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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myi Jung Mar 04. 2020

한 장의 버스표가 가져온 행운

Traveler's note - 닛코는 닛코가 전부가 아니다 3

산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설경이 펼쳐졌다. 눈 덮힌 산이, 그 위에 가지만 남은 앙상한 겨울 나무들이 창 밖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넋놓고 보다보니 어느새 주젠지 호수 버스 정류장에 도책했다. 예약한 호텔은 정류장과 무척 가까웠고 호수가 바로 내다보이는 자리에 있었다. 사실 숙소를 예약할 적엔 누구하나 같이 올 친구가 있겠지 해서 2인으로 예약을 했지만 결국 혼자 오게 되어 전날 동료의 도움을 받아 1인으로 변경을 할 수 있었다. 다행인지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저녁과 아침 식사까지 포함된 플랜으로 예약을 바꿀 수 있었다. 비수기의 힘이란!


도착하자마자 일단 따듯한 물수건과 달콤한 로열 밀크티를 내어주는 다정한 곳이었다. 방을 안내받아 들어서는데 발코니 밖으로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이 층에서 가장 뷰가 좋은 방으로 안내 했다며 편히 쉬라하고는 직원이 나갔다. 바로 유리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어왔고 마음속으로 여행의 신에게 정말 고맙다고 이야기 했다.


불필요한 짐은 모두 빼고 가벼운 몸으로 다시 호텔을 나왔다. 해가 조금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5시반이면 어둑해질 것이 분명했다. 우선 가까이 있는 게콘 폭포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던데 계단으로 내려가서 웅장함을 확인하고 그냥 다시 올라왔다. 늦은 오후로 접어들고 있어서 역광이 되는 바람에, 가까이서 봐도 내가 생각한 모습은 보기 어려울 것 같고, 왠지 봄이나 여름에 폭포 주변으로 나무와 풀이 초록초록할 때 쯤 다시 와 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길가에 잔뜩 쌓인 눈을 보며 흡족해하며 호숫가로 돌아왔다.


주젠지 호수 주변에서 가고 싶었던 이탈리아, 영국 여름 별장으로 바로 향했다. 호숫가를 끼고 뱅-둘러가면 되는데,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다워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다만, 점점 길에 눈이 많아지더니 급기야 걸어가는 길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안내판을 자세히 보니, 4월-11월만 오픈을 하고 있었다. "여름"별장이구나 참.


행운의 여신이 도와주고 싶어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허탕치는 법.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길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 덕분에 호숫가의 나무들에 눈꽃이 녹았다가 다시 얼어버린,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장면을 눈에 담을 수 있어 무척 기뻤다. 차갑고 시린 아름다움을 가득 안고 호텔로 돌아오니 이미 산 너머로 해가 진 후였다.



산 아래서 부터 어둠이 차오르고 있었다. 방에 들러서 몸을 살짝 녹인 후 저녁에 마실 술을 사러 나갔다. 가까운 편의점은 6시가 닫는 시간이라고 구글맵에 적혀있었다. 그리고 주류점은 10시까지네. '여유가 있군'이라 생각하며 호텔을 나섰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곳은 기념품과 술, 간단한 차를 파는 조금 허름한 곳이었는데 , '나마자케 Take out'이라 적혀있길래 한 잔 손에 쥐고 걸으면 좋겠다 싶어 들어섰다. 맥주며 사케가 보이긴 했지만 일단 나마자케만 받아들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뜨듯한 종이컵을 손에 쥐고 호로록 마시며 편의점 근처에 도착했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아니 아예 영업을 하지 않는 듯 했다. 두번째 주류점도 마찬가지. 비수기는 할인과 여유를 주고 술 쇼핑을 앗아 갔다. 아뿔싸 싶어 부랴부랴 나마자케를 산 가게로 돌아왔다. 주인 아주머니는 나를 그 날의 마지막 손님으로 정하셨는지 가게는 이미 불이 꺼져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호텔로 돌아왔다. 술이야 호텔에도 있으니까.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혼자 온 손님이 나 뿐이라 가장 아늑한 구석 자리로 안내 받았다. 와인을 한 잔 시키고 식사를 시작했다. 저녁 코스는 정갈하고 맛있었다. 세이로무시에 사케를 한 잔 하면 좋겠다 싶어 닛코에서 나는 술로 요청했다.


식사를 마치고 술이 꽤나 남아있어서, 남은 술을 방에서 마실 수 있다길래 잔과 쟁반을 받아 방에 올려두고는 일단 온천을 했다. 탕에는 아무도 없어서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정말 추운 날이어서 노천 탕에 몸을 담그니 온 몸이 녹는 것만 같았다. 유황물의 온도도 딱 적당했다. 평상시보다 오래 몸을 담그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방으로 올라왔다.


짐을 정리하고, 가져온 책을 보며 사케를 한 두모금 마셨다. 온천을 한 후 몸이 풀렸는지 취기와 나른함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사케는 더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예정되어 있던 통화를 조금 하고, 해뜨는 시간에 맞춰 알람을 설정한 후 잠에 들었다. 오랜만에 푹 잠든 밤이었다.



숙소 정보 | Hotel Hanaan

이번 여행에서 주젠지 호수 초입의 Hotel Hanaan에서 묵었다. 적당한 가격에 위치가 좋은 곳을 찾아보니 옵션이 많지는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대 만족이었다.


바로 근처에 호시노 카이가 있지만 혼자 누리기엔 아까운 호사였다. 하나안은 다다미방과 침대 타입이 있고, 슥 보니 둘이 온다면 다다미 방이 있는 좀 더 넓으니까 편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체크인때 얼어있는 손을 녹일 수 있게 따듯한 물수건과 밀크티를 준비해주셨고, 객실 중에서도 호수 뷰를 잘 볼 수 있는 방으로 안내받았다. 이름에 맞게 곳곳에 꽃잎 모양의 소품과 식기가 쓰인 것이 무척 귀여웠다.


크게 화려하거나 멋지기보단 정갈하고 필요한 것들이 잘 갖춰져 있었다. 저녁도 이곳에서 해결했다. 세이로무시가 포함된 식사였고, 와인과 사케를 곁들였다. 자그마한 노천탕이 있고 필요한 것들은 모두 갖추어져 있어서 특별히 많은 걸 챙겨 오지 않아도 괜찮다.


채크인은 세시부터 체크아웃은 열한시.

주젠지 호수 바로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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