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
"벽에 똥칠하며 살고 싶진 않다."
건강하게 잘 살다가, 오래 아프지 않고 하늘나라에 갔으면 했다. 120세를 논하는 요즘, 80세까지 살면 적당히 산 것은 아닐까? 인생을 절반 정도 산 지금까지의 성준 생각이었다.
우연히 라디오를 들었다.
한 어르신의 이야기였는데 손주가 갓 돌을 지났다고 했다. 그는 애당초 오래 살 생각이 없으셨다고 했다.
'나와 비슷한 죽음관을 갖고 사셨군.'
그런데 최근 들어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손주를 보니..."
건강 관리에 신경을 크게 쓰지 않았는데, 아이와 놀아주기 위해서 그 아이를 더욱 오래 보고 싶어서 헬스클럽에 등록을 했고, 러닝 머신에 오른다고 했다.
"손주가 많이 사랑스러워 오래도록 보고 싶어요."
'혹시 나에게도 손주가 생긴다면 생각이 변할까?'
아내와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를 나눴다. 식탁에 둘러앉은 아들들에게도 말했다.
"이다음에 너희들이 커서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면 말이야. 손주 보는 맛에 아빠의 인생에 새로운 활력이 생길까?"
아이들을 아빠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내 지원은 "응. 그럴 것 같아."라고 말했다. 지금도 아이들을 그렇게 예뻐하는데 손주를 보면 오죽할까라는 것이 이유였다.
"풉"
웃음이 절로 나왔다.
수십 년 생각을 해온, 자신의 가치라 여긴 '벽에 똥칠하지 않고, 갈 때를 아는 남자.'
성준은 과연 손주를 봤을 때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다. 생각이란 것은 참으로 지조가 있을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휙 바뀔 수 있는, 어찌 보면 간사하기까지 한 듯했다. 아니 성준 자체가 그러한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