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다. 킹덤을 아주 재미있게 봤고, D.P의 완성도에 큰 감명을 받았다. 스위트 홈도 빼놓을 순 없겠다.
그래서 오징어 게임에도 기대가 컸다. 캐스팅 좋고, 설정 좋고. 온라인에 있는 부정적인 평에 대해서도 전해 들었지만 끝까지 봤다. 그런데 결국 돌아온 것은 크나큰 실망이었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자면 오징어 게임은 이 세상에 없어도 됐을 콘텐츠다.
실망스러운 부분을 모두 들자면 여러 포인트가 있다. 수위 높은 폭력성, 불필요하게 디테일했던 정사씬, 부족한 개연성, 비슷한 종류의 콘텐츠의 공식을 한치도 거스르지 않는 클리셰 수준의 뻔한 캐릭터들… 하지만 그것들은 오징어 게임의 부족한 점일 뿐 존재 가치까지 깎아내릴 만한 결함은 아니다. 애초에 데스게임이라는 설정이 판타지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현실세계와 연결고리가 허술한 것은 오히려 용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오징어 게임의 치명적 결함은 콘텐츠의 본질적 존재 가치에 대한 사유의 결여다.
오징어 게임 이전, 최근 접한 콘텐츠 중 가장 혐오했던 것은 펜트하우스다. 펜트하우스는 종합적 의미로 ‘선정성’이 높은 콘텐츠가 방송가의 트렌드가 되는 시발점이 됐는데, 시즌1의 선풍적 인기로 생긴 호기심에 시즌2를 보면서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무엇인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즌3 시작 후 딱 두 화를 보고 손절했다. 자극적 전개를 위해 모든 개연성을 쌈 싸 먹은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기 위해선 다른 요소들은 모두 하찮게 취급해야만 했고, 그럴 때마다 내 스스로 그저 흥미롭기만 하다면 다른 건 알 바 아닌 ‘개돼지’를 자처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름 권선징악 같은 흐름을 넣기는 했으나, 복수의 끝에 뭐라도 있어야 되니까 마지못해 넣은 수준이다. 복수의 과정조차 모두 돈과 얽히지 않은 것이 없다.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비극을 그린 것인지, 지면 비극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콘텐츠는 방송사의 돈벌이 목적을 제외하면 없어도 되는 콘텐츠다. 뒤를 이어 나온 온갖 아류들도 마찬가지다.
오징어 게임은 펜트하우스와 닮은 구석이 많다. 차이가 있다면 개연성은 전반적으로 펜트하우스보다는 나은 수준이지만, 주제의식에 있어서는 그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456명의 사람이 탈락해서 죽거나 죽어서 탈락하는 잔혹한 데스게임을 벌인다는 설정이다. 그렇다면 그런 자극적인 묘사를 대규모 자본, 많은 사람들의 시간, 그 사람들의 노력을 투자해서 만들 만큼 누군가에게 전할 가치가 있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난 분명히 그런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9화를 모두 달렸다.
하지만 마지막에 나온 게임의 이유는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왜 이런 게임을 했냐는 기훈의 질문에 오일남은 돈이 많으니까 사는 게 아무것도 재미있지가 않아서 수백억의 상금을 걸고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게임을 만들었다고 대답한다. 한 시간 반짜리 영화도 아니고 9화짜리 드라마의 결말이 고작 이거다. ‘더 이상 달달한 콘텐츠는 인기가 없어서 극한의 선정성을 담아봤어’라는 빈약한 콘텐츠 기획의도가 그대로 치환된 답변이라고 생각된다. 작품의 대사는 작가와 감독의 뇌구조를 반영한다. 오일남이라는 이름처럼 그의 설명은 게임의 정당성에 전혀 섞이지 못하고 기름처럼 둥둥 떠다닌다. 오징어 게임 감독이자 작가인 황동혁 감독의 전작들이 담고 있던 메시지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과정에서 주는 메시지가 있느냐? 그것도 아니다. 상황마다 발현되는 메시지들이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한다. ‘삶/생존은 깨끗하기만 해서도, 더럽기만 해서도 할 수 없다’ 이런 메시지를 의도했다면 이보다는 훨씬 세련되게 다듬어져 있어야 했다. 어찌 보면 이런 관점은 콘텐츠의 존재 목적 중 하나인 ‘오락성’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시각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콘텐츠는 결국 콘텐츠가 품을 수 있는 여러 가치들을 과도한 결여 없이 골고루 품고 있을 때 나오는 것이고, 오락성에만 집중한 콘텐츠는 재밌는 작품이 될 수는 있겠지만 좋은 작품은 절대 될 수 없다. 오징어 게임은 이름처럼, 아주 못생긴 작품이다. 개그맨으로치면 아무 아이디어도 없이 그냥 얼굴로 웃기는 개그맨인 셈이다.
이야기하다 보니 없어도 됐을 작품이라는 평가도 좀 후하다 싶다. 이강희 논설주간처럼 말해보겠다. 단어 두 개만 바꿉시다. 없어야 할 작품으로. 오징어 게임도, 펜트하우스도, 그 아류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