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obabkim Jun 23. 2022

비 온 뒤 땅이 굳는 게 좋은 걸까

비가 오는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데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어쩌면 우리 집 강아지도 알 수 있을법한 뻔한 명언 중 명언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바로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라는 격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격언은 어떤 어려운 일을 겪고 나면 그다음에는 단련이 되어 더욱더 강해진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이다(이 사실도 다 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는 이 격언에 비판 섞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과연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것이 무조건 우리에게 이로운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굳은 땅은 왜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해석되는지 궁금했다. 땅이 굳어있어야 도로도 깔리고 건물도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말랑말랑 한 것보다는 단단한 것이 조금 더 강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일까? 


  또 비 오는 날은 왜 부정적으로 해석되는지 궁금했다. 비 오는 날 보다 해 뜬 날이 더 좋다고 생각해서일까? 비 오는 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껴서 그런 것일까?


 내가 요즘 생각하는 굳은 땅은 지렁이 한 마리도 다니지 못할 만큼 메마른 땅을 생각하게 한다. 단단해 보이나 툭하고 건드리면 언제든지 쩍 하고 갈라지는 땅을 생각하게 한다. 


  덧붙여 내가 요즘 생각하는 비 오는 날은 꽤나 낭만적이다. 비가 오면 활동에 제한이 생겨서 불편하기도 하지만 농부들에게는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달콤한 날이다. 비가 오면 심장을 말랑말랑하게 하는 히트곡들이 많이 양성된다(폴 킴 - 비, 장범준 - 추 여비 강추!)


  나는 어렸을 때 어려운 일을 겪거나 노여운 상황에 놓이면 언젠가 닥쳐온 시련이 나를 분명히 단단하게 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나는 위기의 상황에 놓일 때마다 스스로 강한 멘털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곤 했다. 이러한 내 태도는 종종 사람에게 귀감이 되기도 했다. 나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을 겪을 때도 씩씩하게 이겨내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고, 나는 이런 나를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조금씩 수정하고 있는 편이다. 그동안 나는 시련의 시간이 무조건 나를 강하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시련의 시간 동안 나는 마땅히 하루 일상 가운데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을 박탈하며 사는 삶이 익숙했다. 내가 겪는 시련의 시간은 결국 언젠가 좋은 것으로 보상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국 나는 이러한 '아름다운 결과주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울러 나에게 시련의 시간이 있다 한들 그 가운데서도 충분히 나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비 온 뒤 땅이 굳을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비가 오는 와중에도 비와 함께 어울리며 즐길 거리를 찾는 연습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성공하기 위해, 또는 지금의 시간을 부정하고 밝은 미래를 꿈꾸기 위해 하루 동안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을 포기한 사람들이 꽤 있다. 실제로 그렇게 자기 자신을 부정하며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보통 이런 사람은 어느 누가 건드려도 끄떡없을 것 같은 강인함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패가 거듭해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뚝심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왜 나는 요즘 자꾸 굳은 땅 같이 강한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메마른 마음과 공허한 감정이 신경 쓰일까? 아니 어쩌면 내 마음 한 구석에 싹트는 공허함이 신경 쓰이는 걸지도. 자신감은 얻었으나 자존감은 철저하게 무너진 삶. 최후에 얻은 성취는 있으나 과정 속에서 잃어버린 게 더 많은 삶. 어쩌면 나와 우리가 그런 삶을 살고 있지는 않았는가 돌아본다.  비가 오고 있을 때 그저 비 온 뒤 단단하게 굳어있는 땅과 화창한 날씨를 나의 유일한 구원처럼 여기며 아득바득 살다 보면 정작 비가 올 때 우산을 내팽개치고 춤을 출 생각을 도무지 할 수 없게 된다. 지렁이와 친구(하기 싫으면 어쩔 수 없지만)할 수도 없게 된다.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면 내 인생을 지탱해줄 맛있는 식사 한 끼, 나를 살게 해주는 사랑하는 한 사람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성과주의 - 결과주의의 삶의 사는 우리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영혼을 판다는 말까지 쉽게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명심하자. 혹여 인생을 살며 마땅히 이루어야 할 어떤 것이 생긴다면 목표를 이룬 내 미래의 모습만큼이나 목표를 향해 빗속을 달려가는 과정, 아울러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과 전혀 무관한 비 오는 날 하염없이 비를 맞고 있는 내 일상 모든 것이 마땅히 아름답다는 것을 잊지 않기로.


  

작가의 이전글 인생을 00 야구팬처럼 살면 괜찮겠다는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