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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May 04. 2024

재밌게 살기

 요즘 사는 게 좀 갑갑했다. 힘들게 일하고 돌아오면 해야 할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가 돌아오면 좀처럼 혼자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다. 아들이 놀아줘야 한다거나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영유아가 아니건만, 한 공간에 함께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힘들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찾으려면 아이를 홀로 집에 두고 나가면 되지만, 내가 없는 시간 내내 텔레비전을 볼 아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내 방에 책상과 편한 의자를 구매해 방에서 시간을 보내볼까 싶어 가구를 검색하다 괜히 돈만 쓰고 짐만 늘어나게 될까 싶어 그만두기도 했다. 

 

 글도 쓰지 않고, 만화도 그리지 않고, 수영과 헬스도 가지 않고 일주일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흘렀고 주말을 맞았다. 

 그간 몇 개의 생각을 했다.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책을 내려는 노력을 그만두겠다는 것이다. 글을 쓰고 책을 내서 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원대한 포부를 내려놓으면 사는 게 좀 편해질 것 같아서이다. 

 집에 머무는 시간에는 늘 무언가를 써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어렵게 자리를 잡고 앉아도 도무지 쓸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을 머리를 쥐어짜다 억지로 한 편의 글을 마무리하곤 했다. 성취감보다는 ‘이렇게 써서 뭐 하나.’ 찜찜한 마음이 더 컸다.

 글감이 떠오를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날만 글을 쓰리라 마음먹었다. 원고를 완성해 투고하겠다는 각오는 일주일 만에 접었다. 무언가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면 사는 게 덜 갑갑할 것 같다. 

 

 수요일에는 아이와 축구를 보러 갔다. 관심도 없는 K리그 경기라 집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근로자의 날이었지만 근무를 했고, 갑자기 손님이 몰려들어 몹시 피곤한 날이었다. 손이 느리고 서툴러 퇴근 시간을 30분이나 넘겨 업무를 마치고 허둥대며 집에 돌아온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못해 축구장에 도착하니 예상 밖의 풍경이 펼쳐졌다. 텅 빈 관중석을 생각했는데 경기가 시작되기 전인데도 주변은 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경기장 밖에 늘어선 푸드트럭 마다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아이와 대열에 합류해 두 손 가득 간식을 사서 경기장에 들어섰다. 그날 공식 집계된 관중 수는 만 명이 넘었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 시야에서 너무 가까워서 깜짝 놀랐다. 그들의 움직임은 역동적이었고 한 명 한 명 사력을 다해 경기에 임하고 있었다. 아는 선수라곤 없었지만 한 시도 그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몸싸움은 치열했고 골 찬스는 급작스러웠다. 

 후반전에 홈팀이 3골을 넣었다. 골이 터질 때마다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이 서포터즈에게 팬 서비스를 하는 장면까지 지켜보고 경기장을 나섰다. 목이 잠길 정도로 소리를 지른 날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이른 출근에 대한 초조함은 없었다. 다음 날도 평소보다 가볍게 일어날 수 있었고, 일터에서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오랜만에 소리를 지르며 갑갑함이 해소된 듯했다. 살아가면서 환호하고 목청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노래하고 싶을 땐 목청껏 불러제끼고 역동적인 걸 보며 환호하리라 마음먹었다. 가끔은 돈을 쓰고 운동 경기를 보거나 공연을 보리라 다짐했다. 그게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걸 새삼 깨달은 하루였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배달 음식을 시키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몰아보는 누군가의 일상을 한심하게 여겼다. 그러지 않기 위해 보란 듯이 퇴근 후 도서관에 다니고 매일 운동을 갔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해야 두 발을 뻗고 잘 수 있었다. 텔레비전을 켜는 대신 책을 읽는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어떤 사명감을 갖고 미리 식단을 짜 매일 아침, 간식, 저녁을 만들었다. 그러다 그 모든 게 사실은 하기 싫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좀 편하게, 즐겁게 살고 싶다. 죄책감 없이 OTT 드라마에 빠져보고 싶다. 가끔은 반찬 가게의 도움을 받고 싶다. 가계부를 쓰며 쓸데없는 지출을 의미하는 엑셀 칸에 빨간색 표시를 하고 싶지 않다. 글과 만화 같은 건 그냥 재미로 하고, 압박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검열도 하지 않고 읽고 싶은 걸 읽고 싶다. 체중계에 오를 걱정 없이 맛있는 저녁을 즐기고 싶다. 

 그렇게 살아보기로 했다. 뭐든지 열심히 하고, 의미를 찾고 목표를 갖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가끔은 대충하고 무의미 속에서 깔깔대고 싶다. 소리 지르고 환호하고 싶다. 그냥 이 순간 재밌게 살고 싶다. 이젠 정말 그렇게 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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