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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하는대로 Dec 13. 2023

제주에서 요가 강사를 한다고? (1)

내가 살아온 해가 후보인 연말 시상식이 열린다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2023년, 올해에게 특별상을 안겨 줄 것이다. 스물다섯 개의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2023년이 단번에 이 상을 받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두 가지는 8개월째 제주에서 살고 있다는 점과 운동이라면 늘 숙제처럼 여겨왔던 내가 올해만큼은 운동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된 점이다.


1월엔 배에 구멍을 뚫어 수술을 하는 바람에 대부분 누워있거나 제대로 걷지 못했고, 2~4월에는 헬스장에 하루에 두 번씩 출석도장을 찍었고(백수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5월부터 12월인 지금까지는 요가에 빠져 살았다. 얼마나 빠져 살았냐면 요가에 '요'자도 모르던 내가 요가 관련 자격증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플라잉 지도자와 요가 지도자 이렇게 두 가지의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먼 타지인 제주에서 말이다.


요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충 이렇다. 때는 바야흐로 4월 말, 3개월간 열심히 다녔던 헬스장 기간이 만료된 시점이었다. 5월 초에 두 달 살기를 목적으로 제주행 비행기를 끊어둔 상태라, 헬스장을 연장하기에도 애매하고 다른 운동도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원데이 클래스를 들어볼 생각이었다. 근처에 원데이 클래스로 진행하는 필라테스 수업이 많이 열려서, 서칭을 하던 중 필라테스와 플라잉 요가를 같이 운영하는 센터를 발견했다. 플라잉 요가? 아주 희미하고 옅게 몇 년 전 헬스장 GX에서 체험해 본 기억이 떠올랐다. 체험해 보았다는 사실만 있고 그 과정이나 느낌 같은 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기에 호기심에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했다. 그렇게 했던 한 번의 체험은 제주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총 여섯 번이 되었고 플라잉 요가에 대해 더 깊이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두 번째 수업이 끝난 후 나는 결심했다. 플라잉 요가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하고 싶은 건 당장 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곧바로 플라잉 요가 자격과정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살이를 앞두고 있던 터라 자연스레 그 무대는 제주가 되었다. 가자마자 낯선 곳에서 낯선 공부를 해야 한다는 점이 아주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이 점만 제외하면 제주에서 요가 공부를 하는 것은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요가의 원산지는 인도이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제주 하면 요가가 떠오르고, 요가하면 제주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랬다.


제주에 도착하고 바로 다음날, 미리 연락했던 요가원에 가서 원장님을 뵙고 자격증 반에 바로 등록했다. 오랜 수련과 깊은 공부가 필요한 매트 요가와는 달리, 플라잉 요가는 비교적 단기간에 연습하고 공부하여 자격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요가 강사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아주 감사하게도 원장님께서 내게 수업의 기회를 주셨다. 비슷한 업종에서 일을 해본 분들은  어느 정도 알겠지만, 자격증을 따자마자 대강이 아닌 메인 수업을 맡을 수 있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기회라 무리임을 알면서도 도전했다. 그렇게 나는 수차례의 수업에서 리더가 되었고 플라잉 요가를 좋아하거나 처음 접하는 분들과 함께 운동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병행하고 있던 본업과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은 수업을 하지 않지만 매우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 매 수업마다 큰 용기가 필요했고 하나의 수업을 위해서 일주일 내내 고민하고 연습하며 그 용기를 채웠다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요가에 대한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게 만든 점과 끝내 요가 지도자 과정에 도전하여 합격이라는 최고의 연말 선물을 선사한 점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무언가들로 내 삶의 한 겹이 채워졌다. 덕분에 나는 더 단단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매트 요가에 대한 이야기는 2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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