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STAIN EATS May 08. 2022

닭에게는 귀소본능이 있다

SUSTAIN-EATS 4호를 준비하며

닭에게는 ‘귀소 본능’이 있다. 닭을 방목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치킨 런〉의 진저도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잎싹이도 지금의 자리가 집이 아니라고 말하고 과감한 탈출을 시도한다. 이 주인공들은 모두 날고 싶어 했다. 진저는 날아서 담장을 넘고 싶었고, 잎싹이는 초록이를 떠나보내고 날개를 펄럭거린다. 사실 닭은 오래 날지 못한다. 거의 점프에 가까운 비행 실력일 뿐. 삶의 양식이 대부분 하늘보다 땅에서 이뤄지기에 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두 주인공은 여전히 날개를 펄럭거린다. 이들에겐 날갯짓 그 자체가 도전이자 자유의 가능성이다. 



〈치킨 런〉은 닭 모형의 비행기를 만들어 농장을 탈출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반면 〈마당을 나온 암탉〉은 닭장을 나오는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해가는 모습을 그려낼 것이라고 예상하겠지만, 영화는 숙적 족제비에게 먹히는 (우리가 보기에) 새드엔딩으로 끝난다.



〈마당을 나온 암탉〉 원작자인 황선미 동화작가는 아동문학임에도 결말을 주인공의 죽음으로 정한 이유를 “모든 살아있는 것은 결국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그 안에도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잎싹의 모델인 작가의 아버지는 죽기 직전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큰 손을 빌려다가, 밥을 많이 해서 지나가는 사람 아무라도 한 끼 먹고 가게 해주렴.” 그때 작가는 가치 있는 죽음이란 ‘남은 자들에게 한 끼 먹이가 되어 주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어쩌면 인간은 죽음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인간은 모두 먹는다는 행위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과
그 이전의 삶에 대해 말해야 한다.



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도축되는 동물이다.


다양한 동물 문제에 대해 연구하는 비영리 단체 Faunalytics에 따르면, 2016년 660억 마리의 닭이 도축되었다고 한다. 그 안에는 다른 생명에게 생명력을 전달하며 마무리되는 죽음도 있지만, 경제적 논리로 점멸되는 죽음도 있다. 조류독감에 대한 ‘빠른 예방’을 명목으로 진행하는 살처분, 달걀을 낳지 못하는 수평아리 폐기, A4용지 2/3 크기의 케이지 안에서 찌그러진 채 맞이하는 죽음, 이 세 가지는 모두 효율성을 최우선순위로 둔 양계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것들이다. 이 죽음의 논리는 극도로 비생명적이어서 모든 것을 상품으로 취급한다. 탄생과 죽음은 사라지고 생산과 소비 그리고 폐기만 있다.



모든 닭이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을 영위하게 해주는, 고마운 생명이 ‘수시로’ 무가치하게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축의 죽음을 존중하면서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삶을 제공할 순 없을까? 조류독감을 극복할 방법을 연구하면서, 탄생의 순간이 죽음의 현장이 되지 않도록, 넓은 공간에서 날갯짓하는 닭을 상상할 수는 없을까? 편집팀은 4호를 기획하며 이런 물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동물복지 농장을 운영하는 아침에 계란, 살처분의 아픔을 겪은 야마기시즘실현지 산안마을, 강석기 과학 작가, 동물권행동 카라의 조현정 활동가, 생명윤리적 측면에서 살처분을 바라보는 박종무 수의사. 이들에게 닭이 닭답게 살기 위한 방법을 물었다. 이와 더불어 단백질만능주의에 벗어나 3대 영양소 중 ‘하나’로 단백질을 바라보기 위해 한국체육대학교 김태경 교수, 이도경 베지빌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학술회 ARMS에게 단백질과 닭가슴살에 대해 물었다. 







산안마을의 유재호 대표는 인터뷰 도중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금의 사회적 태도는 생명을 만나본 경험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고기는 마트에서 비닐로 포장되어 있거나 스티로폼에 담긴 빨간 덩어리로 만났고, 식물을 만지거나 키울 일이 없는 거죠.” 인터뷰 후에도 이 말은 우리의 마음에 부유했다. 그렇다. 생명과 죽음을 직면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게 ‘고기’는 ‘상품’에 불과할 수도 있다. 



생명과 죽음을 직면해 본 적 없는 이에게
고기는 상품에 불과할 수도 있다.



괴테의 말을 변형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괴테는 말했다. “자신의 생명이 존귀하다는 것을 자각할 때, 삶은 더욱 큰 환희를 안겨준다” 그렇다면 타자의 생명이 존귀하다는 것을 자각하면, 우리 삶은 얼마나 더 큰 환희를 안겨줄까?



가축과 고기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에 대해 물음을 가졌던 분들에게, 이번 <SUSTAIN-EATS> 4호를 추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책이 정말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