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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아서 병난 여자 Mar 07. 2022

육아서는 개뿔!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아주 오래전 책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입에 착 붙는 이유는 ‘육아’가 나에게는 ‘수렁’이었고 그 수렁에서 나를 건져 준 것이 육아서였기 때문이다. 세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는 끊임없이 육아서를 읽고 도움을 받았고, 주변에도 육아서를 읽어야 한다고 강력 추천하곤 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개뿔'인 육아서는, 내가 ‘읽은’ 육아서가 아니라 내가 ‘쓸’ 육아서이다.


그렇다. 나는, 육아서를 쓰려고 했었던 것이었다. 감히...말이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하는 서울대 입학생 정도는 아니어도 육아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체력적으로 후달리는 부분이야 아이가 커가면서 조금씩 나아졌고, 육아를 하며 찾아오는 다른 어려움은 오롯이 책을 통해 도움을 받았다. 오로지 맘카페를 동아줄처럼 붙잡고 있다가, 육아서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 첫 아이가 두 돌이 지나고 둘째가 태어난 다음이었다.


육아라는 수렁에 빠진 나를 한 권의 육아서가 건져줬고, 그 책을 필두로 육아서를 줄줄이 비엔나처럼 읽기 시작했다. 결코 이해되지 않았던 아이가 이해되었다.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되었다. 화내는 일도, 화나는 일도 줄었다. 아이와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졌고, ‘육아가 꽤 재밌는데?’라는 생각도 가끔은 할 경지까지 이르게 된다.


덕분에 두 아이는 잘 자라 주었다. 주변의 평가가 별 거냐만, 또 주변의 평가에 울고 웃는 게 엄마의 마음이지 않은가. 아이들은 한 번 본 사람마저도 칭찬할 정도로 밝고 맑았고, 학교 선생님들에게는 언제나 인성이 바르다는 말에서부터 시작되는 칭찬만 잔뜩 들었다.


주변의 평가는 차치하자. 제일 중요한 사람은 나. 무엇보다 나 스스로도 육아가 편해졌고, 마음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아이들과는 딱 적당하게 친구 같고, 엄마다운 엄마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사실 뭐 대단하게 뭔가를 한 것도 아니다. 천성이 게으르고 귀차니즘이 심했던 나는 육아마저도 열정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딱 하나 한 게 있다면 ‘존중’이랄까.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면서 우선 아이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애썼다. 모든 육아서에서 하나같이 말하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었고, 그것만 해줘도 육아가 편안했다.


물론, 처음부터 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언젠가 친정엄마가 나에게 ‘너는 육아가 체질이고라고 말씀한 적이 있다. 내가 얼마나 처절하게 공부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있는 말씀 이리라. 체질이 되기까지 혼자서 무던히도 읽고 쓰고, 밑줄 치고, 집안 곳곳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다.


내 속에 숨어 있던 미친 X이 슬슬 고개를 들려고 하는 순간이면 주문처럼 육아서의 구절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노력 없이도 마치 본능처럼, 아이의 입장을 먼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두 아이가 어디 내놓을 영재처럼 자라진 않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과 ‘부모와의 관계’라고 믿었고 그렇게 자랐기에 나 나름대로는 ‘성공한 육아’였다. 그리고 이러한 인성과 관계를 바탕으로 내 아이들이 꽤 괜찮은 어른이 될 거라는 어렴풋한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나의 이런 경험과 노하우를 담아, 육아서를 출간하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갖기에 이른다.


스무 꼭지 정도를 쓰면서 생각한 제목이 ‘나는 말로 육아합니다_발육아보다 더 쉬운 말육아’였다. 언제나 ‘내 생각’은 내 생각 속에서만 대단하게 느껴지는 법, 나 혼자 ‘이거다!’ 싶어서 흐뭇하게 씩~ 웃음이 나곤 했던 참이다.


육아서는 개뿔!


육아에 있어서 목에 힘 좀 줘도 된다고 생각하던 나는 아이의 불안장애 진단을 받으면서 신발가게에 신고 간 헌 운동화가 된 것 같았다. 나의 그런 마음도 모른 채, 둘째 녀석이 무슨 비밀 이야기를 하듯이 나에게 다가와 말한다.


‘엄마. 단우가 자기 전에 얘기해줬는데요, 엄마가 아이 마음을 더 공부했으면 좋겠대요’


더 이상 뭘, 얼마나 어떻게 더 공부하라고!

연이은 결정타에  나는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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