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하는대로 Nov 23. 2023

감사하는 연습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몇 년 전 소규모 봉사활동 단체에서 활동할 때의 일이다.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이라 정해진 시간이 되면 둥그런 책상에 삼삼오오 모여 앉는다. 가벼운 안부가 오고 간 후 제일 처음 하는 일은 한 주간 감사했던 일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건 학교에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종류의 발표(?)였다. 수십 명이 모인 자리에서 맨 앞으로 나가 준비해 온 ppt를 띄워놓고 하는 발표도 아니고,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한 눈동자들을 애써 외면하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내는 고행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차례가 되면 앉은 채로 가볍게 얘기하고 넘어가는 방식이었다.


 누군가와 감사한 일을 나누는 것, 언뜻 보면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당시 나에겐 꽤나 별일처럼 느껴졌었다. 둘 이상의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건 고사하고, 감사한 일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들 앞에서 감사한 일을 말한다는 것은 꽤나 거창한, 그러니까 그 주에 내가 어떤 대단한 위험에 처했어야 했고 누군가의 구원으로 그 위험에서 빠져나왔고 그 구원자에게 평생 갚아야 할 은혜를 빚진 정도의 사건은 되어야 말할 자격이 생기는 것 같았다.


 처음 몇 주간 활동 장소로 가는 버스를 타면 늘 그날의 발표(?)에 대해 고민했다.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해야 하지..?'. 한 주 동안 내게 일어났던 일 중 가장 크고 대단한 일을 찾다가, 도저히 거창한 일이 떠오르지 않으면 방황하던 생각은 항상 나의 존재에게 방향을 돌렸다. 구체적인 일이 아닌 존재자체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ex. 살아있음에 감사해요) 이런 종류의 감사는 너무나도 중요하고, 우리가 꼭 자주 상기시켜야 할 문장이지만 그 당시 나는 그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엔 조금 진부하고, 많이 구리다고 생각했다.


 감사한 일을 공유하는 게 어려워서 활동 자체가 망설여지는 순간도 왕왕 있었다. 조금 늦게 도착해서 그 시간이 끝난 후에 들어갈까, 어리석은 생각도 들곤 했다. 만약 그랬으면 지각쟁이라는 타이틀을 얻는 것보다 더 큰 손해를 볼 뻔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감사하는 연습을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진심이든 쥐어짜 낸 것이든 누군가가 속에 품고 있는 '감사함'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귀한 일이었다. 어떤 날엔 꽤나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기도 했다. 듣는 경험들은 점점 쌓여서 감사함을 느끼는 뇌의 한 부분을 말랑하게 만들어주었다. 거창하지 않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더 이상 그 시간이 긴장되고 부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멀리서 뛰어오는 나를 발견하고 출발하려는 찰나에 버스 기사님이 다시 문을 열어주신 일이라던가, 일면식도 없는 앞사람이 내가 도착할 때까지 기꺼이 문을 잡고 기다려준 일, 마트에서 손에 든 물건이 하나뿐인 나에게 먼저 계산하라며 양보해 주신 어머님을 만난 일과 같은 당연하지 않은 배려들에 대해서 감사함을 표현했다. 비슷한 종류의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화들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들이었다.


 지금은 봉사활동에 나가지 않지만 이따금씩 그때의 분위기를 떠올린다. 감사함을 나누는 자리의 온도는 따뜻하지 않을 수가 없다. 까딱하면 부정적인 기억들로만 가득 찼을 이십 대 초반에 감사하는 연습을 할 수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한 일이다. 마음이 차가워질 때마다 금세 데울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으니 말이다. 




봉사활동에 나가지 않아도 혼자서 종종 쓰곤 하는 감사일기




작가의 이전글 엉터리 완벽주의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