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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향노루 Feb 06. 2022

몰랐기에 남아버린 짙은 아쉬움

[City Profile] 바르셀로나, Barcelona

종종 그런 여행지가 있다. 나름대로 잘 즐기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과 그 여행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왜 저걸 몰랐지?’, ‘나는 왜 저렇게 못 즐겼지?’ 자문하며 아쉬움을 가득 느끼게 되는 곳.


내겐 그런 여행지가 두 곳 있다. 첫 번째는 암스테르담이다. 두 번이나 갔지만 매번 장기 여행의 끝물에 배치된 탓에 ‘레임덕’을 극복하지 못하고 여행자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남은 사진도 적고, 떠오르는 기억도 희미하다.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바르셀로나다.


NIKON D80 +  AF-S DX Nikkor 18-55mm F3.5-5.6


바르셀로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여행지다. 런던 편에서 런던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약간 깎아내리는 듯 언급하기는 했으나 따뜻한 날씨, 바다, 예술, 역사, 스포츠, 음식, 패션 등 좋은 여행지가 가지는 여러 요소들을 두루두루 가지고 있으며 그 수준도 높다. 무엇을 기대하고 가던지 실망하기가 어렵다.


NIKON D80 +  AF-S DX Nikkor 18-55mm F3.5-5.6
NIKON D80 +  SIGMA 17-70mm F2.8-4 DC MACRO OS HSM


첫 여행에서 나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두 라 리가 팀 FC 바르셀로나와 에스파뇰 경기를 모두 봤다. 에스파뇰은 평범한 순위만큼이나 평범한 경기로 지루함을 안겨줬다. 바르샤의 2008-09 시즌은 바르샤 역사와 축구 역사에서 모두 손에 꼽을만 한 위대한 시즌이었던 만큼 아름다운 골로 가득한 아름다운 경기를 보여줬다. 두 번째 여행에서는 바르샤와 바이에른 뮌헨의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을 봤다. 메시의 맹활약 속에서 바르샤가 3:0 완승을 거뒀다. 10만에 가까운 대관중이 오컬트 집회 주문처럼 메시의 이름을 합창하던 소리가 귓가에 아직도 맴돈다.


왜 여행기를 쓰면서 축구 본 이야기만 하고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듯한데, 이게 바로 내 바르셀로나 여행의 문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 많은 매력이 있는 도시에서 나는 만사를 제쳐두고 그저 축구에만 정신을 팔고 있었다. 여러 날을 머물며 축구 이외의 것들을 즐기기는 했지만 그것은 축구경기가 열리는 날을 하릴없이 기다릴 수 없으니 했던 타임킬링 가까웠다. 몰라도 너무 몰랐다.


NIKON D80 +  AF-S DX Nikkor 18-55mm F3.5-5.6
NIKON D80 +  AF-S DX Nikkor 18-55mm F3.5-5.6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로지 축구만 좋았기 때문은 아니기도 하다. 사실 바르셀로나가 자랑하는 많은 것들 중에 내 취향에 맞는 것이 그리 많지는 않았던 탓도 있다. 먼저 바르셀로나가 그렇게 자랑해 마지않는 가우디. 내가 건축에 조예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심은 있고, 대개 건축가의 의도나 철학에 대한 설명을 접하면 그에 맞게 이해하려고 굉장히 노력하는 타입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가우디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특성은 알아볼 수 있었지만, 다소 광적이고 기괴하고 유사성이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피카소의 작품들도 약간은 비슷한 인상이었다. 광기의 바르셀로나...


NIKON D80 +  AF-S DX Nikkor 18-55mm F3.5-5.6


박물관과 거리 곳곳에서 드러나는, 정확히는 그것들을 통해 드러내는 ‘카탈루냐’의 진한 정체성은 그들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현대사회에 맞지 않는 과도한 지역주의라 느껴지는 측면도 있어 마냥 달갑지 않았다. 이탈리아인들의 건방진 태도와 비슷한 인상이었다고 할까... 높은 생활수준만큼 높은 물가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 바르셀로나는 매력 포인트가 많다. 내가 실수한 부분은 대표적인 매력 포인트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취향에 맞는 매력 한 가지에만 매몰되고 다른 매력을 더 찾으려 노력하지 않은 점이다.


NIKON D80 +  AF-S DX Nikkor 18-55mm F3.5-5.6
NIKON D80 +  AF-S DX Nikkor 18-55mm F3.5-5.6


내가 두 번의 여행을 다녀온 뒤 여러 콘텐츠에서 본 바르셀로나의 모습은 내가 접한 그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들이 보여주는 것이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3년 전 회사 동료가 신혼여행으로 바르셀로나를 다녀오며 찍은 사진들에 담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매력적인 장면들을 보며 나는 나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더욱 내가 원망스러운 것은 바르셀로나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니 나 역시도 그것들의 대부분을 마주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저 셔터를 누르며 스쳐 지났을 뿐이었다.


NIKON D80 +  AF-S DX Nikkor 18-55mm F3.5-5.6


지금의 나는 즉석에서 썰어낸 하몽을 먹지 못한  너무나 원통하고, 해 질 녘 바르셀로나의 풍광을 벙커에서 내려다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다. 골목을 돌아다니며 평범한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삶을 더 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게 슬프다. 2015년 6월에는 다시 바르셀로나를 갈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내가 바르셀로나를 갔다 온 사람이라고 말하면 반쯤은 거짓말이지 싶다. 바르셀로나가 아닌 바르셀로나 축구를 관광하고 온 모지리……


NIKON D80 +  AF-S DX Nikkor 18-55mm F3.5-5.6
NIKON D80 +  SIGMA 17-70mm F2.8-4 DC MACRO OS HSM / NIKON D80 +  AF-S DX Nikkor 18-55mm F3.5-5.6


나는 앞으로 그 짙은 아쉬움을 미래를 위한 약속으로 남겨두려 한다. 그리고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고 노력하는 만큼 즐길 수 있다는 기본 중의 기본을 가르쳐 준 바르셀로나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이 뼈아픈 경험을 기록으로 남긴다. 나 같이 멍청한 축덕, 더 이상은 naver…….라는 아재개그로 마무리.


[번외 에피소드]

2015년 두 번째 여행에서 구엘 저택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여행 중엔 소매치기 때문에 항상 접촉에 민감한 상태가 되는데, 고개를 들고 건물을 보는 중 누군가가 내 팔을 덥석 잡았다.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데, 얼굴을 보니 어디서 참 많이 본 사람이었다. 사촌누나... 한국에서도 우연히는 마주쳐본 적 없는데 그 먼 곳에서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알아보기까지. 세상이 좁은 건지 로또 맞을 운을 거기에 써버린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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