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이 왔다 : Episode 2
우리는 젊음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젊지 않다고 생각할 뿐.
요즘 SNS에서 ‘핫’한 아이템 중 요상한 콘텐츠가 하나 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이목을 끌 만한 ‘B급 감성’도, 유튜브의 인기 영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화려한 편집기술도 없는데 라이브 방송 실시간 동시 접속자 수가 2만명을 넘어서며 멈추지 않는 질주를 거듭하고 있거든요. 혹시 어떤 콘텐츠인지 눈치 채셨나요? 정답은,,,
바로 SBS의 가요 프로그램인 ’인기가요'입니다! 매주 일요일이면 만나볼 수 있는 평범한 음악 프로그램일 뿐인데, 왠지 무대 위의 가수들이 조금 낯섭니다. 방탄소년단, 트와이스와 같이 ‘요즘 인기 있는 아이돌’이 아닌, 1990년대와 2000년대 가수들의 무대를 송출하고 있거든요. 이를 일컫는 별명은 더욱 더 요상한데, 이름하야 ‘온라인 탑골공원’
종로구에 위치한 탑골공원은 어르신들이 주로 찾는 장소인만큼 ‘노인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한데요, Z세대의 사람들이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문화를 추억하는 스스로를 ‘늙은이’라 칭하며 유튜브로 집결하는 것이었죠. 이와 같은 현상을 단순히 ‘90년대의 노래가 그리운 2030의 유행’이라고 파악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단순히 그 시절의 노래가, 그 시절의 가수가 그리운 것을 넘어, 현재 90년대생들의 키워드가 ‘늙음’그 자체라고 생각하거든요.
술자리에 가면 ‘이제 우리는 늙었다.’라는 말이 술잔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맴돕니다. 대학 강의실에서도 누군가 ‘곧 20학번이 들어온다’는 말을 꺼내면, 그 순간 ‘우린 늙었어.’라며 일동 합창하죠. 1학년 2학기를 다니던 시절, 반 년 후에 들어올 후배들을 떠올리며 ‘나의 젊은 날이 벌써 끝났구나’ 등의 생각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푸릇푸릇해야만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는 새내기 시절 (대충 1학년 1학기)을 제외하고는 늘 ‘늙은 감성’에 뒤덮여 살았던 듯 합니다.
고작 20대에 뭘 그리도 현실에 급급하냐, 도대체 왜 청춘을 만끽하지 않느냐고 질책하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으면서도 (종종 같은 이유로 스스로를 질책하면서도) 여전히 젊음을 만끽하는 것은 무모한 사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애들은 대학에 입학한 순간부터 학점과 스펙 관리를 한다는데[i], 1학년 때 세상 열심히 놀러 다닌던 나는 ‘그나마 청춘을 즐긴 편’이라고 합리화하는 것이 제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젊음이기 때문입니다.
20대 동년배[ii]들이 10대이던 그 시절, 어른들은 늘 말했죠. ‘대학만 가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 그런데, 대학에 와서 보니, 세상은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더군요. 청춘을 만끽하고, 자주 실패하고, 또 가끔은 성공할 때까지, 우리의 성장을 묵묵히 응원해줄 정도로 자비롭지 않더군요.
나의 적성을 파악하는 일은 그저 CPA와 행정고시, 공무원과 로스쿨, 외무고시와 취준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결정하는 용도로 쓰이고, 높은 꿈과 거창한 목표는 오롯이 자소서에서 거짓으로 꾸며졌다가 분쇄기에 갈리는 처지가 되어버린 요즈음. 한치의 실수는 용납되지 않고, 잠깐의 휴식은 영원한 마침표가 될까 두려운 요즈음, 20대는 더 이상 꿈을 가질 체력이 없고, 청춘을 즐길 여력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 자주 듣던 음악을 즐기며 ‘요양’ 하기 위해 ‘온라인 탑골공원’에 살며시 모여드는 수많은 ‘늙은 20대’들의 웃픈 자조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아련한 향수가 마냥 즐겁게 느껴지지만은 않습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려면 20억’이라는 현실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요즘 애들’은 세상의 부침 속에서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렸나 봅니다.
[i] 동기들은 이미 1학년 여름방학 때 회계 공부를 시작해서, 나는 2학기 때 열린 회계학원론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어. 2학년이 되니까 친구들은 본격적으로 CPA 준비 한다고 휴학했는데, 나는 한심하게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 2학년 후배의 말, 2019
[ii] ‘내 동년배들 다 00한다.’에서 비롯된 유행어!
본 콘텐츠는 90년대에 태어난 개인이 보고 들은 바를 바탕으로 작성하는 글이며, 모든 20대를 대변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