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할 때,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곤 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대부분의 일은 그렇게 작은 신호를 무시하는 데서부터 생겨버리는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그 신호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은, 어느 밤. 아이가 꺼이꺼이 울면서 안방으로 찾아왔을 때였다.
“엄마, 머리가 너무 아파요. 으흐흐흐흑”
아이는 안방 문을 열고는 그 자리에 서서 눈물만 방울방울 흘렸다. 종종 머리가 아프다 배가 아프다 하곤 했지만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아픔을 호소한 일은 처음이었다. 순간 ‘응급실에 가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마음의 문제구나.’
다음 날은 마침 월요일이었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하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더니, 그 마음이 그렇게까지 번진 게 아닐까 싶어진 것이다. 아이는 다행히 옆에 누워서 쉽게 울음을 진정하고 잠이 들었지만 내 마음속은 아이가 보낸 작은 신호들을 뒤늦게 찾기 시작했다.
아이는 언젠가부터 아침 인사를 ‘배가 아파요’라는 말로 대신했다. 어떤 날은 머리가 아팠다. 어느 날은 멀쩡히 학교 간다고 나갔다가 엉엉 울면서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배가 아파서 도저히 학교에 갈 수 없다고. 걱정되는 만큼 짜증이 났다. 아프지 않은 게 분명한데, 아프다고 하는 것, 꾀병이 아닌 건 알고 있지만, 이 정도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것 같은데 어째 시간이 갈수록 횟수며 강도가 더 심해지고 있는 중이다.
소아과에서는 아이의 증상을 가볍게 치부했다. 아이를 진료실에서 먼저 내보낸 내 작은 배려가 무색하게 원장님은 너무나 큰 목소리로 그런 아이들 엄청 많다고, 다 배가 아프다고 왔고, 아무 이상이 없다고. 신경성일 뿐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1학년이라는 사실은 원장님에게 더더욱 큰 확신을 주는 듯했다.
‘남들도 다 그렇다’는 말은 때로는 위로가 되지만, 때로는 이해받지 못했다는 서운함을 남기곤 한다. 그때 내 마음도 그랬다. 내 아이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지만 그런 한 편, 공감받지 못한다는 묘한 서운함도 자리했다.
그러니까 이제껏 아이가 보낸 작은 신호에 내가 한 최선이라곤 동네 소아과에서 피검사와 엑스레이 검사를 하는 고작 그것과 ‘남들도 다 그래’라는 합리화로 눈을 가려버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이제야 더 이상 그냥 시간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모른 척 눈감을 때는 언제 더니 사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자 애가 타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아이가 큰일 날 거 같다는 생각에 침대에 누워서도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운이 좋게 유명한 정신건강의학과를 예약하고 1주일 후에 풀 배터리 검사를 하고 다시 열흘이 지나 검사 결과와 함께 담당 의사를 마주하기까지 시간은 참 더디게 흘러갔다.
그렇게 마주한 자리에서, 내 모든 염려가 그저 ‘기우’이길 바라는 마음과는 달리, 아이는 ‘불안장애’ 진단을 받은 것이다.
내 아이가, 내 아이가 불안장애라니!? 마치, ‘너 그동안 엄마 노릇 제대로 못했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