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녀 기혼 여성의 ADHD 진단기
어렸을 때부터 어느정도 내가 ADHD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길을 걷다가 어느새 손에 들고 있던 신발 주머니를 떨어뜨리고 오는가하면, 이곳 저곳에 부딪혀서 무릎은 늘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으며, 무언가에 집중하면 아무 소리도 못들어서 선생님이며 엄마에게 자주 혼이 났다. 부딪히거나 물건을 흘리고 다니는 것은 그때 잠깐 슬프지만 와하하 웃고 지나갈 수 있었다. 그중에 가장 힘든 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 말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해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또 부르는 말에 대답하지 못해서 계속 혼나는 것이었다.
청소년 시기에 나도 모르게 나의 ADHD적 성향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한 과목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으니 과목마다 30분씩 돌아가면서 몰두하여 공부할 수 있게 한다던가, 프랭클린 플래너를 집착적으로 쓰면서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해야할 일들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누가 부르는 말에 대답 못해서 상처를 줄까봐, 친구들에게는 내가 이런 경향이 있으니 절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니 꼭! 대답을 안하면 몸을 흔들어서 불러달라고 미리 언질을 했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보내고, 대학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내 자신을 교정해나갔다.
회의에 오랜 시간 집중할 수 없어서 아예 노트북을 들고가는 것이 아니라, 딱 노트와 필기구만 들고 가서 계속 노트테이킹을 하며 회의의 맥락을 놓치지 않으려고 손을 놀린다던가, 메일은 혹시나 회신을 놓칠까봐 우선순위별로 폴더 정리를 하고, 읽기 전에 꼭 마크를 해뒀다. 대화를 할 때에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남편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 생활을 하면서는 가끔 "우리 밥먹을 때는 핸드폰을 안보면 안될까?"하고 핀잔을 들을 때도 있었지만, 남편의 너른 이해심덕분에 큰 문제 없이 행복하게 지냈다. (나의 일방적인 입장이다.^^;) 퇴근 후에는 사회생활하며 진이 빠져서 집에서는 나사빠진듯 지냈다.
가끔 성인 ADHD에 대한 이야기를 마주칠때마다, 으응 내 이야기 같은걸? 싶었지만, 그냥 넘어갔을 때가 많았고, 정말로 심각한가? 싶어서 검사를 알아봤을 때는 검사비가 워낙 비싸고 집 근처, 회사 근처에 마땅한 병원이 없어서 진단을 포기했었다. 그렇게 큰 비용을 내고, 금쪽같은 휴가를 내면서까지 진단을 받아야하나? 내가 ADHD가 아니면 어떡해? 하는 생각때문에 번번히 문턱을 넘지 못했다.
우리 아기는 이번달에 만 25개월이 되었다. 이제는 제법 긴 문장으로 이야기를 표현할수도 있고, 어느정도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루는 아기가 "엄마!"하고 부르는데, 좀 지친 상태여서 못 들었다. 아기가 "엄마! 엄마!"하고 여러번 부르자, 그제서야 들려서 "응, 차차야."하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때 아이의 눈빛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약간은 불안하면서, 슬프면서, 나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 것 같으면서, 엄마의 '특이함'을 깨달은 표정이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병원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