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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 Jun 01. 2021

2021년 5월의 마지막 날

사랑하는 너에게, 보고 싶은 너에게 그리고 나의 끄적임

외로워서 만난 사람에게 김쿼카보단 훨씬 다정했지만 만나면서 가끔씩 보이는 평소와는 다른 무서운 모습들과 지나친 자만심 그리고 허세심에 지겨워 잠수를 타다가 결국 헤어지자고 했다. 그 사람은 자기 성격이다 보니 아직도 대화를 하는데 그 습관들이 묻어나더라. 정리하길 잘했다고 최종적으로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언젠간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그 점들을 알게 되겠지?


다들 본인 성격은 잘못된 줄 잘 모른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 자신을 되돌아볼 때마다 나의 나쁜 습관들을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도 내가 잘 모르는 내 나쁜 성격, 습관들이 많을 텐데 알게 되어도 고치기가 쉽지 않다. 크게 마음 주지 않았던 사람인데 헤어지자고 했더니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대답,  소원으로 마지막 데이트하면 안 되냐는 말에  왜 눈물이 고였던 걸까. 짠한 마음에 잠시 고민하다 옳지 않은 일이란 걸 알고는 헤어지는 마당에 무슨 마지막 데이트냐며 그러면 더 생각난다고 정리했다. 좋게 헤어지기 성공했는데 홀가분하면서 조금은 마음이 안 좋다. 그래도. 괜찮다. 잘한 거야.


김쿼카랑도 오빠랑도 사이가 다 난리네 요즘. 뭐야 진짜 또 터닝포인트가 되려나. 갑자기 일이 막 겹쳐서 몰려서 터지고 내가 유혹을 견디고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가 왔다. 이런 상황은 내가 10학년 때 처음으로 찾아왔다. 평소랑은 다른 느낌의 힘듬이다. 이 시기의 난 매우 불안정했고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고 돌이킬 수 없을, 하나님에게 날 제발 데려가 달라고 매일같이 기도를 했으며 이걸 제외한  내가 하는 모든 선택에 대해 두려워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한국에 와서 의사 선생님을 뵙고 어떻게 버텼냐는 말 한마디에 서럽게 그칠 줄 모를 눈물이 났던 그때, 우울증 인지도 몰랐던 우울증을 진단받고 심한 우울에 시달리기도 했었던 때였다.  한마디로 이 기간은 나에게 마치 지옥 같았다. 그만큼 힘들었다. 우울증 덕에 정상적인 그러니까 상식적인 사고를 하는 것에 힘들어했다. 의사 선생님을 뵙고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 우리 엄마는 날 우울증이라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고 날 혼내기만 했다. 스스로가 너무 버거워 우울증인 것 같단 말을 내가 조심스럽게 꺼냈을 당시에도 무슨 우울증이냐며 내 몸의 자해 자국 들을 보곤 관심받고 싶어서 그러는거냐며 내 마음을 이해하려는 시도 조차 하지 않고 날 더 나락으로 밀어냈었다. 정말로 나 자신이 버거워서,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건데. 엄마도 우울증을 몰랐겠지, 엄마 딸이 우울증인걸 믿고 싶지 않았겠지, 강하게 말하면 이겨 낼 정도일 줄 알았겠지. 다시 생각해도 많이 서운한 엄마의 반응이지만 그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신기롭게도 의사 선생님을 뵙고 다시 미국에 들어가던 여름부터 힘들었던 마음들이 조금씩 풀려나갔다. 약물을 처방받거나 정신병원에 가진 않았다.  자연적으로 점점 나아진 게 나도 아직까지 신기해서 그때 힘들었던것이 그냥 내 운명이었나 보다 한다.



어찌 됐든 지금의 내 직감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느낌의 상황은 그때의 우울증에 시달리다 벗어나기 전인, 터닝 포인트가 시작되기 전 나의 선택을 시험하는 그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많은 현타와 옳은 선택에 대한 고민.  그게 또 온 것 같다. 잘 이겨내고 싶은데.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진 모르겠지만 또 좋은 터닝포인트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이번엔 왠지 오빠와 너 그리고 내 게으름을 시험하시는 것 같아. 내 게으름은 고치고 싶다 정말. 사실 고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에 내 의지가 더 가깝지만. 느긋함에 내가 편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니 게을러지더라. 게을러지니 미루고 미루고 나 자신에게 성실함이란 단어를 찾을 수가 없게 되더라.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내 대명사는 성실함이었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하지만 고쳐야 한다. 정말로.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나중에 내 미래에 정말 중요한 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의 게으름 때문에 내 인생의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하면 과연 난 세상에 고개 들고 살 수 있을까? 거울 속에 날 마주할 수 있을까?


쿼카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투닥거려도 운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유빈이 말 듣고 생각해보니 정말 얘는 다른 유형의 쓰레기인 걸까. 나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는 유빈이 말. 고맙다. 유빈이 말을 듣고 아. 했다 순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부분이다. 그러네. 나 스스로 한테 미안했다. 혼자 너무 아픈 연애를 미련하게 끊어내지도 못하고 질질 끌고 아파한 나한테. 내가 현명했다면, 똑똑했다면 이렇게 객관적으로 우리 연애를 보고 나니 그럼 헤어졌겠지. 진작에. 정 때문에 마음 때문에 알면서도 그게 안돼서 혼자 울고 아파했던 나를 알까. 점점 너를 놓아버린 나를 알까 놓고 놓고 또 놓으면서도 바보같이 지금까지 너랑 헤어지지 못하는 나를 알까. 그런데도 너랑 헤어지는 생각만 해도 서럽고 눈물이 나는 지금의 나를 너는 알까.


쿼카 네 말대로 똑똑하면 몸도 마음도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똑똑했다면 아마 너랑
계속 만나는 게 현명한 생각인 걸까 아니면 헤어지는 게 현명한 생각인 걸까,


내가 정말 많이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이런 생각을 하니까 질문이 좀 잔인하게 느껴지네. 너는 참 이성적인데, 난 왜 그러지 못할까.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눈물이 그치질 않아. 새벽 감성 때문인가. 아. 참. 유난인데 유난 아니야. 자주 그랬어 나, 점점 너를 놓기 전까진 아주 자주. 혼자 힘들어했어. 오늘 아침에 온라인으로 꽤 많이 찾아봤어 연애와 헤어짐 등에 관해서 말이야. 원래 아는 사실이지만 사람은 고쳐지기 힘들대. 다시 한번 리마인드 시켜주는 느낌이더라, 찾아보다 보니 회피형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 너한테 보이는 모습들이 꽤 많이 해당되더라. 너한테 익숙해져 가며 연락 스타일이며 생각이 바뀐 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회피 유형 테스트라는 걸 해봤어 총 37문제였던 것 같은데 나도 조금은 회피형에 해당되더라. 놀랐어, 아닐 줄 알았거든. 다들 믿고 거르는 게 회피형이라던데 큰일이다. 나 때문에 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건 원하지 않는데.


알게 된지 한 달도 안된 같이 아르바이트하는 언니 오빠의 6개월 좀 넘은 연애가 참 예뻐 보이기도 했고 택시 타고 집에 가면서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오빠가 언니를 예뻐해 주고 아껴주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기도 했고 자기 일하는 시간도 아닌데 언니 출근한다고 같이 아침마다 카페 따라 나와서 데려주고 가끔 카페 주변에서 언니가 좋아한다는 마카롱도 사다 주고 가고 중간 breaktime때 언니 점심 먹으러 나가는 시간 맞춰 꽃다발 사들고 와서 같이 점심 먹으러 가는 모습에, 항상 자상하게 대하는 모습에, 언닐 아껴주고 생각하는 게 그냥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느껴지고 그 언니도 행복해 보여서, 내 앞에서 왜 그러냐고 장난식으로 말을 던지기도 했지만  그 언니랑 오빠가 오래 예쁘게 갔으면 했어. 동시에 내 마음이 허탈, 공허하기도 했고. 네 생각하는 자체에, 네 사진 보는 자체에 행복해했지만 내가 좋아했던 너랑의 연애는 외롭고 아픈 기억으로 떠올라서. 그냥 많이 공허했어 마음이. 너도 학교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커플들을 보면 그랬을까. 넌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래도 그냥 오늘은 새벽 감성 탓이라고 하자. 그래야 자꾸 내가 너를 정리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이유를 찾을 수 있으니까. 마음은 그게 안되는데. 조금 이나마 남은 내 이성이 머릿속에서 말하는 것 같아. 그러기 싫은데. 많이 좋아했는데. 네가 뭐라고 내가 이렇게 지금 자고 있는 엄마 깨우지 않으려고 베개에 얼굴 파묻고 숨죽여 서럽게 울고 있는 걸까. 왜 눈물이 안 멈출까. 내가 원래 알던 네 성격 같으면 지금 내가 쓴 이 글을 보곤 비웃겠지? 내 진심인데. 너는 나를 이만큼이나 모르잖아.


왜 쿼카는 미안하단 말만 하고 나아지겠단 말은 하지 않을까. 고치거나 나아질 생각이 없다는 걸까. 하지만 고치겠다고 해도 이젠 신뢰도 제로다. 말 만인 거 다 알아 이젠. 슬프다 내가 참 좋아했던 넌데. 항상 난 너한테 진심이었는데 이젠 잘 모르겠어 너를.


외롭게 놔두는 건 절대 용서 못한다며 헤어지라며 언니 친구남자 친구는 호주로 1년 반 워홀에 가게 돼서 언니 친구가 그분한테 헤어지자고 했는데 남자 친구분이 울면서 기다려주면 안 되냐고 했다고 겨우 언니 친구분 마음 붙잡아 워홀 간지 1년째인 지금까지도 여자 친구분 시차에 맞춰 매일매일 전화한다며, 여자 친구한테 잘해주는 남자 많은데 왜 그러고 있냐고 나한테  다른 사람 만나라는 혜리 언니와 안 그래도 중요한 연락을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전화하면 왜 사귀는지 자기는 이해가 안 간다고 나한테 대체 왜 사귀는 거냐는 석현 오빠. 그러게요. 애초에 내가 그 애의 우선순위가 아닌 건 알고 만났고 기다림과 인내와 우울과 슬픔의 연속에 마음을 놓고 놓고 놓다 보니 이젠 그런 생각도 안 하고 있었네요. 내 책임이야.

 언니 오빠의 말을 듣고 연애는 행복하려고 하는 것이라는 말이 스치듯 머리를 지나쳤다. 근데 알면서도 나는 너를 놓는 게 이렇게 힘들다. 너는 알까. 그 말을 내 입으로 하기까지의 과정들을. 나는 참 너랑 연애하면서 항상 외로웠고 정말 별거 아닌 사소한 것에 행복해했고 평범하게 예쁜 연애를 하는 커플들이, 비록 우리가 어쩔 수 없는 해외 장거리라 부러워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내 친구들의 연애가 정말 부러웠다는 거. 난 아직도 우리라는 단어를 쓰네. 참.


 연락도 잘 안 하고 표현도 잘 안 해주면서. 일주일에 한 번 할까 말까 하는 나랑의 한 시간도 될까 말까 하는 전화에서 통화하면서도 습관적이라고 믿고 싶은 한숨 쉬기와 나랑 얼마나 통화한다고 그 시간에도 게임을 하는 중이거나 유튜브를 보는 중이었는 걸 알면서도 서운했지만 점점 괜찮아졌어. 점점 너를 내려놓았거든.

다 알지만 가끔씩 네가하는 보고 싶단 말이나 전화 끊을 때쯤 하는 진심일지 아닐지도 모르는 사랑한다는 말에 행복해했어.

이제 보니 정말 바보 같다 나.


나 이렇게 계속 너를 하나씩 내려놓아왔는데 이제 점점 한계인 것 같은데 나는 널 얼마나 더 내려놓아야 하는 걸까. 네 마음속에 내가, 나에 대한 배려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긴 한 걸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연애인데 내 연애는 왜 이렇게 아픈 걸까.


그날 분명 마음을 다 잡고 헤어지잔 말을 한 거였는데 네 답장에 사람 많은 카페에서 몰래 서럽게 운 나를 알까,
어떻게 다잡은 마음이었는데 네 말에 마음 약해져서 울면서도 나 자신에게 화가 나고 스스로를 한심하게 느꼈던걸 알까.


여전히 너를 좋아하지만 지금 같은 연애가 지속된다면 난 행복할까,


모르겠다. 마음 주는 거 참 아프고 힘든 일인걸 또 한 번 실감한다.


옳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느님.
 



아. 또 아침에 일어나면 눈 퉁퉁 부어있겠네. 오늘만 울자. 오늘까지만. Hopefu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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