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저자 유발 하라리는 20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사와 생물학의 관계,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의 본질적 차이, 역사의 진보와 방향성, 역사 속 행복의 문제 등 광범위한 질문을 주제로 한 연구를 하고 있다. (저자 소개 중)
두께에 겁내지 마세요!
우선 본격적인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들께 두께에 압도 당하지 마시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읽으며 지내는 내게도『사피엔스』는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 두께를 자랑하는데다가 중간고사 기간까지 겹쳐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느리게 읽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흐름이 끊기거나 내용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없었다. 유발 하라리는 정말로 글을 쉽게 잘 쓴다(고 정평이 나 있다). 물론 가끔은 예시나 비유 때문에 내용이 산으로 가는 일도 있으나 과하지 않은 선에서 적재적소에 예시를 잘 배치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쉽게 읽히더라도 두꺼운 책은 절대적으로 할애되는 시간의 양이 많은 만큼 어지간히 내용이 좋지 않아서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출간 이후 전세계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으며 이후 몇 년 간 베스트셀러로 읽히고 있다. 남들 다 읽으니 읽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 우리 인류가 반드시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들을 유발 하라리는『사피엔스』를 비롯한 인류 3부작(『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의 인류를 위한 제언이 충분히 설득력 있었기에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유발 하라리의 다른 저작을 읽어보지 않았기에 그가 그리는 방대한 서사가 어디로 향하는지 예리하게 집어낼 수는 없지만『사피엔스』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호모 사피엔스)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일 것이다. 어쩌면 이 질문은 인류가 존재했던 동안에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져온 것일지도 모른다. 고대 희랍에서는 인간을 둘러싼 만물의 근원을 고민했고, 이후 존재의 의미를 헤아리고 싶었던 사람들이 '종교'를 만들어냈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존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과학'이라는 열쇠를 선물해주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호모 사피엔스에게 남은 질문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일 것이다.
저자는 인류의 발자취를 인지혁명, 농업혁명, 종교와 자본에 기반한 제국의 번영, 이후 과학혁명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각 단계마다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 변화를 겪었고, 지금 우리는 제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또다른 변화를 앞두고 있다. 이제 각 단계를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인지혁명
인류가 처음부터 지구의 지배자였던 것은 아니었다. 선사시대의 인류는 동굴에 숨어 살며 풀떼기로 연명하다가 가끔 어쩌다 사냥에 성공했을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과거 인류가 우리 호모 사피엔스를 포함해 적어도 여섯 종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게 되었을까?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종의 인간들과의 싸움으로부터 이겼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그러한 승리의 배경에 바로 인지혁명이 기여했을 것이라 설명한다.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인류는 근육에 쓸 에너지를 뇌에 투자했다. 이는 뇌의 부피 증가로 이어졌고, 인류는 높은 지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인류는 직립보행으로 인해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복잡한 도구를 만들고 여러 일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 결속을 위해 이루어졌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이렇다 할 신체적 강점이 없는 인류는 생존을 위해 무리를 지어 생활하고 사냥하는 것이 필수였다. 따라서 강한 사회적 결속을 효율적으로 이루기 위해 지능의 발달이 요구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로빈 던바의 '사회적 뇌' 가설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호모 사피엔스는 강력한 사회적 결속을 바탕으로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성공적으로 번영할 수 있었다.
사회적 지능의 발달을 넘어서서 인지혁명이 호모 사피엔스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부분은 바로 '언어'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사회적 결속을 이룰 수 있었으며 이후 국가와 제국을 형성할 수 있었을까? 이는 바로 '허구'의 등장에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즉, 원시인들이 유령과 정령을 믿고, 불 주위에 함께 모여 춤을 추는 등의 종교적 의례를 통해서 사회적 질서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적 허구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저자의 예시를 빌려보자. 1789년 프랑스인들은 하룻밤 사이에 왕권의 신성함이라는 신화를 믿다가 국민의 주권이라는 신화로 돌아섰다. 프랑스 혁명으로 기억되는 이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호모 사피엔스가 생물학적 진화 없이도 시대의 필요에 발맞춰 신속하게 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유전적 돌연변이를 기다리는 억겁의 시간을 소요하지 않고서도 우리는 사회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고 이를 후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인지혁명이란 역사가 생물학에서 독립을 선언한 지점이었다. 인지혁명 이전에 모든 인간 종의 행위는 생물학의 영역에 속했다. 혹은, 꼭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선사시대에 속했다.
-유발 하라리,『사피엔스』중에서
농업혁명
인지혁명 다음으로 호모 사피엔스에게 찾아온 혁명은 농업혁명이었다. 경작과 목축을 시작하면서 토지 단위 당 식량 생산량이 크게 늘었고, 호모 사피엔스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농경의 시작과 더불어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미래'라는 개념이 생겼다. 하루하루 연명하기 급급했던 수렵채집인에 비해 농부들은 미래에 대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처음으로 호모 사피엔스에게 '나'(나의 집, 나의 땅, 나의 생산물 등)에 대한 개념이 생길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해준 것 또한 농업혁명이었다.
그러나 이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수렵 채집 시절 호모 사피엔스는 적게 일하면서도 더욱 다양한 식단을 섭취하며 친밀함 기반의 소규모 집단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농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갈등이 발생하게 되었으며, 수직적 관계가 생기게 되었다. 때로 흉년이 들 때면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 속에 죽어가기도 했고, 대체적인 영양 상태 또한 급격히 악화되었다. 농업혁명은 종 전체로 보았을 때는 과거에 비해 호모 사피엔스의 개체 수가 늘어났기에 좋은 것일지 모르지만 개체(호모 사피엔스 개인, 길들여진 소나 양) 하나하나를 들여다보았을 때는 마냥 성공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집단적 허구와 농업혁명을 통한 잉여생산물로 인류는 도시국가를 넘어서서 왕국과 제국을 건설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집단적 허구를 통해 만들어진 사회적 집단이 꼭 평등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압제와 착취를 바탕으로 운영되었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유발 하라리,『사피엔스』중에서
우리가 특정한 질서를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믿으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사피엔스』중에서
그러나 상상의 질서는 폭력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저자는 상상의 질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무엇을 기반으로 작동하는지 설명한다. 이어서 저자는 가부장제, 젠더, 인종차별 등을 비롯한 수많은 상상의 질서들이 지니는 내재적/외재적 모순을 지적하며 끊임없이 변화해 온 인간 문화를 설명한다. 내용이 방대하기에 모두 다 언급하지는 못하겠지만 인상 깊었던 저자의 문장을 옮겨 적는 것으로 대신한다.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이라는 우리의 관념은 생물학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에서 온 것이다. '자연스러움'이란 말의 신학적 의미는 '자연을 창조한 신의 뜻에 맞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진화에는 목적이 없다. 장기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진화한 것이 아니며, 그 사용방식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유발 하라리,『사피엔스』중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상상의 질서를 이미 내재화해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는 꽤나 소름끼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상상의 질서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교묘하게 실재를 왜곡하는 사람들이 나쁜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가 상상의 질서를 토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메타적으로 인지할 수 있어야만 보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의 질서들
최초로 등장한 보편적 질서는 경제적인 것, 즉 화폐 질서였다. 두 번째 보편적 질서는 정치적인 것, 즉 제국의 질서였다. 세 번째 질서는 종교적인 것, 즉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보편적 종교의 질서였다.
-유발 하라리,『사피엔스』중에서
화폐의 발달은 순전히 정신적인 혁명으로 이루어졌다. 화폐는 재화와 용역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끔 사람들이 기꺼이 사용하려고 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이방인이나 이웃집 사람을 신뢰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지닌 '돈'을 신뢰할 뿐이라고 저자는 다소 냉혹하게 말한다.
이어서 제국이다. 제국은 그 기원이나 영토의 크기, 인구수가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과 국경의 탄력성으로 정의된다. 제국은 지난 2,500년 간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정치조직이었다. 대체로 제국은 자신들이 복속시킨 민족으로부터 좋은 아이디어, 규범, 전통 등을 흡수하고 채택하여 혼합적인 문명이 되었다. 21세기가 전개되면서 민족주의는 급속하게 입지를 잃고 있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전세계라는 제국으로 통합되고 있다.
종교는 보편적이면서 선교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이 아니라 절대자가 정해놓은 법을 바탕으로 사회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 저자는 세상의 신념들을 신 중심의 종교와 자연법칙을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하는 신 없는 이데올로기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그에게는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로 종교적이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상은 모든 영혼이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일신론적 확신의 개정판이다.
-유발 하라리,『사피엔스』중에서
1부를 마치며
책을 읽을 때는 입담 좋은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지만 막상 리뷰를 쓰려니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구나 싶다. 가지치기 식으로 전개되면서 뜬금없이 이 주제가 나오다가 다시 예전의 주제로 돌아가는 식이라 어떤 흐름을 잡아서 리뷰를 써야할 지 가닥을 잡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다. 분명 의미있는 주제였지만 지면의 한계와 주제의 일관성을 위해서 다루지 못한 부분들도 아쉽다. 나머지 이야기는 리뷰 2부에서 하기로 약속하며 분명 저자가 전하고 싶었을(거라고 믿고 싶은) 말을 하나 옮겨 적으며 마치도록 하겠다.
과거에서 현재로 밟아온 길은 하나의 갈래였지만, 여기에서부터 미래로는 무수히 많은 갈래의 길이 나 있다.
-유발 하라리,『사피엔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