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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여러 재테크를 시도한 한 해

by 쪼하

올해는 변화가 많은 해였다. 4월 중순 건강 문제로 회사를 관두면서 시작된 '외벌이 가정'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퇴사한 지 3개월 동안은 벌이도 없으면서 풀타임 워킹맘 시절처럼 돈을 흥청망청 썼다. 퇴직금이 3분의 1도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벌이가 없다는 건, 밑 빠진 독에 부어댈 물조차 없다는 의미였다. 밤늦게 술자리가 파했는데도 택시를 잡지 못하고 먼 길 돌아 대중교통을 타러 가던 선배들의 심정이 드디어 이해되기 시작했다. 외벌이 가정에서는 택시비는 엄청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빨리 프리랜서 일자리를 구하고 재테크도 공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결과, 올 연말은 제법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됐다. 아이의 문화센터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어린이집 고정 비용도 작년보다 늘어난 반면, 정부가 지원해 주는 비용은 작년보다 줄어들었음에도 이런저런 재테크로 어느 정도 지출을 막을 수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한 해 동안 일궈왔던 재테크의 풍경을 그려내고자 한다. '재테크'는 숫자로 시작해 숫자로 끝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보면 그 안에는 나의 희로애락이 녹아들어 있다. 용기 내어 매수한 주식이 수익을 냈을 때의 쾌감, 욕심부리고 성급하게 매수한 스스로에 대한 분노, 내가 판 주식이 더 올랐을 때 느끼는 아쉬움, 투자로 번 돈으로 아이 문화센터 재료비를 냈을 때의 뿌듯함 등등이 재테크에 여러 색채를 입혀준 것이다.




1. 투자: 미국 주식 — 마음을 붙잡아주다


올해의 투자 중심에는 미국 주식이 있었다. 30%를 훌쩍 넘긴 수익률.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내 판단이 맞았다'라는 희열. 재미를 볼 만큼 본 후에 더 욕심 내지 않고 팔았더니 최근의 '인공지능(AI) 거품론'으로 인한 하락장도 피할 수 있었다. 작년부터 미국 주식 투자 목표치는 해외주식 양도소득세 기본공제 한도 이상으로 잡고 있다. 누군가는 "세금을 내야 하니까 그 미만을 벌어야 하는 게 아니냐"라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1년 투자로 한 달 월급 이상도 벌지 못할 바에는 투자를 접는 게 낫지 않을까? 투자하는 데 드는 시간과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투자로 인플레이션 방어는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어쨌든 지금은 목표치 이상을 벌었기 때문에 걸음을 잠시 멈췄다.


디지털자산(가상자산) 투자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비록 욕심으로 인해 수익의 일부를 까먹었지만 결과적으로 연초에 비해서 조금이나마 벌었다. 다만, 포모(FOMO) 때문에 원래의 다짐처럼 목표치를 초과 달성한 이후에 쉬어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대신 금 현물 투자는 아주 잘한 일이었다. 처음 진입 때 6% 정도만 먹고 빠져서 아쉬웠지만 눌림목 구간에 다시 들어가서 1차 진입 때보다는 좀 더 많이 벌었다. 닭 쫓다가 지붕만 올려다보며 짖는 대신 지붕이 내려앉았을 때 올라가서 닭을 물었다. 투자를 하면서 기회에 좀 더 기민하게 반응하게 됐다.


2.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짠테크'


‘절약’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재정립하고자 했다. 참아내거나 궁상을 떠는 일이 아니라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습관으로 만들었다. 삶을 쥐어짜는 방식이 아니라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방식으로 꾸려 나갔다.
직접 키운 바질로 만든 바질 페스토, 새 상품이지만 신기지 못 한 채 '당근'에 올라온 아이 신발, 도매시장에서 들고 온 채소의 묵직함, 작은 포인트들이 쌓이는 알림에도 은근히 솟아오르는 기쁨. 8000보 이상 걸으면서 포인트를 쌓고 그런 앱에서 받은 쿠폰으로 저렴한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하는 일은 내게 투자로 돈을 벌었을 때보다 더 큰 기쁨을 줬다. AI로 만든 그림을 올려 푼돈을 쌓아가는 재미도 느꼈다.


커피값은 그동안 일하면서 이래저래 받았던 기프티콘과 이벤트성 할인 쿠폰으로 충당했다. 최근 '배달의 민족' 앱 내 이벤트를 통해 모 브랜드 커피 한 잔의 89원(890원 아니고 89원)에 마셨을 때의 그 쾌감이란!! AI로 버는 수익이 월에 몇 백 원밖에 되지 않는다고 투덜댔는데 AI에 그저 프롬프트만 입력해 올린 그림으로 커피 한 잔은 사 먹게 된 셈이다.


가장 큰 짠테크는 바로 건강 지킴이었다. 워킹맘 시절에는 몸을 갈아 넣어 일과 육아, 살림을 모두 해내는 대신 자주 아팠다.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며 자주 병원을 들락날락거렸고 병원비 한 푼 한 푼이 모여 꽤나 큰 지출이 됐다. 지금은 최소한으로만 일하면서 건강을 지키니 웬만한 일로는 병원을 잘 안 가게 됐다. 이전에는 힘들어서 배달 음식에 의존했는데 직접 요리해서 먹게 되니 위와 장 건강도 훨씬 좋아졌다.


이처럼 돈을 아끼는 일은 내 마음과 건강을 돌보는 일이기도 했다. 그간 온실 속의 화초로만 자라온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생활력이 있는 스스로를 대견히 여기며 자존감을 쌓아왔다.


3.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 애용하기


결혼하고 나서 한동안 지역화폐 가입조차 하지 않았다. 단순히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사하고 동네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어주자 지역화폐가 주는 '10% 할인 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다. 지역화폐를 쓴다는 이유로 다른 곳에서보다 10%나 싸게 모든 걸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고맙게도 문화 센터를 같이 다니며 친해진 엄마가 매달 초마다 지역화폐를 충전하라고 연락해 준다. 덕분에 매달 놓치지 않고 할인 효과를 만끽하고 있다. 온누리상품권도 올해 초 15% 할인 때 서둘러서 충전했더니 요긴하게 쓸 곳이 많다. 가끔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때도 온누리상품권이나 지역화폐를 쓴다. 요즘 지역화폐는 이벤트 기간이라서 페이백도 돌려주니 훨씬 유용하다.




올해의 재테크 주인공 - 묵혀둔 통장이 '깜짝 선물'이 되다!


가장 놀라웠던 순간은 정말 뜻밖의 곳에서 찾아왔다. 자동이체조차 해지한 채 얼어버린 주택청약종합저축 통장. 혹시나 싶어 깨지 못했던 통장이었다. 몇 천만 원이 묶여 있기에 작년 이사 갈 때 깨서 현금으로 보탤까 몇 번이고 고민했다. 그런데 올해 신생아 특례대출로 전환하던 순간, 작은 문구 하나가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청약 우대 - 가입 15년 이상. 납입 180회 이상 => 금리 우대 0.5% p"


2009년에 가입했던 나는 햇수로도 16년 차가 됐고 납입 횟수 역시 198회에 달했다. 내가 잊고 지낸 시간들이 조용히 쌓여 나를 돕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신생아 특혜대출 내용을 접했을 때는 전환해 봤자 금리 인하 효과가 미미하다고 생각했는데 청약 우대 요건을 적용하니 달라졌다. 청약 우대 요건도 적용하고 이래저래 하다 보니 향후 5년 동안 금리가 기존 금리 대비 1.6% p 낮아졌고, 이로써 수백만 원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저 ‘남겨두었다’는 이유만으로 수백만 원의 예상 지출이 사라졌다. 때로는 삶이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따뜻하게 돌아오기도 한다는 걸 올해 처음 배웠다.




2025년, 나는 농부처럼 여러 곳에 씨를 뿌리고 일부는 수확하기도 했다. 언젠가의 나를 믿었던 작은 선택들과 감정들이 모여 다양한 색채를 입히며 하나의 그림이 된 해였다. 위험 속에서 배운 신중함, 절약 속에서 느낀 풍요, 그리고 잊힌 통장에서 건네진 선물.


재테크는 돈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어떤 삶을 지켜가고 싶은지 등의 모호한 생각이 재테크를 통해 명료해진다. 내년에는 일희일비하지 않길, 스스로만의 투자 철학을 지켜내길, 금액이 어떻든 익절만으로 행복해하길, 좀 더 현명하게 소비하길... 이런 것들이 쌓여 나 자신이 조금 더 나답게,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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