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있는 것
Ich werde ein Berliner. (= 난 도넛이 되고 싶어.)
정확히 정의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힙하지 않다. 하지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처럼 너무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나에게 힙스터는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아무도 될 수 없는 존재다.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인간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 말을 되뇌며 감히 힙스터 라이프 스타일 체험을 시작해 보기로 한다.
어제의 분한 기억을 애써 외면하고, 미테 지구로 향했다. 예상대로 (1) distrikt coffee는 아침부터 우리를 포함한 힙스터들로 붐빈다. 진정한 힙스터라면 아사이베리 슈퍼보울과 호박샐러드로 내면까지 케어하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아침을 먹은 지 채 20분이 지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2) THE BARN에 들어가 또 커피를 들이켜고 있다. 힙스터들의 편의를 위해 가게들이 가까이 위치하는 듯하다. 사장과 점원 모두 북미 사람처럼 보였고, 그래서 이곳이 캘리포니아인지 베를린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곳을 방문한 한 손님처럼 이다음에는 나도 점원의 추천을 받아 원두를 그라인딩 해 가는 모습을 꿈꿔본다.
연이은 커피 두 잔으로 최고조로 각성되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기분에 사로잡혔고, 그저 문이 열린 곳은 일단 머리부터 들이민다. 갤러리부터 새컨핸드샵, 호텔 화장실까지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길을 걷다 우연히 들어가게 된 빈티지 스타일 옷가게. Jimmy’s라는 가게명과 어두운 분위기에 혼자였다면 들어가지도, 설사 들어갔더라도 1분을 버티지 못하고 나왔을 가게다. 그렇다. 나는 ‘Fㅐ션의 P자도 모르는’ 쇼핑 하수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빛나는 물건들을 골라내는 쇼핑 고수가 있다.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향이 승원에게서 풍기기 시작한다. 힙스터 향이다. 그가 예쁘다고 하는 옷들은 어느 순간 정말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계산을 마치고 택스리펀을 받는 순간에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카운터에 진열된 가방을 발견해 추가로 구입했다. 가게를 나서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닌 것이다.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확신을 기반으로 수많은 옷 속에서 원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는 그의 분별력이 탐난다.
저녁으로는 든든하게 포케볼을 먹고 나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각종 식물과 어리숙하게 젓가락직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생명을 사랑하고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힙스터들을 보니 잘 찾아온 듯하다. 짧지만 한나절 동안 체험한 결과, 힙스터란 빼빼 마를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들에게 허락된 것은 가격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새 모이와 같은 양의 음식 또는 거대한 샐러드였고, 권장되는 영양소는 무한한 양의 카페인밖에 없어 보였다. 틀렸다. 포케는 한 사람이 다 먹을 수 없을 정도의 넉넉한 양을 자랑했고, 그 때문인지 굶주린 힙스터들로 가게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 이 가정적인 독일 사람들. 아직 이른 저녁인데도 17시에 문을 닫는 가게들이 많아 아쉬운 탄식을 자아낸다. 아직 힙스터 놀이를 포기할 수 없다.
승원이 꼭 가보고 싶다던 편집샵인 (3) Voo store에 입장했다. 한두 개 정도 사볼까라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입장했지만 가격표를 보니 절로 겸손해진다. 이곳 역시 직원부터 손님까지 힙스터 소굴이다. 의자까지 평범함을 거부하고 대각선으로 짜여있다. 배즙을 홀짝거리며 그들을 염탐한다.
가까이에 위치한 (4) Bonanza(노다지)라는 유명 커피숍에 들렀다. 가로등도 인적도 없는 길을 걷다 정말 길을 잘못 들었다 싶은 순간 나타나는 크고 밝은 창문이 보인다. 마감시간이 임박해 발길을 돌렸다. 대신 (5) Five Elefant coffee에 첫 번째 베를린 방문 때 못 먹은, 맛있다는 소문의 주인공인 라즈베리 타르트를 먹으러 갔다. 라즈베리 파이를 먹은 사람은 있는데 파는 사람은 없다.
이튿날 밤은 저세상을 구현한 테크노 클럽 대신 소소하게 둘러앉아 추억팔이를 하기로 결정했다. 못 본 사이에 생긴 서로의 빈칸을 채워간다. 정수가 써 내려간 승원은 채워진 칸보다 비워진 칸이 더 많아 보였고, 채워진 칸도 대체로 오답이다.
마지막 날이 밝았고, 일정을 시작해야 하지만 발이 너무 아프다. 관광을 안 한다는 말을 많이 안 걷는다고 말로 착각한 탓에 불편한 신발을 신었기 때문이다. 신발이 그렇게 예쁘지도 않아서 더욱 억울하다. 정수가 신발 바꿔 신어줬다.
미테 지구의 (6) Five Elefant coffee에 가는 것으로 세 번째 날을 시작한다. 우리는 힙하진 않았을진 몰라도 부지런한 건 확실했다. 마지막 날인 게 아쉬워 서둘렀더니 연 가게가 없다.
쭈뼛쭈뼛 가게 앞을 서성이다가 가게가 열리자마자 들어갔다. 며칠 새 이래저래 길거리 힙스터들 틈에서, 승원 어깨너머로 패션센스를 습득한 나는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은 나는 카드를 긁어대기 바쁘다.
새로 산 신발로 갈아 신고 기차역으로 갔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양말 뒤꿈치가 선홍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발이 예뻐서 억울하지는 않아 다행이다. 길들여지는 게 신발인지 내 발인지는 모호하지만 바위를 뚫는 물방울의 심정으로 조금씩 길들여나간다.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이름 모를 힙스터들의 기억은 이제는 흐려졌지만, 동무들과의 좋은 추억은 내가 베를린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