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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예 Dec 11. 2022

내가 선택하는 '아름다운 이별'

추억에 남을 회사를 떠나며


"생각해 보니까, 아름다운 이별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없네! 없었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 때나, 소속된 곳을 떠날 때나. 늘 마음 속 분노와 노여움을 품고 풀지 못한 채 헤어졌다. 그리고 남은 감정은 오로지 내 몫이기에 그것들을 치유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 휴식을 취하며 다스렸다. 항상 시간이 약이다를 되새기며 겨우 보냈다.


상담해주신 선생님이 얘기했다. "누구보다도 더욱 아름다운 이별을 해야 좋을 것 같아요. 단예씨 인생을 위해서요.”


나는 위험 회피가 평균 이상인 사람이라고 한다. 위험을 감지하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도피를 하는 경우도 있고 불안해 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그래서 늘 아픔 뒤 휴식이라는 명목 하에 보낸 시간이 사실은 휴식 아닌 풀지 못한 남은 감정으로 인해 고통스럽기도 했다는 걸 이제야 또렷이 깨닫게 되었다.


내 인생을 위한, 아름다운 이별.


몇 달 전, 퇴사를 결심했을 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단어를 꺼낸게 싫었다. 그 단어가 무척이나 섭섭했다. 웃긴 마음이지만 퇴사라는 단어는 내가 꺼내놓고 아름다운 이별이란 단어로 받아들이는 것이 기분이 상했다.


그 이후로 그 단어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별과 헤어짐에 아름다움이 정말 있을 수 있나? 나는 믿지 않았다. 인간관계에서나 무리에서나, 이별의 경험은 늘 씁쓸하고 불쾌했던 기억으로 남았다.


이제는 내가 선택하기로 했다.


그래서 선생님은 해보라고 했다. 사실 이 선생님은 회사에서 보내준 상담으로 만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어떻게 해야 퇴사를 잘할지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미안한 마음 반, 통쾌한 마음 반으로 선생님과 둘만의 비밀로 아름다운 이별 프로젝트를 해보기로 했다. 퇴사는 결정 됐고 그 시기를 잘 보내고 떠난 후에도 후련할 수 있는 이별을 맞이하기 위해서 말이다.


어떤 충격과 아픔이 생긴다면 잠시 힘들 순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내 인생이 마구 흔들리는 사건이 되지 않아야 한다. 또 나의 갈 길이 무언가로 인해 오랫동안 멈춰 있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렇게 살기 위해 이번 퇴사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쉽지는 않다. 처음해보니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성장이라는 이름 하에 나의 3년을 이곳에서 보냈고 분명 떠나고 싶음에도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이 그 시간 동안 쌓였기에 바로 놓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결국은 떠날 것이기에 이 세상 가장 중요한 나를 위해서 방법을 하나하나 해보고 있는 중이다.


먼저, 퇴사를 대표님들께 고했다. 

12월 1일에 전해 12월 30일까지 일하기로 했다. 이미 떠날 회사고 미움이 크다면 한달 보다 더 일찍 충분히 떠나버릴 수 있다. 하지만 내 인생 프로젝트를 위해 '온전한 한달'을 나와 그들에게 주기로 했다. 그리고 내게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단어를 꺼낸 사람에게 솔직한 내 마음을 전하며 지금은 그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는 때가 된 것 같다며 그렇게 하자고 전했다.


두 번째, 불편하지만 현실적인 대안에 대해 준비해서 전했다. 

퇴사 소식을 전한 날도 나와 직무가 유사한 팀원을 최종 인터뷰하기 전날이었고 내가 없는 것을 감안해서 인터뷰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전했다. 인수인계에 대한 계획도 전했다. 만약 팀원이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와서 차질이 생긴다면 퇴사 후에도 한번 온보딩을 진행할 생각도 있음을 전했다. 그리고 성심성의껏 노력하고 있다.


세 번째, 팀원들에게 따뜻하게 대하기로 했다. 

처음 퇴사를 강하게 생각한 이후부턴 모든 팀원들이 예전만큼 편하거나 좋지 않았다. 결국 내가 퇴사를 생각하게 된 과정도 매니저로서 이 사람 저 사람 챙기고 여기서 사건이 터지면 챙겨주고 또는 사건이 터지지 않게 잘 관리하기 위해 노력하다 병들었다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으로서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이, 내 환경이, 이 타이밍이 그랬던 것이다.


그래서 퇴사를 고하기 전, 아름다운 이별을 내가 선택한 이후부터 이들에게 더 신경 써서 잘 대해주고 있다. 웃음을 되찾고 에너지를 넣어 대화한다. 솔직히 그 선택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후련해져 자연스럽게 마음의 에너지가 채워졌다. 번외로 신기하게 마법의 약을 마신 것처럼 두통과 위염도 사라졌다 :D


그리고 내일이면 모두에게 내 소식이 전해진다. 신경쓰지 않는 사람, 조금은 아쉬워할 사람들이 그려진다. 그들과의 관계에서도 퇴사 후 내 잔여 감정이 없도록 좋은 마음으로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해주려 한다.


과거의 나에게서 지금의 내가 용기를 얻는다.


좋아하는 동생의 글에서 본 내용이다. 오래 전,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해냈던 자신을 돌아보며 지금 힘든 상황에서의 내가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용기를 얻는다는 글이었다. 무릎을 탁 쳤다.


지금 솔직히 아름다운 이별을 하는 과정이 매일 쉬운 건 아니다. 이미 떠남을 전함에도 매일 수원과 서울을 왔다갔다하는 것도, 그들을 매일 보는 것도 불편하다. 하루에도 이 정도면 괜찮은데 싶다가도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든 회사다 보니 어떤 순간에 불편함의 크기가 훅 커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과거의 나에게서 지금의 내가 용기를 얻는다면, 내 인생 첫 '아름다운 이별'을 정의하고 정리하는 귀한 경험을 하는 지금의 나에게서 용기를 얻을 미래의 나를 위해 이 시간들을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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