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STAIN EATS Jul 23. 2022

밥상 앞에서 (2)

두 손을 뻗어 소매를 적시자

고(故) 황현산 선생님은 음식 앞에서 생각을 비우고 음식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축제의 음식을 먹는 자는 마땅히 두 손을 적셔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을 우리와 하나 되게 하는 것이며, 우리가 거둔 곡식과 소채, 우리가 잡은 짐승들에게 속죄하는 길이다. … 오리는 내놓고 죽어 우리 손에 있는데 어찌 우리가 옷이 젖는 걸 관계하랴. 어찌 속죄가 없이 행복하랴.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자신이 살해한 생명들과 자기가 먹는 음식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려는 우리가 두렵다. … 희생된 생명들은 거기서 생명이기를 그치지만 그것들과 하나가 되려는 사람들 속에서 어떤 행복의 형식으로 다시 피어난다고 말해도 무정한 말이 아닐 것이다."

- 황현산, 《사소한 부탁》, 〈오리찜 먹는 법〉, 난다, pp126~127, 2018.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오랜 시간 재직했던 황현산 선생님께서 식사 예절에 어긋나는 글을 썼다는 것이 참 감명 깊다. 우리가 잘 아는 미식과 식사 예절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미식’ 또는 ‘식도락’을 뜻하는 프랑스어 가스트로노미(GASTRONOMIE)는 1801년에 시인이자 역사가·사회학자 조제프 베르슈가 최초로 사용했지만 17세기부터 부르주아 요리가 ‘성문화’되기 시작했고 19세기에 들어서서 미식, 요리법, 식사 예절 등이 체계화되었다. 이성을 통한 인간의 완성과 자유를 기조로 삼았던 당시의 프랑스에서는 식문화에서도 도식화가 이뤄졌다.



지금도 전통적인 미식 문화를 추구하는 프랑스인은 레스토랑에 갈 때마다 식전주를 시작으로 전식, 본식, 후식의 고전적인 순서대로 음식을 주문하며 절대로 중간에 순서를 건너뛰는 법이 없다고 한다. 이 안에는 식기 사용법, 와인 음미법, 식법 심지어 매니저를 대하는 법 등 관습처럼 굳어진 공정이 있다.



그러나 이런 식문화의 사회적 의미는 식보다 귀족 문화에 있다. 현대에서도 이런 식문화가 필요한 공간은 고가의 레스토랑이 대부분을 차지하듯, 유럽 식문화의 공간도 상류층의 식탁이었다. 유럽의 상류층은 중세 이래 식문화를 구축해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했으며 자신보다 하위 직위 또는 다른 계급과의 차별성을 드러냈다. 이는 “너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면, 네가 무엇을 먹는지를 말해주면 내가 가르쳐주마!”라는 미식가의 시조라고 불리는 브리야사바랭(Brillat-Savarin)의 풍자적인 경구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식탁에 앉는 순간 사람은 ‘당연하게’ 정해진 매뉴얼대로 움직인다. 매뉴얼을 틀리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에 고개를 들 수 없다.


브리야 사바랭 《미식예찬》의 속표지, 왼쪽은 그의 초상화



식문화는 음식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한 목적에서 생긴 문화임에도 식문화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감옥과도 같을 수 있다. 이는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의 ‘생체권력’ 개념과 동일하다. 생체권력이란 중세 시대의 권력은 ‘죽게 하는 권력’에서 시작되었다면 근현대에 와서는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살게 하는 권력’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의료체계, 복지체계, 교육체계 등 끊임없이 노동자의 삶을 유지시키는 권력이다. 이 생체권력이 식문화 영역에서는 ‘음식을 뺏을 권력’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게 하는 권력’으로 변형되었다. ‘식문화를 준수할 때에 더 맛있다’라는 이성적 관념이 식문화 안에 스며든 것이다.



그렇기에 황현산 선생님의 주장은 더욱 감미롭다. 자신의 학문적 근원지인 프랑스의 기조와는 반대편에 서서 식기를 내려놓고 소맷자락을 적혀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지속가능한 식문화의 핵심이 ‘생명의 연관성’임을 뜻한다.



지속가능한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활동과 정의가 오가고 있다. 소비자 영역에서는 먹는 형태에 따라 크게 비건(또는 채식)과 논비건으로 구분되며 채식은 락토, 오보, 페스코, 플랙시테리안으로 나눠진다. 이는 지속가능한 식문화의 강도 측면으로 볼 수 있다. 강도에 따라서 육식과 육식 생산을 아예 금지하기도 한다. 반면 생산자 영역에서는 동물복지 농장의 확대와 유통/시장 시스템의 개선으로 친환경적 요소들의 증가를 꾀한다.



활동가 영역에서 지속가능한 식문화는 먹는 행위를 넘어서 식재료의 생산, 유통, 처리까지도 나아간다. 토종씨앗 보존, 못난이농산물 폐기, 종 다양성 확보, 음식물쓰레기 분해 처리, 화학비료, 생산 노동자 착취,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파괴 등. 이 문제들은 식탁에서 이뤄지진 않지만 모두 지속가능한 식문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지속가능한 식문화의 넓이 측면이다.



이들은 모두 식탁에서 궁상을 떠는 사람들이다. 두 손을 뻗어 소맷자락을 적셔가며 음식을 먹는 이들이다. 자신이 먹는 음식이 타 생명에서 왔음을 알기에 심신을 쏟고 있다. 황현산 선생님의 말마따나 ‘속죄의 과정’이다. 이들이 말하고 싶은 결론은 이러할 것이다. ‘우리의 생명은 희생된 생명에서 비롯하기에, 식탁에서만큼은 우리 모두 행복해야 한다.’ 적어도 공공책방이 발행하는 지속가능한 식문화 매거진 <SUSTAIN-EATS>는 그러하다. 매거진을 읽는 모두가 그날의 식탁에서 타 생명을 발견하고 감사하며 행복하기를 기대한다.




우리의 생명은 희생된 생명에서 비롯하기에, 식탁에서만큼은 우리 모두 행복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밥상 앞에서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