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O, 조직 문화를 바꿔다오!> 26편
"웹3 업계에서 어떻게 커리어를 짜야할지 모르겠어요."
최근 몇몇 지인들이 공통적으로 위와 같은 근심을 털어놓았다. 나 역시 크립토 전문 미디어를 그만두고 지금 회사에 들어가기까지 3개월 동안 비슷한 고민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국내 거래소 종사자들과 미팅을 하기도 했고 DAO 활동도 해봤으며 해외 프로젝트와 국내 웹3 업체로부터 각각 제안을 받기도 했다. 내게 회사를 고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일까?
결론은 조직 문화였다. 레거시 미디어(기성 언론)에 4년 동안 다니면서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에는 학을 뗀 상태였다. 아무리 상사라고 해서 부하에게 '야'라고 한다든지, 반말을 한다든지, 음주를 강요한다든지 하는 문화는 버티기 힘들었다. 아이러니하게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에서 선후배 또는 동료 사이에 전우애가 싹트기는 했다. 지인들끼리 뭉친 조직이 아니었음에도 회사 사람들끼리 주말에도 놀러 다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분명 다른 조직에 비해선 끈끈한 관계긴 했다. 하지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태도가 대물림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그 문화를 견디지 못한 신입들이 단체로 그만두는 경우도 있었고, 당시 서른 살인 내가 회사에서 가장 어릴 정도로 조직이 나이 들었다. (지금은 다소 바뀐 듯하다.)
이렇듯 나는 조직 문화가 조직의 건전성과 지속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체감했다. 이후 직장을 몇 번 옮기면서 내가 어떤 조직 문화를 선호하는지도 깨달았다. 그렇게 조직 문화에 관심이 많은 만큼,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듣거나 직접 부딪혀 가면서 웹3 업체들이 각각 어떻게 조직을 꾸려가는지를 파악했다.
이번 글은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바를 토대로 웹3 업체들과 DAO의 조직 문화의 차이점을 다룰 예정이다. 주관이 많이 반영된 데다 같은 범주에 포함된 업체들이라고 해도 구체적인 면에서는 조직 문화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길 바란다.
우선 조직 문화는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분류한다.
1. 위계질서 정도
1) 수직적: 상부에서 하부로 명령을 전달하는 톱 다운(Top Down) 구조를 채택한다. 의사결정권이 소수의 윗사람에 집중되어 있으며, 아랫사람은 회사 시스템 또는 매뉴얼대로 움직이기를 요구받는다. 군인이나 의료인처럼 매뉴얼을 어길 경우 인명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조직에 적합하다.
2) 수평적: 주로 바텀 업(Bottom Up) 방식으로 소통한다. 나이, 학력, 직위, 직책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회사 시스템 또는 매뉴얼을 조직원들이 함께 만들어 나간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조직에 적합하다.
2. 자율성 정도
1) 수렴적: 기존의 방법과 원칙을 통해 해결하려는 성향이 있다. 표준화된 절차를 따른다. 조직원이 개인의 이름으로 활동하기 쉽지 않다. 대신 조직의 이름 하에서 결속력을 지닌다. 이 글에서는 근무 장소가 사무실로 한정된 조직을 '수렴적'으로 정의한다.
2) 발산적: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선호한다. 조직원이 개인의 이름을 내걸고 외부에서 활동하는 걸 장려한다. 이 글에서는 재택근무가 보장되는 조직을 '발산적'으로 정의한다.
DAO 외에 웹3 업체는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국내 인력을 채용한 회사로 한정한다.)
1) 거래소: 가상자산 매매를 중개 또는 알선해 주는 업체.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이 해당된다.
2) 언론사: 이 글에서는 언론사 중 가상자산과 관련된 기사를 주로 쓰는 곳으로 한정한다. 디지털애셋, 코인데스크 코리아, 블록미디어 등이 있다.
3) 웹3 업체: 거래소 외에 블록체인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업체를 의미한다. (NFT를 다루는 대기업은 제외한다.) 국내 가상자산 프로젝트 팀이나 웹3 컨설팅 업체, 밸리데이터 업체, 지갑 업체, 리서치 업체 등이 있다.
4) 해외 프로젝트: 해외 가상자산 프로젝트 중 한국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곳을 의미한다. 체인링크, 아발란체, 니어 프로토콜 등이 있다.
5) DAO: 그동안 연재 글에서 다뤄왔듯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법인 등기를 하지 않았으며 스마트 계약을 토대로 활동하는 조직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거래소 ▲언론사 ▲웹3 업체 ▲해외 프로젝트 ▲DAO 이렇게 다섯 가지 범주를 위와 같은 조직 문화 기준에 따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거래소는 수직적인 문화와 수렴적인 업무 스타일을 가진 조직으로 분류했다. 몇 개월 동안 국내 거래소에 다녔던 경험과 다른 거래소에 재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거래소는 대체로 톱 다운 방식으로 소통하고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웹3가 신생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거래소의 문화는 스타트업보다는 대기업과 닮아 있다. (일부 거래소는 한글 이름과 직책 대신 영어 이름을 부르는 등 수평적인 문화를 지향하기는 한다. 그렇다고 해서 스타트업처럼 마냥 자유로운 분위기는 아니다.)
업무 스타일 면에서는 임원급이 아닌 직원이 개인의 이름을 걸고 외부 활동을 하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회사 방침에 따라 근무 장소가 제한되는 모습도 확인됐다. 한 보도에 따르면, 두나무(업비트 운영사)는 다음 달부터 재택근무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이렇듯 거래소는 다른 웹3 업체들과 달리 자율성보다는 결집력에 무게를 둔다. 이는 '가상자산 상장'이 거래소의 주요 업무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율성을 권장하다간 직원 한 명이 회사 몰래 뒷돈을 받고 부실한 프로젝트를 상장시키는 일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언론사는 수직적인 문화와 수렴적인 업무 스타일을 가진 조직으로 분류했다. 통상 언론사의 선후배 문화를 중심으로 한 위계질서는 굉장히 강한 편이다. "기자는 할 말은 다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부장님', '선배님'이란 호칭 대신 '부장', '선배' 이렇게 부르기는 한다.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수평적인 구조는 아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선배 기자는 후배 기자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기자가 쓰고 싶은 대로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데스크(기사의 편집권을 가진 직책으로 주로 부장급이 맡는다.) 지시로 인해 쓰고 싶지 않은 내용, 또는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써야할 때도 발생한다.
다만, 크립토 전문 매체는 기성 언론보다는 수직적 분위기가 덜하다. 물론 선후배 문화는 존재하지만 서로 존댓말을 하는 식으로 수평적인 문화를 만들어 가려는 곳들이 상당수다. 인원이 적은 만큼 직급 차이도 뚜렷하지 않기에 후배 기자들도 할 말은 하고, 선배 기자들은 취재 영역을 정해주기야 하지만 그 안에서 후배들이 최대한 쓰고 싶은 걸 쓰게끔 한다.
업무 스타일 면에서는 발산적인 성격이 강하다. 크립토 전문 매체 기자들은 상부에 보고만 하면 개인의 이름을 내걸고 방송이나 강연 등에 나갈 수 있다. 다른 채널에 기고를 쓰는 것도 가능하다. 대체로 회사에서 기자들에게 외부 활동을 하도록 장려한다. 크립토 전문 매체들은 그 업력이 길지 않기에 기자들의 개인 활동이 회사 브랜드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서다. 대체로 크립토 전문 매체 기자들은 근무 장소가 사무실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재택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해외 프로젝트는 위계질서가 중간인 집단으로 분류했다. 해외 업체인 만큼 마냥 수평적일 것 같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수직적인 분위기가 존재해서다. 의사소통 면에선 모두가 서로를 평등하게 여기는 듯하지만 직급 차이가 뚜렷하고 상부에서 업무를 하달하는 일이 많았다. 특히 코어 멤버(정규직)와 그렇지 않은 직원들 간 연봉, 복지 차이가 뚜렷했다.
강점은 발산적인 업무 스타일이다. 본사가 해외에 있는 만큼 전면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해외 프로젝트에 다니는 지인은 "전면 재택으로 삶의 질이 상승했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리고 해외 프로젝트의 직원들이 블록체인 콘퍼런스의 연사로 서거나 밋업에서 네트워킹을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개인 외부 활동이 보장되는 것이다. 다만, 사무실에서 동료 직원들과 커피 한 잔 하거나 같이 식사를 하며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국내 웹3 업체는 상당히 수평적인 집단으로 분류했다. 물론 국내 웹3 업체라는 범주가 넓은 만큼 분위기가 제각각일 수는 있지만, 대체로 거래소와는 달리 스타트업의 문화를 채택한 듯하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만 해도 직급이 아닌 'OO님'으로 호칭하고 존댓말로 소통한다.
업무 스타일은 수렴적 또는 발산적이라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다. 직원 개인이 밋업을 열거나 몇몇 직원들이 외부 인원들과 스터디를 꾸리는 것을 권장하는 조직이 있는 반면, 임원급 외의 직원들의 외부 활동을 통제하는 곳도 있어서다. 아무리 발산적인 업무 스타일의 조직이라고 할지라도 국내 웹3 업체 소속 직원의 자율성 범위는 기자보다는 좁아 보인다.
DAO는 수평적인 문화와 발산적인 업무 스타일의 조직으로 분류했다. 거래소와는 완전히 양 극단에 서있는 조직인 셈이다. DAO에도 '코어 멤버'와 같은 직급이 있기야 하지만 다른 조직원에게 명령이나 지시를 내리지는 않는다. 코어 멤버는 완전히 수평적인 분위기로 인한 '조별과제의 비극'을 막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업무 스타일은 발산적인 편이다. DAO에만 종속되어 있기보단 DAO와 다른 업무를 병행하는 조직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아는 DAO 조직원은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DAO 관련 콘퍼런스 또는 밋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DAO에 국경이 없기에 당연히 근무 장소 선택이 자유롭다.
하지만 소속감을 원하거나 견고한 시스템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DAO를 추천하진 않는다. 게다가 수평적이면서 발산적인 조직은 수직적이고 수렴적인 조직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우선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제안서를 작성하고 그 제안을 투표에 부쳐야 한다. 게다가 업무의 강제성이 없기에 자발적으로 임해야 한다. 만약 다른 조직원이 갑자기 일을 쉬거나 탈퇴하게 되면 DAO가 지속되길 원하는 조직원이 나서서 그만큼의 몫을 하는 수밖에 없다. 대신 자율적으로 일하는 것을 선호하고 조직을 성장시키질 원하는 사람들에게 DAO가 오래 이어지는 것만으로도 뜻깊은 보상이 될 것이다.
이번 글은 웹3에 속한 조직들이 각각 어떤 조직 문화를 채택했는지를 다뤄봤다. 2022년 잡코리아 설문 조사에 따르면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 출생) 대학생 및 취준생 1923명 중 50%가 "취업할 기업의 조직 문화나 분위기가 궁금하다"라고 응답했다. 이는 '직원 복지 제도(62%)' 다음으로 높은 응답률이었다. 일부 MZ세대는 '자신과 맞지 않는 조직 문화 또는 분위기인 기업을 다닐 바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이처럼 조직 문화는 요즘 세대가 입사할 회사를 고르는 핵심 요건이 되고 있다. 그런 만큼 이번 글이 웹3 업계에서 커리어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