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글을 쓰는 대신 무엇을 하는가? 그것에 대해 쓰라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 낸시 슬로님 애러니 지음, 돌베개 39쪽
글감을 찾지 못해 머리를 쥐어짜다 얼마 전 읽은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이 떠올랐다. 책의 챕터 마다 끝자락에 ‘길잡이’가 실려있는데, 나에겐 글쓰기 수업의 핵심이자 꽃인, 다음 주 수업까지 작성해야 할 과제처럼 느껴졌다. 물론, 검사받을 필요가 없으므로 실제로 글을 쓰진 않았다.
무언가 써야 했기에 책을 가져와 ‘길잡이’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내용이 짧은데다 워낙 와닿아 전체를 옮겨 적어 냉장고에 붙여놓은 챕터의 길잡이를 오늘의 글감으로 정했다.
본문의 내용은 이렇다. ‘반짝반짝 빛날 정도로 완벽하게’ 싱크대 수챗구멍의 물때를 없앤 작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째서 싱크대를 청소할 시간이 났을까, 의문을 품다 작가는 그것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깨닫는다.
글을 쓰려고 자리를 잡은 게 오후 네 시부터다. 나는 그전까지 글을 쓰는 대신 무엇을 했더라.
오전엔 아르바이트 근무를 했다. 일하는 것처럼 글 쓰는 일에 전념해보는 것은 오랜 시간 품어온 꿈이다. 그러니까 매일 6~7시간 출근해서 퇴근하듯이 앉아서 무언가를 계속 써보는 생활, 전업 작가들이 그러듯이 말이다. 실천에 옮기지 못한 것은, 역시 ‘돈’이 이유다.
출근해서 근무하듯 글을 쓴다고 해서 임금이 나오지 않으며 그렇게 쓴 글이 소득으로 이어지리란 보장도 없다. 그래서 결국 일하고 남은 시간에 틈틈이 글을 쓰지만 역시 쉽지 않다.
달리 생각해보면 전업 작가 생활은 언제든 실현 가능한 꿈이다. 지금 하는 일은 그야말로 아르바이트, 그러니까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얼마간 돈을 모아 종일 ‘쓰는 생활’을 해보리라, 글을 쓰다가 갑자기 새로운 꿈을 꿔보게 되었다.
퇴근 후엔 잠깐 누워서 쉰다는 게 깜빡 잠이 들었다. 아이가 하교한 후엔 간식을 먹이고 책을 읽으러 방에 들어갔다가 또다시 잠들었다. 요즘 나, 많이 피곤한가 보다. 머리만 대면 잠이 온다.
잠에서 깨어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았으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요즘 절감한 것, 나는 앉으면 무조건 문장이 나오는 스타일이 아니다. 뭐라도 쓸 만한 거리를 미리 발견하지 못한 날이면 문서를 펼쳐놓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결국 일기를 쓰는 경우가 많다. 일상에서 글감을 잘 포착하자고, 좀 더 생생히 느끼고 여유를 갖자고 다짐해본다.
보통은 글을 쓰는 대신 이런저런 해야 할 일을 한다. 미룰 수 없는 집안 정리나 식사 준비 같은 것들, 아이 숙제를 확인하는 것.
그러니까 일도 하고 집안도 돌보며 아이를 돌보며 글을 쓰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가능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에겐 힘겹기만 하다.
작은 요정들이 대신 쓸고 닦아주거나, 청소대행업체를 고용하지 않는 한 주어진 선택지는 한정되어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글을 쓰고 싶은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도 뻔하다. 돈을 벌고 있다는 안정감과 깨끗한 싱크대로는 자전적 에세이를 완성할 수 없을 것이다.
‘깨끗한 싱크대로는 세상 사람들을 치유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쓴 책으로는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작가의 마지막 말에 한껏 고무되어 퇴사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본다. 여섯 시간의 근무 시간을 어떻게 채워갈지 머릿속에 상상을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