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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ry Mar 11. 2020

(3) 테크노 좀 즐겨둘걸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2019년 1월 20일


 베를린행 기차는 왜 항상 아침 일찍 출발하는가. 기차를 기다리는 정수의 코 밑에는 빛이 반사된 콧물이 언 채로 반짝인다. 기차에 올라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신년회에서 싸온 마지막 서브웨이 샌드위치와 어젯밤 시차로 인해 정수가 혼미한 틈을 타 섬세하게 손질해둔 키위다.


  “Winke~ Winke~”

 기관사의 배웅을 받으며 베를린에 도착했다.

 

 3개월 사이에 베를린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슬슬 날씨가 추워지자 독일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스타일링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옷장에서 눈을 감고 잡히는 순서대로 옷을 입은 듯한 것이 매력포인트이다. 내 플랫메이트인 에릭만 봐도 겨울이 되자 앙증맞은 하늘색 비니를 쓰고 나타나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옷이 얇아질수록, 여름에 가까워질수록 멋져진다는 독일 사람들이라는 말의 예외가 적용되는 곳이 바로 베를린이라고 들었다. 그야말로 힙스터가 아닌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운 도시다. 추운 겨울에도 발과 발목을 훤히 내놓은 호피 슬리퍼에 눈을 빼앗긴 정수와 나는 소문이 사실이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막무가내로 베를린으로 오라는 소환에 불려 온 승원을 만났다. 서로 오랜만의 재회이지만 마치 어제 본 것 같이 스스럼없다. 이제야 고등학교에 진학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셋은 모두 관광에 미련이 없다. 한 명은 지난 방문에 모두 해결, 한 명은 요 근래에만 벌써 세 번째 베를린 방문, 한 명은 자신이 베를린에 가는 것도 모른 채 왔기 때문이다.

 정처 없이 배회하다 호스텔에 들어왔다. 긴 밤을 대비한 휴식이다.


 오늘 밤에는 테크노의 성지 베억하인(Berghain) 갈 계획을 세웠다. kreuzberg와 Friedrichshain지역 주변에 있다고 해서 대충 지어진 이름과는 달리 안에 들어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풍문에 의하면 이 투박한 폐건물 안에는 직접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관이 펼쳐진다고 한다.


 들어갈지 말지의 여부는 클럽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의 판단에 달려있는데, 그 판단 기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 수많은 경험자들에 의하면 흔히 생각하는 속세의 허물에 의해 정해지는 결정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에 의해 정해진다는 의견이 다수이다.


 여러 의견이라 함은 검은색 상하의를 입으면, 독일어를 할 줄 알면, 그날 공연하는 아티스트가 누군지 알면 들여보낸다는 것들이 있다.


 성수기에는 긴 줄을 몇 시간 동안 기다렸지만 안에 발도 들여보지 못하고 돌려보내진 사람들의 분노는 베억하인 구글 평점에 고스란히 녹아있었고, 호스텔 침대에 누워 그들의 평을 읽자 웃겨서 눈물이 줄줄 흐른다. 테크노를 향한 존경은커녕 자의로 들어본 적도 없는 우리가 안에 들어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만큼 웃었으니 클럽 안에 못 들어가도 충분히 값진 시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우습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늘 공연하는 사람의 이름을 숙지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베억하인으로 걸어간다. 인적 드문 길이 계속되지만 멈추지 않았다. 길에 우두커니 서있는  남자를 자연스럽게 피해 걸어가는 그때였다. 뒤편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고, 앓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조그마한 유리조각들,  뒤로는 밟혀 눌린 우유팩,  뒤로는 다리 하나를 뒤로 굽힌  열심히 아픔을 호소하는 남성이 있다. 괜찮냐며 그를 일으켜 세우고 보니, 유리 조각에 베이기는커녕 까진  같지도 않다. 유일한 붉은 것은 술에 취한  같은 그의 얼굴이다. 신음소리를 내며 엉성하게 다리를 절면서 너희  좋은 애들, 너무 착한 애들이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모자, 티셔츠, 벨트, 신발,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모든 아이템 위에는  번이라도   있다면 누구나 알아볼  있도록, 직설적으로, 분명하게 그려진 명품 로고들이 수놓아져 있다. 구급차를 불러  필요 없다는 말에 빠르게  길을 재촉하려는데, 그새 회복이 끝났는지 혹시 놀러 가는 거면 자기도 데리고 가라고 말한다. 눈빛을 교환한 우리는 달음박질하기 시작한다.


 뒤를 확인하며 뛰다 보니 도착이다. 하얀 조명이 공터를 비추고,  공터 한편에는 회색빛 단조로운 건물이 덩그러니 서있다. 베억하인이다. 겨울인지라  서있는 사람은  명도 없고, 마음의 준비할 새도 없이 곧장 입구로 향했다. 입구에는  사람이 서있었다.

 ‘안녕, 우린 세명이야.’라고 말을 건네자 들어갈  없다고 한다. 그리고는 혹시 게스트 리스트에 이름이 있냐고 물었고,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들어갈  없단다.   유일하게, 보잘것없는 실력이지만 독일어를   안다는 사실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 건지  쪼다같이 '안에 자리가 없냐'라고 물었고, 그가 내놓은 답변은 너무 길고 빨라서 해석이 불가능했다. 그냥 알아들은 척하고 돌아섰다.


 성수기 때에는 다시 줄을 서 입장을 시도하기도 한다던데 아무도 없기에 다시 시도할 순 없고, 아쉬운 마음에 주변을 서성거려본다. 북유럽에서 온 세명의 훤칠한 젊은이들. 전략적으로 한 명씩 입장을 시도하지만 그들도 끝내 입장하지 못한다. 그다음으로 나타난 건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다. 아침에 도장을 받아두었는지 초대손님인지 그들이 무어라 얘길 하자 종이를 들춰본 가드는 그들을 들여보냈다.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났다.


정확히 뭘 놓쳤는지도 모르지만 어딘가 아쉬움이 남고, 확실히 승자의 기분은 아니다.


 베억하인을 못 들어간 사람들이 모여있을 법한 다른 클럽을 가기 싫어 눈에 들어온 칵테일바로 향했다. 좀 전의 경험은 인생의 전환점은 아니지만 오늘 밤 칵테일에 곁들일 안주거리로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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