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배 Nov 02. 2020

하루 정도는 아날로그 어때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북 리뷰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저자: 니콜라스 카

출판: 청림출판

발매: 2015.01.09.



필리핀에서의 생활이 생각났다. 

필리핀은 인터넷 인프라가 매우 취약하다. 

공급자가 딱 두 회사 뿐인데, 담합이라도 한 듯 경쟁을 하지 않는다. 



경쟁을 할 필요가 없으니 성능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욕심도 없다. 

사람들도 모든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기에, 빠른 속도에 대한 큰 욕심이 없다. 



영화가 보고 싶을 때는 이틀에서 사흘 정도 전에 미리 다운로드를 받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그래도 볼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 곳에서 생활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없는 삶 말이다. 

매우 자연스럽게 그 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했다. 



한국에서 항상 컴퓨터로 적던 일기는 공책으로 옮겨왔다. 

공책에 적다 보니, 백스페이스를 누를 수가 없어 항상 지우개로 지워야 했기에 지우기가 귀찮아 단어 선택에 신중해졌다. 

모르는 단어를 바로바로 인터넷 창에서 찾아서 적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항상 전자사전을 옆에 두고 생활했는데, 일기를 쓰다 멈추고 검색을 하고 다시 적어야 하는 귀찮은 과정 때문이었는지 기억에 훨씬 잘 남았다.



친구와의 약속도 그랬다. 

만나서 약속 장소를 정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통해 맛집을 검색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약속 일주일 전부터 지인들에게 맛집을 물어보고,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한다. 

시간에 절대 늦을 수가 없다. 

다시 연락할 방도가 없기 때문에 누구든 주구장창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곳에서 생활할 때 내가 가장 똑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하나에 집중하기 정말 좋은 환경이었다. 



공부를 할 때는 공부에, 독서를 할 때는 독서에, 친구와의 만남에, 숙면에… 모든 것에 항상 집중했다. 

사용하는 유일한 전자기기를 집 전화 하나로 단순화 시키고 나니 모든 생활에 집중력이 좋아졌다. 

한국에서 공부할 때 느낄 수 없었던, 똑똑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그런 것 같았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가는 기분. 



바깥 세상을 잘 모르니까 내가 열심히 산다는 생각에 자존감도 올라가고, 
비교를 할 수가 없으니 그저 내가 최고 같았다.



그저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더 무엇이든 집중해서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고 아주 빠르게 현실에 적응해버렸다. 

다시 모든 검색은 온라인으로 옮겨갔고 전자사전은 1년 동안 열지 않았다. 

공책은 접힌채 그대로 보관되어 있고, 컴퓨터에는 ‘2017-08-02,03’ 라는 이름의 일기만 쌓여갔다. 



친구는 일단 만나고 봤으며, 늦어도 부담이 없었다.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한 번 꺼내면 한 시, 두 시에 잠에 드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다시 전자기기에 의한 바보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몇 개월이 지나고 나는 일요일 하루만이라도 인터넷을 쓰지 말자는 일종의 실험을 시작했다. 스마트폰은 비행기 모드로 두고 할 수 있는 여러 다른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일요일의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 그렇게 기분이 좋아지고 똑똑해지는 기분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 ‘효율성의 바보’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싶다. 


일주일에 한번쯤은 CPU와 역할 분담을 하지 않는 경험도 필요하지 않을까.


글이 마음에 들었다면 라이킷, 꾸준히 읽고 싶으시다면 구독 부탁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애를 이 소설로 배우는 것도 괜찮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