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피드백이 난무하는 일터. 정확하게 말하면 이렇다. 오늘도 ‘나에게만’ 피드백이 난무하는 일터.
일터에 십오 분 먼저 도착해 후딱 옷을 갈아입고 나와 매장을 돌며 어제 재고를 정리를 마치니 파트너가 출근했다. 조명을 켠 후 완제 케이크의 진열을 마치고, 구워서 나온 빵에 크림을 충전하거나 파슬리를 뿌리고 포장함과 동시에 수량을 확인 후 시스템에 입력한다. 간간이 손님이 들어서면 하던 일을 멈추고 응대와 계산을 한다.
손님이 없는 틈에 샌드위치를 만들던 직원이 나에게 질문을 가장한 피드백을 해온다. 애쓰고 있는 내 모습이 힘들어 보여서 그런가, 착각을 하려던 차에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언니가 손이 빠른 편도 아니고.” 인정은 개뿔, 역시 내가 일을 잘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을 돌려서 하는구나 싶어 기분이 울적해진다.
손이 느리다는 말, 처음은 아니다. 심지어 영어로 “extremely slow”라는 말도 들은 적 있다. 기운이 빠져있는 와중에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 빵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원래부터 손이 빨랐나, 아니면 하다 보니 손이 빨라진 건가. 그렇다면 나에게도 손이 빨라지는 날이 오게 될까.
혹시 손이 느린 사람은 알아서 떨어져 나가고 손 빠른 사람들만 남은 건 아닐까. 이들은 나처럼 손이 느린 사람을 떨구어 내는 역할에 익숙해진 걸까.
아무튼 직원들은 오래 근무할 성실하고 선량한 동료(즉, 나 같은 사람)보다는 자신의 업무를 수월하게 할 손이 재빠른 동료를 선호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다행히도 경영자는 ‘빠른 손’보다는 장기 근무 가능 여부를 좀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요즘 자주 근무자가 바뀌어 면접 보는 일로 인한 피로감을 호소하며 “오래 근무”해 달라고 강조를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가끔 구인 공고를 보면 ‘손이 빠른 분’을 선호한다는 글이 보인다. 특정 프랜차이즈의 경력자를 우대한다는 모집 글도 있다. 애초에 그런 곳은 지원하지 않았더랬다. 지금 근무하는 빵집도 6개월 이상 근무자라는 항목 외에 나이나 성격, 손이 빠름 같은 조건은 붙지 않았다. 나도 억울하다면 억울하다.
일은 배워서 하면 되고 열심히 일하다 보면 저절로 속도가 빨라질 거라 믿었다. 나는 나를 충분히 기다려줄 수 있는데, 다른 직원들은 기다려 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경력이 있어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거나 타고난 빠른 손을 가진 직원을 그들은 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개다.
첫째, 손이 느린 내가 그들을 위해 이곳을 떠나준다. 경영자는 새로 직원을 뽑을 테고, 경력이 있거나 손이 빠른 이가 오면 직원들은 즐겁게 일할 것이다. 그들에겐 해피엔딩, 나에게는 글쎄?!
둘째, 느린 손으로 그냥 일한다. 매일 내 안에 차곡차곡 피드백을 쌓아가면서. 직원분들, 느린 사람과 일하는 게 어떤 건지 한 번 계~속 겪어보세요.
그나저나 손이 느리다는 게 그렇게나 큰 잘못인지 모르겠다. 빠르지 못한 손이지만 일을 못 마친 적은 없다. 직원들은 답답할지 몰라도 포장이나 계산이 느리다고 손님이 화를 낸 적은 없다.
손이 느린 사람, 일머리가 없는 사람을 품어주고 보듬어주는 사회는 불가능한 걸까. 성실하고 열심히 하려는 나를 깔아뭉개지 못해 안달들일까.
이런 생각으로 계속 근무하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아직 ‘때려칠 때’라는 확신은 들지 않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포기 선언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피드백이 난무하는 일터에서 잠깐 울적해지긴 해도 타격 그리 크진 않다. 하지만 칭찬이 아닌 부정적 피드백과 못마땅한 표정을 꾸준히 보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 열심히 일하는 와중에 유쾌하고 싶은 건 나의 욕심일까.
결론이 쉽게 나지 않는 글, 마무리는 이렇게 하고 싶다. 나는 나의 느린 손을 사랑한다. 빵을 재빠르게 포장하지 못해도 잘하는 게 많은 손이다.
자판 위에 멈춘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예전보다 핏줄이 도드라져 보인다. 씻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 건조하고 거칠어 보인다. 왼쪽 검지에는 지난 주 뜨거운 철판에 덴 자국도 보인다.
충분히 애쓰고 있는 나의 소중한 손, 잠자리에 누워 핸드크림을 넉넉하게 바르고 마사지를 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