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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하 Aug 30. 2023

'OO에 상장' 이런 보도자료는 이미 한 물 갔다!

쪼하의 커리어 이야기

최근 한 해외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배포를 맡긴 보도자료를 보고 마음이 답답해졌다. '바이낸스에 상장했다'는 주제를 잡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나조차도 그 프로젝트의 건전성에 의문을 품었다. "내세울 게 이것밖에 없나"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막상 자료를 읽어보니 웹3 업계의 최신 트렌드를 잘 반영한 데다 나름대로 기술적인 고민을 많이 한 프로젝트란 것을 알게 됐다. 차라리 본문에 있던 '계정 추상화 업데이트(ERC-4337)를 적용한 버전3 출시'를 주제로 뽑았다면, 블록체인에 관심 있는 기자라면 한 번쯤 더 들여볼 만했을 터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뜯어고칠 수는 없었기에 아쉬움은 뒤로 한 채 국내 언론들에게 자료를 송고했다. 역시나 다른 보도자료에 비해 배포 건수가 현저히 저조했다. 친한 기자에게 물어보니 "이전에도 그 프로젝트가 우리 매체에 '바이낸스 런치 풀(바이낸스가 지정한 특정 가상자산을 스테이킹하면 신규 토큰을 주는 서비스)'에 선정됐다는 내용으로 접촉을 해오기에 오히려 신빙성이 떨어졌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처음 자료를 접했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한때 '어느 거래소에 상장'이라는 주제가 언론에서도 잘 먹히던 때가 있었다. 2019년까지만 해도 특히 국내 프로젝트가 바이낸스 같은 글로벌 거래소나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국내 주요 거래소에 상장만 돼도 여기저기서 기사가 쏟아졌다. 그보다 이전인 2017년, 2018년에는 상장까지 가지 않아도 '메인넷 공개', '가상자산공개(ICO) 진행'만 내걸어도 화제가 됐다.


이제는 트렌드가 달라졌다. 그 이유로는 (1) 주요 거래소에 이미 상장된 프로젝트 수 과다 (2) 상장이 프로젝트의 건전성을 가늠하는 지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됨 등등이 있겠다.  


이전에야 특정 프로젝트가 투자자들에게 ICO로 자금을 모아 발행한 가상자산이 상장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으나 이제는 투자자들이 관심 보일 정도의 프로젝트라면 대체로 주요 거래소에 상장될 만한 기술력이나 파급력을 갖추고 있다. 현재 가상자산 시장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 투자자보단 가상자산 시장의 흥망성쇠를 한 번쯤은 겪어본 소위 '고인 물' 투자자가 많기 때문이다. 


'고인 물' 투자자들 중 사전조사 없이 ICO에 참여하는 바람에 손실을 본 경우가 상당수다. 그렇게 한 번 당해보고 나서야 DYOR(Do Your Own Research)을 하게 됐고 프로젝트를 판단하는 안목이 예전보다 높아졌다. 그 결과, 유명한 벤처캐피털(VC)의 투자를 받았거나 현저한 기술력을 갖춘 프로젝트들만이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게 됐다. 


거래소들은 이처럼 커뮤니티에서 자주 언급되는 프로젝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보니 투자자들이 괜찮게 보는 프로젝트들이 주요 거래소에 상장되는 비중이 늘어났고 '어느 거래소에 상장' 소식은 이전만큼의 파급력을 지니지 못하게 됐다. 물론 특정 프로젝트가 바이낸스, 업비트 등에서 거래 지원이 시작되면 해당 가상자산의 가격이 오르긴 하지만 언론이 흥미를 가질 만한 뉴스거리는 아니라는 의미다. 


게다가 언론들도 '특정 프로젝트가 주요 거래소에 상장됐다고 해서 건전한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 나 역시도 기자 시절 2018~2019년 즈음에 상장 관련 보도자료를 써줬던 프로젝트들이 몇 년 후 스캠, 다단계 의혹이 터지는 모습을 보면서 회의감을 많이 느꼈다. 대체로 그런 프로젝트들은 "주요 거래소 상장"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투자자들을 모집하기도 했다. 


그 흐름을 봐온 기자들은 '상장 자료'를 처리하는 일에 부담을 느낀다. 분명 스캠, 다단계 피해자들 중 상장 관련 기사를 믿고 해당 프로젝트에 투자한 사람들이 있을 터다. 이는 언론의 신뢰도를 저하시킨다. 상장 자료를 내는 프로젝트를 일일이 검증하면 가장 좋겠지만, 블록체인을 담당하는 기자들은 그럴 여력이 부족하다. 대체로 블록체인 담당 기자들은 금융부 또는 IT부, 산업부 소속으로서 금융이나 핀테크, 게임 등도 같이 취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장 자료'는 애초에 기사화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  


2023년 5월 바이낸스뿐 아니라 국내 주요 5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에 동시 상장된 수이(SUI) 프로젝트처럼 이례적이야만 상장 관련 내용이 기사로 실린다. 그렇지만 이조차도 이미 철 지난 트렌드다. 2023년 8월 세이(SEI)도 5대 거래소에서 동시에 거래 지원이 시작됐지만 이를 보도한 기사 건수는 6건이었다. 수이 상장 관련 보도는 20건 넘게 나간 것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정리하자면, 'OO에 상장'이라는 보도자료는 국내 언론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데다 오히려 프로젝트에 좋지 않은 인식을 줄 수 있다. 차라리 'OO로부터 투자 유치', 'ERC 4337 업데이트 적용' 등 프로젝트 자체적으로 거둔 성과에 집중하는 편이 더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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