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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ry Mar 14. 2020

FLiXBUS

내 무릎의 유언: BlaBlabus를 탈 것

 플릭스버스는 경험할수록 분노가 쌓이는 교통수단이다. 좁은 좌석 간 간격에 무릎은 몇 미리씩 갈려나가고,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하얀 분가루가 남는다. 하지만 비교불가의 저렴한 가격에 교통편을 예매할 때는 어김없이 플릭스버스 앱을 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좁은 좌석과 연착의 아이콘 정도로만 알았던  플릭스버스는 매번 신선한 경험을 선사하며 그 최악을 경신해낸다.


 독일과 프랑스 접경지역에 위치한 독일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놀이공원인 유로파파크를 가고 싶었던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같이 유로파파크를 가자며 수작을 걸고 다녔고, 마침내 부경오빠, 그리고 그의 친구들과 함께 유로파파크를 갈 수 있게 된다.


 유로파파크를 가는 전날 밤, 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다음 날 비 예보가 있었던 것인데, 이로 인해 롤러코스터 운행이 취소된다면 그곳에 갈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한번 맺은 약속을 어길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여유롭게 샌드위치를 사서 플릭스버스 정류장에 간 난 충격에 휩싸였다. 부경오빠는 지난 며칠간의 무리한 일정으로 심한 감기몸살에 걸렸으며, 놀이공원까지 가는 것은 병세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판단되며, 함께 못 간다는 비보를 전했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몇 보 뒷걸음쳐 버스에 올랐다.

(몇 달 뒤, 부경오빠가 미리 자신의 몸상태를 밝히며 못 갈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내가 읽지 못한 것이 밝혀져 오명을 벗었다.)


 그렇게 실 떨어진 연이 된 채, 부경오빠 친구들과 유로파파크에 입장했다. 다행히 비는 가볍게만 내려 롤러코스터들은 모두 정상 운행되었으며, 그동안 비축해둔 사회성을 간간히 발휘해보기도 하며, 목표했던 롤러코스터는 원 없이 탈 수 있었다.


 유로파파크에서 다름슈타트로 돌아가는 마지막 버스는 다섯 시 차가 마지막 차로, 나는 인사를 나누고 예매한 버스를 타러 나섰다.


 정류장에는 아이들 서넛과 그들의 엄마로 보이는 성인 여성 두 명이 있었고, 나는 그들 뒤에서 덤불 속  달팽이들의 등껍질 무늬를 관찰하고 있었다.


 플릭스버스는 놀랍지도 않게 이십여분 연착되어 도착했으나 기사가 건넨 말은 사뭇 놀라웠다.


“빈 좌석이 없어서 승객을 못 태웁니다.”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내 앞에 서있던 아이들의 엄마 중 한 명은 우리 애들은 내일 학교에 가야 하니 자신들은 무조건 타야 한다고 큰 목소리로 주장했고, 무작정 아이들을 버스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목소리가 큰 사람들은 어떻게든 버스 안으로 구겨져 들어서고, 정말 한 명도 더 수용할 수 없을 때, 정류장에 남은 사람은 나와 연인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트렌치코트를 입은, 한 여자밖에 없었다. 그녀는 침착하고 이성적이었다.


 그녀는 버스 기사에게 대책을 내놓라고 말했고, 기사는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더니 이곳에서 다음 차를 기다리라고 한다. 아마 혼자였다면 그렇게 오지 않을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망부석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이 버스가 막차인데 다음 버스가 오냐고 묻자 기사는 난처한 얼굴로 자신은 모르겠다고 말한다. 다들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진다.


 한참을 고민하던 기사는 그녀의 연인에게 차가 있냐고 묻더니, 얼마에 그녀와 나를 가까운 기차역으로 태워다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이 기회를 이용할 줄 아는 그는 2000유로를 제안했으나 끝내 20유로로 합의를 본다.


 그의 안락한 차를 타고 가까운 기차역에 도착했고, 나는 아직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두 번의 환승으로 밤 10시가 넘어서야 굶주린 배를 움켜쥐며 집에 도착했다. 60유로 상당의 기차 비용은 몇 달이 지나고, 서너 번 닦달한 뒤에야 돌려받을 수 있었다.


 플릭스버스는 이후로도 그날의 상처가 아물라고 치면 또다시 소금을 들이붓는듯한 한결같은 서비스를 제공했고, 내 상처에는 굳은살이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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