 동안 날밤을 새며 이를 준비했다. 7시에 퇴근을 하고, 다음날 새벽까지 면접 준비를 하고, 아침이 되면 다시 출근을 하는 스케줄이었다. 면접이 끝난 후 대차게 망했다는 느낌을 받았고, 슬퍼할 겨를 없이 짬을 내 기존 업무를 처리한 뒤 급하게 콘서트장으로 향했다. 콘서트 시작은 7시. 종합운동장역에 도착한 건 6시 53분쯤이었다. 더 일찍 출발 했어야 하는데, 멍하니 업무를 하다가 시간을 놓쳤다. 바보같이.      


공연장까지 열심히 뛰어가다가, 쓰러질 것 같이 어지러워서 걸음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몇 시간 잠을 자지 못한 피로가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쓰러질 바에는 콘서트에 늦겠다는 생각으로 그냥 천천히 걸어갔다. 다행히 방역패스 검사로 공연 시작 시간이 지체되었고, 무사히 공연장에 들어설 수는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각종 공연을 다니던 나에게, 코시국은 얼마나 잔인했던가. 정말 오랜만에 보는 대형 경기장 콘서트였는데 (정말 행복하고 반가웠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아까 면접에서 바보같이 내놓은 답변과, 날카롭게 들어오던 질문들이 계속해서 생각났다. 댄스곡이 울려 퍼지는 데도 눈물이 삐질삐질 새어 나오려 했다.      


결국,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청 울었다. 평소 같았으면 어느 노래가 어땠고, 어느 무대가 어땠고, 멤버들이 어땠고- 신나게 떠들어대며 그 여운을 간직했을 텐데, 면접을 망친 게 너무 서러워서 계속 면접 이야기만 해댔다. 그게 마지막 공연이라는 걸 알았으면, 마지막으로 보는 뉴이스트의 모습이라는 걸 알았으면, 한순간이라도 더 눈에 담고 귀에 담으려 노력했을 텐데. 정말. 정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다.      


그래도, 이렇게 마음껏 후회하고 추억할 시간을 줘서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헤어짐을 말해줘서, 그들에게 정말 고맙다. 




뉴이스트라는 이름에는 사연이 많다. 

그들의 이름에는, 끈기와 노력, 우정과 용기, 음악과 춤, 겸손과 도전, 그리고 사랑이 들어있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먼 훗날 우연히 뉴이스트 멤버를 마주치게 된다면 나도 모르게 홀린 듯 이렇게 고백할 것 같다. 저 뉴이스트 팬이에요. ‘팬이었어요’가 아니라, 여전히 그 드라마를 간직하고 있는 ‘팬이에요’라고 말이다.      


Needle and Bubble. 

방울처럼 몽글하고 기분 좋은 순간들이 모여 지난 10년을 채웠다. 때로는 바늘같이 날카로운 현실이 행복한 여정을 방해했지만, 특유의 음악과 에너지로 그들은 방울방울 피어오르는 우리의 순간을 지켜냈다. 이제는 그 이름이 없다. 그렇다 해도 괜찮다. 그들의 음악이 가져온 위로, 그들의 성장이 보여준 희망, 그리고 그들의 우정이 보여준 믿음은 이미 나에게 충분히 녹아들었다.      


행복한 10년이었다. 뉴이스트에게도, 부디 찬란한 시간이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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