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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예 Jan 16. 2022

태어나서 처음 심리 상담을 받았다

번아웃을 이겨내려는 시도

회의를 하다 눈물이 났다. 누군가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슬픈 일이 있던 것도 아니다.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팀원을 바라보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일을 하나 싶어 서글퍼졌다. 그 순간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고 나는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퇴근하는 버스에서도 울컥했다. 똑같은 루틴으로 일을 위한 하루를 마감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통제하기 어려운 우울감이 몰려와 눈앞이 안 보이게 눈물이 가득 고였다. 실연당한 사람처럼 보일까 싶어 황급히 창문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켰다.


그다음 날 출근하는 버스, 늘 그렇듯 아침에 어울리는 잔잔한 노래를 틀었고 한참 가던 나는 나도 모를 울컥함이 올라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사무실에 도착해 밝은 척 "안녕하세요!"를 연신 외치며 내 자리에 앉았다.


'가면을 쓰고 있네.'


어른이니까, 누구나 힘들테니까 감정은 드러내면 안 되는 거지.라는 생각과 지금 이 삶은 모순이라는 생각이 공존했다. 언제까지 감춰질까. 이미 티가 나는 것 아닐까.


왜 이렇게 된 걸까 이유를 열심히 찾았다. 이대로 두면 안될 것 같아 주변에도 알렸다. 소진이 이유다. 일을 그렇게 많이 하더니 결국 번아웃이 온 것 같다고 공통적으로 말했다.


회사를 위한 삶


작년 특히 하반기에는 정말 일을 위한 삶이었다. 회사를 위한 하루, 하루들이 모여 일 년이 되었다. 그저 잘하고 싶어서 성장하는 재미가 있어서 하는 줄 알았던 내 삶은 '중독'처럼 일을 한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성취감은 사라지고 일로 가득 찬 하루 용량을 채워야 일을 한 기분이 들었던지 주중, 주말에도 회사를 위해 나를 소진시켰다.


결국 이런 일이 생겼다. 몇 년 전 이 세상에 충격을 받고 히키코모리 직전까지 갔던 이력이 있기에 이번엔 이대로 둘 수 없었다. 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마음 아플까 말하지 않은 가족에게도 이야기하고 주변 친구들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그중 나와 비슷한 현상을 미리 겪은 친구가 좋은 조언을 해줬고 그렇게 첫 심리 상담을 예약하게 되었다.


상담을 받고 나서


결론은 더 우울해졌다. 상담을 받고 또 다른 우울감이 생겼달까. 이전까진 내 머릿속, 내 심장 속에 우울이 동그랗게 모여 있었다면 상담을 받은 후 그 동그랗게 응축된 세포들이 내 온몸을 옅게 둘러싼 기분이었다.

  

선생님의 상담 방식 문제는 아니었다. 한 시간 내내 그동안 깊숙이 숨겨 놓은 몇 개월 간의 현상과 그 이유를 계속 고심해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으니 자연스레 느낀 감정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응축된 그 감정을 꺼내면서 되려 온몸에 감싸고 오게 되었다. 첫 상담을 가는 사람들이 꼭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미리 알고 가면 좋을 것 같다.


다른 이유는 상담 후 결제를 하면서였다. 첫 상담은 13만 원이었고 이후 나를 알아가는 검사를 함께 하면 18만 원을 내야 한다. 나의 상황을 좋아지게 하기 위해서는 10번은 매주 나와야 한다고 하셨다. 매주 나갈 시간도 안됐지만 갑작스러운 예정에 없던 매주 18만 원을 지불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아주 미묘했지만 제안을 하는 과정에서 정말 내 상황을 낫기 위함인지 아니면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제시인 것 같은 마음도 들었다.


당연한 세상이고 정당한 지불인 걸 알면서도 괜히 그런 상황 때문에 2차적으로 후련한 감정을 얻어오기보다는 새로운 우울을 데려온 것 같았다.   



그럼에도 한 시간을 통해 이 감정의 근본과 이유를 조금은 정리했던 점이 그날의 좋은 소득이었다. 사진 속 동그라미처럼 사람은 '내가 아는 나'와 '내가 모르는 나'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셨다. '내가 아는 나'는 곧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고 '내가 모르는 나'는 나도 어렴풋이 알 것 같으면서 잘 알지 못하기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곳에 내 감정들을 많이 넘기게 되고 그 영역이 점점 커지면 나도 내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게 된다고 했다. 마치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났던 것처럼 말이다.


그 내면엔 일을 하면서 외부 세계에 나를 끼어 맞추기 위해 했던 나의 애씀들이 있었고 이상적인 세계에 가까스로 닿기 위해 내 소중한 감정들은 '내가 모르는 나'에게 계속 넘기며 쌓아뒀던 것이다. 그렇게 내가 모르는 나는 자꾸 커져갔고 그러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탁! 하고 분출된 것이다.


왜 그렇게 애를 쓰면서 살았어요?  


상담은 선생님의 계속된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많은 이야기를 한 후에 나온 질문은 이랬다. 왜 그렇게 애를 썼냐고 물으셨다. 일에 중독이 되어가는 과정을 되짚어 보니 나는 참 성장 욕심이 큰 사람이었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그런 사람이기도 하고 대학교 땐 학교를 다니며 대외활동 4개를 동시에 하고 아르바이트도 한 적도 있었다. 꿈을 위해서는 마구 달릴 수 있고 그것이 곧 내 삶의 재미라 생각하며 살았다.


졸업 후에 들어간 첫 회사는 나름 성공적인 입사였지만 그 속에서의 삶은 완전히 뭉그러지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꿈과 이상을 이룰 수 없는 곳이었고 많은 아픔을 느끼며 퇴사를 했다. 그다음 직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이 회사를 만났고 아주 작은 스타트업에서 점점 커지며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인 회사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졸업 후 채우지 못한 나의 성장욕을 채워줬다. 그래서 처음엔 재미있었다. 친구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힘든 코로나 시대라는 환경도 있어서 더욱 회사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 관리자도 함께 하는 직무로 바꾸게 되면서 가뜩이나 인생에서 책임감이 큰 요소인 내게 회사에 대한 책임감은 배로 커졌다. 그렇게 일에 '중독'된 것처럼 매일을 보냈다.


이런 과정을 돌아보고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과정은 정말 꼭 필요하다. 그래서 심리 상담 후 나는 그런 감정을 느꼈지만 비슷한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가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 첫 심리 상담은 이러했고 일단은 추가 상담을 신청하진 않았다. 다음 주엔 처음으로 병원에 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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