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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Oct 27. 2023

미래는 지금보다 나을 거란 믿음으로 살기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보내는 메시지

글이 위로가 되는 때가 있다. 세상과 맞서 싸우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무릎을 꿇고 드러누웠을 때, 그 위로 불어오는 새로운 바람처럼 힘이 되는 그런 글이 있다. 김연수 작가의 글이 그랬다. 작가는 메리 올리버의 시를 읽기 위해 안경을 벗고 책에 눈을 가까이 가져갔다고 했다. 나 역시 그의 글을 읽기 위해 안경을 벗고 눈을 가까이했다. 그리고 그의 글에서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맨 문장들을 만났다. 읽는 내내 곳곳에서 걸리고 넘어지면서 내 삶을 변화시킬 그런 문장들을 집어 들었다.


작가는 우리가 불행해지는 이유가 미래를 기억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지만,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이 말은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엄마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지민이 자살을 계획한 뒤 남자 친구인 준과 함께 찾아갔던 준의 외삼촌으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준의 외삼촌은 지민의 엄마가 썼다는 소설 속 말을 인용하며, 그런 멋진 소설을 쓰고서도 미래를 기억하지 못해 죽은 지민의 엄마를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지민에게는 미래를 기억하는 삶을 살라고 한다.


준의 외삼촌 말을 들은 지민은 마지막으로 신은 어떤 답을 말하는지 들어보기 위해 예언가 줄리아를 찾아가기로 한다. 그곳에서 지민은 줄리아로부터 죽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는다. 이후 지민은 자신의 미래를 상상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지민과 준은 현실이 된 미래 속에서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과거 특별한 예언처럼 들렸던 줄리아의 말은 그저 평범한 미래를 조금 일찍 알려준 것뿐이었다. 현재가 된 미래를 살며 지민은 자신의 엄마가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게 안타까웠다. 과거 지민 엄마가 절망의 상황에서 지민을 생각하며 행복한 미래를 상상했으면 어떠했을까?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김연수 작가의 단편소설집으로 표제작인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비롯하여 ‘난주의 바다 앞에서’, ‘진주의 결말’,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엄마 없는 아이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사랑의 단상 2014’,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등 여덟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그들은 각각 독립적 자아를 가진 소설처럼 보이지만, 시간이라는 관계 속에서 기억과 미래라는 말로 연결되어, 사랑과 희망 그리고 이해를 이야기하고 있다.


또 다른 작품 '난주의 바다 앞에서'에도 죽음을 생각한 엄마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죽지 않았다. 그들이 죽지 않은 건, 자기가 사는 게 자식을 살리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아들을 악성종양으로 잃은 은정은 아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집에서는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 이곳저곳을 떠돈다. 남편과는 이혼을 하고, 세상의 끝을 보기 위해 아래로 아래로만 향한다. 그러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추자도. 그곳에서 은정은 정난주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야기 속 정난주는 그녀를 그곳에 머무르게 했고, 그녀를 살게 만들었다. 은정이 들은 정난주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정난주는 명문가에서 태어난 여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정약현이고,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정약용과 정약전은 그녀의 숙부들이다. 그녀의 남편은 '황사영 백서'로 유명한 황사영이며, 고모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세례인 이승훈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굵직굵직하게 장식하고 있는 그녀의 주변인들은 그녀의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준다. 그런 집안에서 태어난 정난주는 어린 나이에 장원급제하여 천재 소리를 들었던 황사영과 결혼을 하여, 아들 황경한을 낳고 평온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시간은 그녀가 행복하게 살도록 놓아주지 않았다. 정조 임금이 죽고 정권이 교체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백팔십도 바뀌게 되었다. 그녀가 아는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녀의 남편은 나라를 팔아먹은 반역자가 되었다. 신유박해가 시작된 것이다. 


정난주는 아들과 함께 관노가 되어 제주도로 끌려가게 되었다. 제주도로 향하던 중 배가 추자도를 지날 때 정난주는 아들을 관노로 만들 수 없어, 아들을 추자도 동쪽 갯바위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아들과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도록 스스로 바다에 뛰어든다. 비록 아들의 시체는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시체가 발견되면 아들도 죽었을 거라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닷속에서 정난주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하느님은 그녀에게 기도하게 했다. '제가 살아야 아들이 살 수 있습니다'라고.


자신이 사는 것이 아들이 사는 길이라 여긴 정난주는 두려움 없이 관노가 된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들을 돌보며 살아간다.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살아남은 정난주의 모습은 은정에게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었다. 은정은 자신이 사는 것이 죽은 아들이 저 세상에서 마음 편하게 사는 길이라 생각하며 살 결심을 한다. 정난주와 은정이 죽을 각오로 바라봤던 바다는 그녀들에게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주었다. 미래를 생각하게 했다.


겹겹이 밑줄을 그었는데도 읽는 것이 쉽지 않았던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희망의 메시지였다. 미래를 기억하여 현재를 일으켜 세우라는 응원의 소리였다. 타인과 함께 호흡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다 보면 세상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말해주었다. 삶을 쓰다듬고 위로해 줄 수 있는 건 한 권의 책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읽는 것이 쉽지 않았던 만큼 생각거리는 많았다. 생각의 깊어지니 마음속 이해의 공간도 넓어졌다. 지금의 상황이 힘을 얻었다. 그러면서 조용히 주문을 외게 했다. 미래는 지금보다는 나을 거란 믿음으로 살기. 그 믿음을 전적으로 믿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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