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정의 글쓰기-11/28 '일하면서 글쓰기' 강연 후기
살다 보면 삶이란 게 참 갑갑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퇴근 후 돌아온, 불 꺼진 방을 상상해 봅니다. 불을 켜보면 온갖 곳에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죠. 빨 건 빨고, 다릴 건 다리고, 걸어둘 건 걸어두면 되겠지만 말이 쉽지 실은 어디부터 정리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어질러둔 것이 어디 옷뿐인가요. 어쩌면 지금은 아직 시작하지 못했을 뿐, 어쩌다 하루 큰맘 먹고 대청소를 시작할 우리는 매일 착실히 집을 치우는 성실한 사람들보다 용기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삶이 그렇기 때문인지, 하지 못한 말들이 부산하게 쌓인 내 마음도 산란하기 일쑤입니다. 집도 정돈하기 어려운데 흐트러진 내 마음과 말들은 어디부터, 어떻게 정돈을 시작해야 좋을까요?
여기, 내 삶을 정돈해줄 글쓰기를 가르쳐줄 작가가 있습니다. 임희정 작가입니다.
10년 차 아나운서인 임희정 작가는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를 썼습니다. 또한 그녀는 ‘임희정 아나운서의 나를 붙잡은 말들’을 연재하고 있기도 합니다.
임희정 작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수많은 말들을 내뱉었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내뱉지 못한 말들이었다고요. 그 말을 글에 담기 위해 애썼고, 이제는 오랫동안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요. 자신은 글을 쓰면 삶의 면역력이 생긴다 믿는다고요.
지난 11월 28일, 성수동 패스트파이브에서 임희정 작가를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 뒤, 자신이 어떻게 글이 쓰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임희정 작가는 말합니다. 자신이 말할 수 있었더라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요. 그리고 그녀가 말하지 못했던, 글로 써야 했던 이야기는 그녀의 부모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라는 글을 인터넷상에 게시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임희정 작가는 많은 주목을 받아 실시간 검색어에 등극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댓글로 그녀에게 많은 공감을 표했습니다.
임희정 작가는 그날 이후의 경험을 이렇게 술회합니다. “고백의 글이 가진 힘을, 연대를, 희망을 느꼈습니다.” 아울러 그녀는 글을 계속 쓸 용기를 얻었다고도 말합니다. 그렇게 아나운서 임희정은 작가 임희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임희정 작가가 생각하는 고백의 글,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 깊게 고민하고, 정리해서 정의하며,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는 글”이라고 그녀는 답합니다. 글쓰기는 모호한 것들을 정의함으로써 그들을 더 분명하게 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 임희정 작가에게 글쓰기란 사유와 정리가 동시에 일어나는 작업입니다.
이때 임희정 작가는 사유의 대상에 너무 천착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내 사유의 대상은 그 자체로 굉장히 진중한 것일 수도, 거꾸로 발가락의 티눈처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상 그 자체보다는 내가 그 대상에 대해 얼마나 깊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글을 쓸 때 요즘 내가 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고려하며, 결과적으로 “사유의 대상이 아닌, 사유를 하는 ‘나’에 대해” 글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종국에 솔직한 글쓰기의 시작 지점은 ‘나’를 정의하는 일이라고 임희정 작가는 말했습니다. 임희정 작가의 지론은,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과 나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녀가 말한 ‘내 삶을 정돈하는 글쓰기’였습니다.
연후 임희정 작가는 글을 쓸 때 도움이 되는 기술적인 부분들을 가르쳐주며 강연을 이어나갔습니다. 강연을 마치기 전, 그녀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 각자의 삶은 고유하고, 그 삶을 살아가는 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이야기를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이야기는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진솔하게 써보세요. 모두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임희정 작가의 말이었습니다.
글쓰기가 쉬운 일이라고 쉬이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몇 달 전, 북크루에서 처음 ‘일하면서 글쓰기’ 강연을 기획했을 때 저는 이런 문장을 썼습니다. “네, 그래도 우리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임희정 작가의 강연을 듣고 난 후 이런 강연을 기획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북크루와 함께하는 이렇게 많은 작가들이, 우리와 같은 믿음을 공유하며 글쓰기를 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네, 우리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 패스트파이브 성수점에서 ‘일하면서 글쓰기’는 계속되었습니다. 임희정 작가의 뒤를 이은 12월의 ‘일하면서 글쓰기’ 첫 작가는 김버금 작가였습니다.
임희정 작가가 전하는 글쓰기 팁:
1. 솔직한 자신을 쓰자.
2. 사실의 나열은 단문으로, 묘사는 장문으로.
3. 반드시 검색과 팩트체크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