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과 애그리비즈니스
양계변명
김수영 시인은 수유리에 정착해 밥벌이를 위해 양계장을 꾸렸었다. 닭을 치며 글을 쓰는 삶이라니, 목가적인 분위기가 풍기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양계는 저주받은 사람의 직업입니다. (...) 근 10년 경영에 한 해도 재미를 보지 못한 한국의 양계는 한국의 원고료 벌이에 못지않게 비참합니다.
시인은 〈양계변명〉이라는 수필에서 ‘양계는 저주받은 사람의 직업’이라고까지 하며 닭을 기르는 일의 고됨을 말한다(병아리 참고서를 보며 백 마리로 시작한 양계 일이 천 마리까지 늘어났다고 하니 고되지 않았을 리가). 하루 다르게 자라는 병아리를 보며 사람은 굶어도 닭은 굶길 수 없다며 돈을 융통해 사료 값을 대기도 하고, 장마철이면 병에 걸리지 않도록 약을 구해오고 계사를 손보느라 밤잠도 못자고 분투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고.
그럼에도 ‘이 고역에 매력을 느끼며, 노동의 엄숙함과 즐거움을 경험’한다고도 덧붙인다. 시인의 작품 다수에서 드러나는 삶에 대한 애정이 양계 일에서도 그러했기 때문이라 짐작해 본다. 또한 팍팍한 삶이었지만 시인에게 양계는 글 쓰는 것만큼이나 창조적 행위였을 것이다.
삶정치와 농민의 주체성
농민의 일은 창조성을 기반으로 한다. 어떤 종자를 골라 어떤 땅에 심고 어떻게 고유한 특성을 발현시킬 것이며 수확은 언제하고 납품은 어디에 할지와 같은 일들을 스스로 터득하며 결정해 나간다. 이러한 창조성은 농민이 농업의 주체가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1990년대를 전후로 농민의 주체성은 급격하게 잠식되어갔다. 산업화 물결에서 농지면적 감소와 생산성 향상이라는 양면의 숙제는 협동조합을 매개로 해왔던 기존의 한국농업에 규모의 경제와 자유시장경제로의 시스템 대전환을 촉구했다.
이탈리아의 정치 철학자이자 자율주의운동의 창시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저서 《다중》에서 ‘삶권력(biopower)’과 ‘삶정치(biopolitics)’에 대해 말한다(푸코는 두 단어를 동일 개념으로 바라보았지만 네그리는 이를 분리한다).
순서상 삶권력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함이 맞겠으나, 흐름상 삶정치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자 한다. 삶정치는 삶을 억압하는 권력에 맞서 주체성을 회복하는 삶의 역능을 의미한다. 개별 주체가 가진 특성이 발현되는 삶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삶권력은 사람의 삶 전체를 대상으로 삼는 권력관계를 의미하는데, 이 개념이 거대 자본에 예속되어 상실된 농민의 주체성과 농업 문제를 설명하기에 적합하다고 보인다.
이를테면 과반 이상이 포전거래(일장일단이 있겠으나)로 진행되는 배추와 양파 같은 작물 재배에서, 농민이 출하 시기나 시장 가격 형성에 개입할 수 없다는 점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또한 한국농업 구조의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글로벌 무대에 쫓기듯 올라타게 만들었던 WTO의 출범이나 우르과이라운드 협정, FTA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도 삶권력의 현현이 아닐까.
육계산업의 삶권력화
삶권력이 투영된 농업 시스템은 축산 분야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김수영 시인이 양계가족으로 불리며 닭을 치던 시절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육계 산업은 뚜렷한 지위가 없었다. 양계는 달걀 생산을 위한 일이였고, 닭고기는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되었다. 당시만 해도 닭고기는 시장에서 살아있는 닭을 잡아 판매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양계업이 육계와 산란계로 구분되기 시작한 것을 외식 수요가 증가한 1980년대 사회적 흐름과 맞물렸다고 보기도 하고, 닭을 도계장에서 도축하도록 규정한 축산물위생처리법의 개정에 따른 결과라고 보기도 한다. 덧붙여 세계 무역의 포문을 연 우르과이라운드 협정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축산업 경쟁력 강화 정책 역시 양계 종사자의 지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국내 닭고기 시장은 ‘계열화’로 구현되었다. 계열화 사업은 수평계열화와 수직계열화로 구분해볼 수 있다. 수평계열화란 동등한 개체가 연대하여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방식이고, 수직계열화는 본사인 계열주체가 원자재 공급부터 생산, 유통 전반을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육계 산업에서 구현된 수직계열화는 계열주체인 기업이 사육 농가에 병아리와 사료, 약품을 공급하면 농가가 일정 기간 닭이 될 때까지 기르고 정해진 수수료를 받는 형태이다. 간단히 말해 육계 수직계열화 사업은 ‘위탁’이지만, 사육 말고도 산업의 전반적인 과정이 계열주체의 통제에 있다는 점에서 농가가 계열주체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띤다. 농가는 키운 닭을 팔 곳을 미리 담보 받으므로 안정적이지만, 원자재 값과 닭 값(수수료)을 계열주체가 정하기 때문에 농가의 경영권마저 담보로 내어주는 셈이 된다. 농가는 그저 노동력을 제공하는 하청 노동자가 되는 것이다.
이 구조에서 계열주체가 농가에 생산력 증진을 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갑을관계는 더 선명해진다. 사료를 덜 먹이고 닭을 크게 키우는 것을 평가하는 (나름)객관적인 수치를 사료요구율이라고 한다. 계열주체는 사료요구율을 낮추도록 압박하는 등으로 사육 성적을 평가해 농가의 인센티브를 조정하기도 한다. 물론 계열주체는 자본을 바탕으로 사육비 절감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여 농가와의 상생을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기술 개발로 형성된 부는 또다시 계열화 구조를 통해 계열주체에 결집된다. 발전된 기술을 도입하는 것 역시 농가가 생산력 증진을 위해 스스로 투자해야 할 부담이다. 계열화 사업에 참여하는 농가가 본사에 대해 불만을 표하거나 집단행동을 할 경우, 원자재를 공급받지 못하거나 계약 자체를 하지 못해 도산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정부 주도로 추진된 축산 계열화 사업은 결국 농업에 대한 구조조정이었다.
(계속)
글 마은지
이 글은 지속가능한 미식 잡지〈SUSTAIN-EATS〉 4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종이잡지에서 더 많은 콘텐츠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