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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배 Jan 17. 2021

IT 회사 주니어의 의사결정

판교에서 문과로 살아남기 7장

요즘 들어 이슈가 정말 많았다.

새로 진행하는 과제의 이슈, CS를 통한 운영 이슈 등

지난 연말부터 계속 이슈의 파도에서 헤엄치고 있다.


새로 진행하는 과제에서 벌어지는 이슈는 보통 이랬다.

1. “개발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만들다 보니 일정 안에 힘들 것 같네요…”

2. “실제로 베타 버전 써보니 예상만큼 편하지 않아요…”

3. “이런 방식으로 쓰면 동작이 달라요…”

등등.


운영 과정에서 이슈는 또 이랬다.

1. “이렇게 동작할 줄 알았는데 안 된대요, 이거 원래 이런가요..?”

2. “사용자들이 이걸 악용해서 다르게 활용 중이에요, 어떻게 막을까요..?”

3. “특정 사용자가 이 날 서비스를 대거 이용할 거래요, 우리 소화할 수 있을까요..?”

등등


또 공통적으로 제일 많이 듣는 이슈는

화면이 깨져요, 얼럿이 안 떠요, 잘못 눌렀어요. 복구해 주세요, 앙 몰라 알려주세요.

등등


하루에도 몇 건씩 이런 이슈들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나도 내 담당 파트의 담당자로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기에,

어떤 이슈는 내 나름의 판단으로 해결하고 넘기는 편이다.


그런데 간혹 그렇게 넘긴 이슈가 갑자기 살이 쪄서 거대하게 돌아올 때가 있다.

공론화가 필요한 사항이 되어서 온 것이다.

이 때는 당연히 위로 수 차례 말씀드리고 어려운 해결을 해야 한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아 일찍 말할 걸”


어떤 이슈를 내 선에서 결정해야 하고, 어떤 이슈를 레이징 해야 하는가.

비로소 난제다.


솔직히 내 선이라 함은 대단히 낮아서 높게 봐줘야 복숭아뼈 정도인데,

그 복숭아뼈를 이슈의 경중으로 치환한다면 어느 정도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내 선을 만약 발톱 높이 정도로 낮추게 되면,

보고해야 할 이슈가 너무 많아서 해결하는 것보다 보고 받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인데,

이 비효율적인 과정을 그냥 하는 것이 나은 것인가.

다른 주니어들은 발톱부터 대가리까지 어느 정도에 맞춰서 본인의 ‘선’을 정하고 있을까.


이토록 수많은 고민의 나날을 보내며,

나는 결국 나만의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이슈라면, 내가 해결하고 결정한 다음 사후 공유한다.

그렇지 않다면 일찍부터 보고하고 공론화하여 의사 결정을 받는다.

기준은 세 가지이다.



1. 영향받는 사용자가 적은 이슈인가?


가장 크게 고려하는 것은 바로 영향받을 사용자의 수이다.

이것을 기준으로 마이너와 메이저 이슈를 큰 틀에서 구분한다.


그런 일이 있었다.

버튼 이름이 조금 길어서 어떤 기기에서는 끝이 말줄임(…)으로 나오는데,

이름이 잘리는 크기가 iphone se 1세대 이하라는 것이다.

버튼 이름을 줄이자니 얼토당토않은 이름이 나와서 어떤 기능인지 알 수도 없을 것 같았다.

해당 국가 사용자 수 통계를 보니 iphone se 보다 작은 기기를 쓰는 사람이 정말 택도 없이 적더라.

그래서 논 이슈(know-issue)로 처리하고 버튼 명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만약 대다수의 사용자에게 버튼명 끝이 말줄임으로 나왔다면 공론화를 했을 것이다.

버튼 영역을 키우든, 버튼명을 신박하게 교체하든 해서 어떻게든 바꿔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공수를 들이기에는 남은 이슈가 너무도 많았다.


“아 이건 매우 소수 사용자가 버튼 이름을 일부 확인 못 하는 마이너 이슈다.”

라고 규정하여 논 이슈로 결정한 다음 사후에 공유드렸다.

그렇게 하라고 하더라.


소수의 사용자를 간과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지만,

산재해 있는 이슈의 더미 속에서는 일단 사용자 수가 좋은 기준이라는 생각이다.



2.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결정인가?

 

영향받는 사용자 수가 적은 이슈라고 판가름이 났다.

그런데 그 영향받는 사용자에게 이슈가 너무 크리티컬 하면 어쩔 것인가.

아예 막 앱을 들어갈 수도 없을 정도로 큰 이슈면,

그들이 아무 소수라고 할지라도 단순하게 결정하면 안 된다.


그때 한 번 더 물어본다.

“다른 사람도 이렇게 결정하리라 확신하니?”

이 질문에 멈칫한 적이 많다.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은 다를 것도 같다.

그리고 반박해본다.


아까의 예를 다시 가져와 보자.

나의 결정을 본 상대방의 입장에서 반박을 해보는 것이다. 

“일단 그 정도로 작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매우 적은 것은 알겠어.

그래도 모든 사용자들을 만족시키는 버튼 이름을 찾는 게 우선해야 하지 않겠어?”


자 이제 여기서 반박 논리를 만들어 본다.

“일단, 버튼 명을 더 줄이게 되면, 버튼을 보고 해당 기능을 인지하기 힘듭니다.

지금도 매우 적은 글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현재 문제는 동작을 안 하는 크리티컬 한 이슈가 아니고,

버튼명을 아예 못 보여주는 것도 아니며 끝 한 글자만 말줄임 되기에,

해당 기종에 대해서는 논 이슈 처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 당시 내가 적어 놓았던 반박 논리였다.

이 논리가 빈약했다면 공론화를 했을 것인데 꽤 타당했다.

그래서 최종 결정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도 이렇게 결정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3. 찜찜하니…?


마지막 단계. 마성의 질문이다.

“너 찜찜하니…?”


사용자도 소수고, 논리도 확실하고, 분명 크리티컬 하지 않음이 확고한데,

괜히 찜찜한 그런 이슈가 있다.


이럴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이슈 레이징 한다.

결정을 하고도 계속해서 불안하기 때문이다.


보통 찜찜한 이유는 “혹시나 ‘나의 식견으로는 알 수 없는 숨어 있는 이슈의 존재’가 있을까 봐”이다.

또 찜찜한 이슈는 보통 그런 게 있더라.

몇 차례의 실수를 통해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합리적인 척해보려야 시야가 경주마이다.

그러니 찜찜하면 공유하자.




거창하게 합리적으로 결정하여 이슈를 분류하고 있는 것처럼 썼지만, 

이 과정을 거쳐서 이슈 판단을 마치면 8할을 공론화하고 있는 나를 본다.


중요한 것은 내가 고민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슈에 대해서 고민하여 내 나름의 논리를 정하고 내 생각밖에 있는 타인의 생각을 받을 준비를 하지 않았나.


시니어가 되어 내 선이 허리쯤 가까워졌을 때,

그 판단력의 탄탄한 근거들을 지금부터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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