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까지만 해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다. 집에 있는 시간이 없다시피 했기에 동네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배경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니, 그 세계가 조금씩 달라졌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등하원시키는 길에서도, 장을 보러 간 마트에서도, 운동하러 간 헬스장에서도 익숙한 얼굴들을 마주한다. 담소를 나누거나 서로 웃으며 인사만 건네도 마음속이 괜히 따스해진다. 그 온기들이 모여 나는 녹은 버터가 되어 사르르 이 동네에 스며든다. 결혼과 동시에 이 동네에 이사 왔을 때만 해도 냉장고에 오래 둔 버터처럼 딱딱하기만 했는데 말이다.
엄마들끼리 직접 만든 반찬을 나누기도 한다. 일부러 가족끼리 먹을 양보다 많이 만들면서 나눠줄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막상 건네는 순간은 연애편지를 주는 것처럼 가슴이 콩닥거린다. '입에 맞아야 할 텐데'. 최근에 나눈 멸치볶음이 좀 짜게 된 듯하여 걱정이다.
어떤 날은 딸아이가 갖고 놀지 않아 쓸모 없어졌다는 타요 트랙 장난감을 받아왔다. 다른 날은 내가 아이에게 입히기 작아진 옷을 정리해 다른 집에 물려줬다.
이처럼 물건을 주고받을 때마다 우리 삶이 얼마나 이어져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이따금씩 유용한 정보도 주고받는다. 어디에 좋은 소아과가 있는지, 어린이집 대기 순번은 어떻게 확인하는지, 동네에 새로 생긴 작은 카페 소식도 빠뜨리지 않는다.
중고 거래를 하면서는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평소라면 가보지 않았을 곳에 들러보고, 그 길에서 예상치 못하 풍경에 감탄하기도 한다. 내가 사는 곳이 새로운 눈을 통해 다시 보이는 순간이다.
엄마가 되고 나니 동네가 열렸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에는 온 동네가 필요하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와닿는 하루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