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er's note - 닛코는 닛코가 전부가 아니다 (2)
일단 표를 들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신쿄 다리와 동조궁을 향해 출발했다. 생각보다 너무 가까웠다. 버스를 타자 마자 5분만에 내려 다리에서 사진을 찍고 동조궁까지는 걸어야겠다 싶어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표지판과 구글맵을 아무리 살펴봐도, 나는 계단과 언덕을 올라야 하는 것이 아닌가. 버스를 그냥 탈걸.. 싶었다. 그리고 산뜻하게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모닝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찾아둔 카페는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서 나의 방문 의욕을 꺾었다. 그리고 누가봐도 딱히 맛있는 커피를 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왔다. 공복운동이라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이날은 몹시 춥고도 청명한 날이었다. 20분 정도 계단을 오르고 언덕을 올라 동조궁에 도착했다. 이모지에도 있는 귀와 입, 눈을 가린 원숭이 산자루를 보았고, 금박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요메이 문도 구경했다. 207개의 계단을 올라 이 모든 것의 주인공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도 한바퀴 돌았다. 동조궁은 닛코에 왔다면 한번은 꼭 들러볼만한 곳이었다. 그의 별명이 '인내의 신'이라던데 207개의 계단을 오르며 인내의 신으로 불렸다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훈을 계속 곱씹었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를 필요 없다. 자유롭지 못함을 항상 곁에 있는 친구로 삼는다면 부족할 것은 없다. 마음에 욕심이 생기면 궁핍했을 때를 걱정하라. 인내는 무사장구 (無事長久)의 근원이요, 분노는 적이라 생각하라.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것을 모르면 그 피해는 너 자신에게 돌아갈 것이다. 너 자신을 탓할 뿐 남을 탓하지 말라. 미치지 못함이 지나친 것보다 낫다.
궁을 나서니 좌판에서 甘酒라는 것과 찹쌀떡을 팔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침 공복에 추웠던 나는 냉큼 그 줄을 섰다. '아.. 빈속에 술 마시면 곤란한데... 괜찮겠지? 뜨거운 술이니까?'라는 생각을 하며. 그런데 왠걸 앞에 쓰여진 설명을 일다보니 甘酒는 아마자케, 일본식 식혜였다. 알콜은 전혀 없고 당과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달달한 원기 회복제에 가까운 것. 매우 기쁜 마음에 쑥 찹쌀떡과 뜨끈한 아마자케를 순식간에 먹었다.
일단 살짝 허기는 달랬으나, 카페인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생각에 점찍어둔 두번째 커피집인 NIKKO COFFEE로 향했다. 실패가 없을 것 같은 멋진 외관에 로스팅도 직접하는 것 같아 일단 마음이 놓였다. 들어가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받았는데, 런치메뉴가 있었다. 배고픔이 밀려왔고 나는 홀린듯이 몇일 전부터 이상하게 먹고싶던 갈레뜨를 주문했다. 메밀향 가득한 갈레뜨를 먼저 먹고 난 다음 진하게 내려진 커피까지 든든히 마시고,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다가 바로 근처의 Kanaya 호텔의 시작인 카나야 사무라이 호텔 역사관이 무료 개방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들르게 되었다.
일본 목조 가옥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진다.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달까. 혹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 정확하고 아름다운 비례미를 마주하고 있으면 '나는 내 할 일만 잘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드는건 나 뿐일까. 비례감이 주는 평온함과 안정감이, 동시에 삐그덕 대는 목조 건물 특유의 리듬감이 느껴지던 곳이었다.
무튼 아무도 없는 아름다운 일본식 정원과 가옥을 혼자서 맘껏 즐기고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나왔다. 짐이 너무 무거우니 얼른 짐을 호텔에 놓고 다시 나와야겠다 싶어 버스를 기다렸다. 바로 옆이 가고 싶어 했던 타와자와 빌라였지만 일단은 패스하고, 내일 여유가 되면 둘러보자 생각했다.
10여분을 기다리니 주젠지 호수로 가는 버스가 왔다.
버스는 출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구불구불한 산 길로 들어섰다. 그때 알았다. 주젠지 호수가 산 너머 엄청 위쪽에 있구나! 괜히 40여분을 가야하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