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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하영 Mar 18. 2023

야채를 씻는 이유

어른 학생들의 피아노 수업

모든 행동에는 목적과 목표가 있다. 아무 의미 없이 하는 행동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결국 그러한 결과를 보이는 과정 중에 이유는 하찮은 것이라도 있게 마련이다.


예전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다. 그 카페에는 사장님이 두 분이 계셨는데, 워낙 오픈할 때부터 단골인지라 두 사장님과 친분이 꽤 쌓였을 때였다. 번갈아 오픈을 준비하는 두 사람의 아침에 해야 하는 일은 동일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꽤나 달랐다. 브런치를 하던 가게라 아침에 야채를 씻어 프렙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중 야채를 씻고 물기를 빼내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이때에 쓰이는 용기 있었다. 야채를 넣고 뚜껑을 닫아 돌려주면 회전하면서 물이 아래 비어있는 공간으로 빠지는 작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용기였다.

한 사장님은 그 용기에 야채를 넣고 몇 번의 회전을 마치는 것으로 과정을 끝내는 모습을 봤다. 그때까지는 나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그 과정이구나 하고 별 생각이 없이 지나쳤었다. 그러다가 다른 오픈 날 다른 한 사장님이 동일하게 야채 물 빼는 과정을 가지는 모습을 보고 흥미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프렙을 준비하는 두 번째 사장님은 정말 그 물이 온전히 다 빠질 때까지 용기의 뚜껑을 돌렸다. 벌써 10년 전 일인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하는 행동의 이유에 대해서


어떠한 행동을 하는데에 목표가 무엇인지, 자신이 그 행동을 "왜"해야 하는지에 대해 인지를 한 후 행동하느냐, 아니면 그냥 그 행동을 해야 하기에 의식 없이 그 "행동"자체를 하느냐에 대한 차이를 크게 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평소에도 행동에 꼼꼼함이 차이를 보였던 두 사장님은 이러한 작은 과정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야채의 물을 빼는 행위를 하는 이유는 야채의 물이 맺혀 있을 경우 냉장고에 들어가 얼을 수도 있고, 물이 오래 닿아있는 곳이 금방 시들 수도 있기 때문에 씻은 후 좀 더 신선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물기를 확실히 제거를 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물 빼는 용기"가 따로 있지 않은가?

아침 일과 중 해야 할 일 '하나'를 한 사람과 온전히 그 행위의 '목적'을 행한 사람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때 내 학부시절도 생각이 났었다.

무의미한 연습시간

레슨 시간, 교수님이 오시기 전 교수님 방에 먼저 들어가 손을 풀고 있었다. 오전 첫 타임이었고, 손은 굳어있는 상태였다. 그럴 때면 굳어 있는 손가락을 풀기 위해 각기 한 손씩 부점과 당김음 등으로 빠른 음들을 연습하는 과정을 주로 하는데, 어떤 곡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16분 음표가 잔뜩 있는 곡이었을 것이다. 부점 연습을 하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벌써 화가 난 상태로 문을 열면서 "너는 부점 연습을 왜 이렇게 하니! 이럴 거면 리듬 연습을 하지 마"라고 타박을 주셨었다. 어린 마음에 놀라기도 했고, 도대체 무엇이 잘못이었을까? 교수님은 날 미워하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시간은 엄청 풀이 죽은 상태로 아마 레슨을 받았었을 것이다.


나는 그 시간 그저 손을 풀어야겠다 라는 생각만으로 아무 의미 없는 손 풀기를 하고 있었었다. 부점 연습은 연속되는 음들을 두 개씩 묶어 아픔을 길게, 뒷 음을 짧게 쳐내며 그다음 음과 다시금 빨리 붙어서 손에 나열된 음들을 숙련되게 쳐질 수 있도록 연습하는 방법이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배워 하농이라는 책을 쳐봤던 친구들은 다 알 것이다. :)

당김음 연습은 부점과 반대로 리듬을 만들면 된다.


이 연습을 할 때 정확한 길이감과 강세가 중요한데,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치지 않게 되면 짧은 음을 아주~~ 대충 치고 넘어가게 된다. 이런 리듬 연습의 목표는 모든 음을 균일하게 잘 쳐내기 위함인데, 음이 짧다고 긴음에만 치중해서 짧은 음을 버려버리게 되면 아쉬운 결과를 가지게 된다. 짧은 음에도 주어진 길이가 있으며 그 음의 음가를 다 해내야 하고, 모든 음에 손 끝을 집중해야 한다. 그때의 나는 긴 음은 그냥 길게 짧은 음은 ‘그냥 짧게 쳤었다.’ 교수님이 그때 연습하는 걸 들었을 때, 혼자의 연습시간에도 그렇게 쳤을 거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답답하고 걱정이 되었을 것이 너무 당연했다.


야채 씻는 행동을 보면서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버렸다.

사람이 어떻게 매일 매 시간, 매 순간 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필요한 일, 해야 하는 일, 목적이 있어야 하는 일은 구분을 해야 하고 그 일에 대한 의식적 책임은 분명 필요하다. 분명하게 해내야 하는 나의 일상 속 일들 중에는 행위 자체에 이입하여 보내는 일들이 많다. 조금만 주의를 가져보면 아주 작은 변화로 인해 더 큰 수확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목적 있는 의식, 그리고 그 의식으로 행해지는 행동들.

백 날 부점을 그저 긴음은 길게, 짧은 음은 짧게만 쳐댄다면 시간을 조금 아쉽게 버리게 될 뿐이다. 씻은 야채의 물을 빼는 행위를 몇 번의 돌림으로만 마친다면 사실 야채의 물을 빼는 행위 자체는 크게 의미 없는 행동이 될 것이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면 아주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더욱 그 시간을 빛나게, 쓸모 있게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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