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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TAIN EATS Oct 20. 2019

사랑이 만들어내는 상념(想念)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사랑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것이 연애소설이든 드라마든, 심리·철학교양서이든. “왜?”라는 물음에 한 번도 대답을 해 본적이 없고, 사실 나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것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갖다 붙일 수 있지만, 타인이 감히 그것을 거짓이라 규정할 수 없다. ―드라마만 보더라도 흔히 나오는 대사, “그건 사랑이 아니야!”라는 말이 과연 타당할까? 사랑이라는 가치는 누구에게나 다르지 않나.―


사랑은 당사자에게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타인에게는 너무 추상적이다. 1억 명의 사람이 있으면 1억 개의 사랑이 있듯이 ‘사랑’이라는 단어로 간단히 말하기엔 사랑이 너무도 어려운 일이라 남의 사랑이(사랑에 관한 작품들) 궁금하지 않았나보다. 사랑 하나가 빚어내는 심사가 골치 아파서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도 처음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그놈의 사랑이 뭐 길래. 이 책을 읽는 것은 베르테르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했고, 나 스스로도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사전에서는 사랑을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 정의한다. 동의하는 바이지만, 나는 사랑을 ‘관계가 만들어내는 희로애락’이라 말하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면 사랑하는 존재에게 드는 행복, 질투, 분노와 환희를 모두 ‘그래도 된다.’고 말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사랑하는 일’은 ‘그 사람에 대해 상념을 갖는 것’과 동일하게 보면 어떨까. 베르테르의 사랑도 그렇지 않았나. 베르테르는 로테를 향한 상념으로 얼마나 많은 밤을 기뻐하고 괴로워하며 지새웠는가.          

    


      “ 사랑에 대한 상념


로테와의 대화, 로테와 만날 때 입었던 연미복, 로테의 시선과 손길이 스쳤던 물건. 모든 존재와 시간이 로테를 스치는 순간 베르테르에겐 로테 그 자체가 된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품에 안을 수도 없고, 입을 맞출 수 없음에도 지난하게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었던 것은 로테의 흔적(로테가 아닌 것)마저 사랑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사랑에 대한 상념이다. 이것은 베르테르의 어긋난 짝사랑이 내내 슬프지만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짝사랑은 서글프다는데, 그 속에서도 희로애락은 있다는 것을 베르테르는 보여주고 있다.

물론 기쁨도 있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결국 집착과 광기를 낳는다. 이 또한 로테를 향한 상념이 빚어낸 결과이다. 베르테르는 로테의 손길이 닿은 물건에서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로테의 눈동자가 닿는 곳을 좇으며 그녀의 눈길을 갈망하고 질투한다.


로테를 향한 그의 상념은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더 이상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사랑에 대한 상념이 더 이상 그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상념을 통해 그만의 완벽한 사랑을 구축해갔지만, 정작 자신은 그 완벽함을 소유할 수 없다는 한계를 계속해서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베르테르는 사랑에 대한 상념에서 자신을 구하기 위한 도피처를 갈구한다. 그것이 바로 자살이다.
 


      “ 죽음에 대한 상념


반복되는 상념은 베르테르를 좀먹어 갔다. 베르테르에게 로테는 단순히 설레고, 보고 싶고, 안고 싶은 여성이 아니다. 가장 완벽한 원을 그리는 것처럼 고결하고 완벽한 ‘사랑의 원형’이 되었기 때문이다. 상념을 통해 완벽한 사랑을 구축해놓았지만 취할 수 없다는 현실은 그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빌헬름이 답장으로 한 번쯤은 ‘야 너 그러지 마라. 세상에 로테보다 좋은 여자 더 많아.’라고 위로해주었을지 모르지만, 그 누구의 위로도 베르테르의 상실감을 어루만져주지 못했을 것이다. 로테마저도.

 

"아아, 친구여, 나도 마치 숭고한 용사의 한 사람이 되어 검을 뽑아들고 서서히 숨을 거두는 단말마의 고통으로부터 우리 영주 오시안을 단번에 해방시켜 주고 싶다. 그리고 해방된 그 반신(半神)의 뒤를 쫓아 나 자신도 저승으로 건너가고 싶다."(144쪽)

결국 베르테르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뿐이었다. 사랑에 대한 상념이 그를 옥죄어 갈 때 그는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영혼의 탈출구를 모색했다. 그에게 자살은 이뤄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도피가 아니라, 완벽한 사랑을 찾아 떠나게끔 안쓰러운 영혼을 놓아주는 행위였다. 젊은 베르테르를 벗어난 베르테르의 영혼은 더 이상 로테라는 개인이 아닌, 그가 그려낸 ‘완벽한 사랑의 원형’을 찾아갔을 것이다. 이만하면 베르테르의 영혼만큼은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자기 나름의 ‘사랑의 원형’이 있다. 어쭙잖은 위로와 남의 이야기는 완벽한 답이 되지 못한다. 결국 사랑의 원형을 모색하는 것은 본인 몫이다. 그 과정에서 상념이 필요하고, 이는 자신만의 사랑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가는 행위이다. 이 책에는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편자의 메시지가 있다. 이 책을 위로이자 친구로 삼아달라는 편자의 의도가 나에게 오롯이 전해지진 않은 것 같아 미안하지만, 사랑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만큼은 확실하다.


완벽한 사랑의 원형을 찾아 떠나간 베르테르의 영혼에 찬사를 보내며, 나는 감히 영혼에 자유를 줄 용기가 없는 사람인지라 억척스럽게 내 사랑의 원형을 찾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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