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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씨 May 13. 2024

좀처럼 돈을 쓰지 못하는 나 그리고 막막한 나

 

 일요일 오전에 진행되는 영어 회화 모임에 처음으로 참여한 날이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기 전 혼자 이곳저곳 방황을 했다. 곧장 집으로 향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모임 장소 근처 눈여겨 봐둔 상점을 찾아갔으나 오늘은 문을 열지 않는 날이었다. 주차한 곳으로 돌아오며 꽃집 앞에 늘어놓은 화분을 구경했다. 상점 주인이 있었으면 하나 샀을 텐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인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떡집에서 떡을 한 팩 살까, 잠깐 망설이다 그냥 지나쳤다. 다용도실에 넘쳐나는 간식들이 떠올라서였다. 

 갑자기 다이어리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오는 길 대형 문구점이 입점한 아웃렛 매장을 찾았다. 휴일이라 사람이 많아서 입구에서 꽤 먼 곳에 주차하고 한참을 걸어 매장에 도착했다.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은 다이어리가 두 종류 있었는데 각각 만원 후반대, 2만 원 초반대였다. 인터넷으로 사면 종류도 많고, 훨씬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지를 몇 번이고 뒤적이다 결국 다이어리를 내려놓았다. 이어서 책상 위에 올려두고 싶은 조립용 장난감과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책의 신간을 살까 말까 망설이며 시간을 보냈다.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선 나를 보고 아들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배고파."였다. 장을 보지 않아 딱히 해줄 음식이 떠오르지 않아서 막막했다.

 점심과 저녁의 중간쯤 되는 어중간한 시간이어서 조금 버티다 저녁을 먹었으면 싶었다. 간식을 만들어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저녁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는 다시 배고픔을 호소하지 않았다. 어쩌면 외출 후 돌아온 엄마를 보고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습관적으로 배가 고프다는 말이 나왔을 수도 있다.      

 일요일 오후, 아이와 둘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무엇을 할지 막막했다. 요즘 아들과 단둘이 있을 때 드는 솔직한 심정은 막막함이다.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모르겠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아이에게 함께 서점 나들이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주말 내내 아들은 집에서 머물렀다. 어디든 외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자기 방 침대에서 누워있던 아이는 나의 제안을 거절하며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없는 동안 이미 핸드폰 게임과 영상 시청을 했을 텐데 또다시 미디어를 시청하는 게 탐탁치 않아 대답 없이 방을 나왔다.      

 벌써부터 방학 기간에 아이와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지 걱정이 되었다. 책상에 앉아 검색창을 열고 '필리핀 단기 연수' 프로그램을 찾아보았다. 막연하게 영어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과 낯선 곳으로 떠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몇 개의 광고성 글을 클릭해서 읽다가 그만두었다. 영어를 공부해서 무얼 하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고, 비용도 걱정되었다. 이어서 뮤지컬, 연극, 콘서트 공연 티켓을 구매하는 사이트를 방문해 좀 둘러보다 나왔다.      

 결국 아이와 둘만 남았다. 왜 오늘치 독서나 숙제를 하지 않는지, 숙제부터 시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숙제 이야기를 꺼내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불만을 띈 아이의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방에서 글을 쓰고 있고 아이는 거실 소파에 앉아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 

 평일도 모자라 주말까지, 아무런 일정이 없는 날이면 그렇게 막막할 수가 없다. 도대체 아이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걸까?

 함께 자전거를 타거나, 아이를 동반하고 친구 엄마를 만나야 하는 걸까? 매번 새로운 경험이나 교외 나들이를 준비해야 하나? 이 모든 게 귀찮고 내키지 않는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닌 걸까?      

 막막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아이의 심기를 거스르며 숙제를 강요하고, 그 대가로 영화를 한 편 허락하고, 매일 거기서 거기인 저녁을 차려낼 생각을 하니 너무나 막막하다. 

 어쨌든 거실로 나가봐야겠다. 더는 쓸 말도 없어 글이 마무리되었으니 말이다. 

 일요일 오후 다섯 시, 아이와 무얼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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