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단수이로 갔다.그 애와 다녀왔지만 다시 가보고 싶다. 거길 왜 또 가, 하고 물어올 사람이 없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떠나올 때는무료한 일상에 짱돌을 던질 비장한 마음을 품었을지 모르나,이제와조약돌로 물 수제비나 뜬다고 해서 뭐라할 사람도 없다.
내가 뭐라고, 왜 내가 나를 구속해.
대낮의 단수이는 고요하다.타이베이에 한가한사람은진정나밖에 없는 듯하다.
강변 산책로를 걷는다. 말도 안 되는 더위라고 생각하지만 싫지 않다. 여기 오고 싶었던 건 혼자이고 싶어서였다. 원래도 사람 많은 데를 싫어한다.모르는 사람이 바글바글한 다인실에서 잠을 자 본 것은 처음이었다.여름의 단수이, 숨 막히는 열기 속으로 들어오니 오히려 숨통이 트이고 있었다. 혼자가 되니 마침내 해방감이 밀려온다.
라오제 안에 있는 룽산쓰를 쉬 찾아 둘러볼 수 있었다. 이리저리 물어가며 내 속도로 잘 찾아가고 있는데(그랬다고 생각함) 아저씨 한 분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셨는지 아예 데려다주셨다. 그러고 보니 지하철역 방향을 알려주고도 내가 잘 가고 있나 보고 있다가 어깨를 두드려 준 아이도 있었다.(잘못 가고 있었다) 버스 타는 법을 아직도 모르는데 잘 타고 다닌다. 관심과 도움을 받지 않은 날이 없다. 여기 사람들은 착하다. 한 뼘 더 마음을 써준다. 실수와 모자람이 이 여행을 따뜻하게 한다.
고수가 아니라 하수인 것이 기쁘다.
단수이라오제에는 맛있어 보이는 먹거리가 많았다.
나 같은 길치는 한번 봐 둔 가게를 다시 찾기도 쉽지 않은 터라, 느낌 오면 먹어야 한다.
그렇게 눈에 띈 첫 주전부리는 아이스크림,빈 속에 훌륭한 선택이다. 대만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상륜과 샤오위가 먹었던 아이스크림. 바닐라와 초코가 섞인 맛을 선택하고 질질 흘리며먹기 시작한다.매일이땡볕이라 받는 순간부터 흘러내린다.(내가 칠칠맞지 못한 것이 절대 아님) 맛있다. 중학교 때 학교 앞 문구점에서 뻥튀기 사이에 끼워 팔던 그 아이스크림의 상위버전, 합격이다.
오징어 튀김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보기만 해도바삭함이 느껴지잖아. 통통하니 살도 올랐다. 그렇게사 먹으려는데,낼만한 잔돈이 없음을 알았다. 생각 없이 돈관리를 해 온 터라 이 사달이 났다. 튀김 하나 먹겠다고 뻔뻔하게 이 큰지폐를 내밀 수야 없다. 가게 언니한테 지폐를 슬쩍 보여 사정을 비친 후 미안하다고 말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예쁜 언니가 나를 다시 부른다. 대충 괜찮다, 는 것 같다.
그날, 오징어 튀김 가게 언니는 가게 안쪽까지 일부러 들어가 숨겨놓은 원통에 있는 지폐를 그야말로 싹싹 긁어 나에게 잔돈을 거슬러주었다.혼자 일하는 사람을 번거롭게 했다. 지갑 확인도 안 하고 튀김을 먹겠다고 달려든 나의 허술함에 혀를 찬다.
미안, 맛있어요, 고마워요, 내가 할 수 있었던 말 중 어떤 말이라도 이 언니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못 먹었으면 아쉬웠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대박 나라, 오징어 튀김가게.
번드르르한 입가를 쓱 닦고, 노점의 시원한 과일음료로 아점을 마친다. 딱 맞게 배가 부르다. 위장이 쪼그라든 것은 전 날, 우라이에서 확인했던 터였다.
먹는 것은 됐고,라고 생각했는데 해산물 과자를 팔고 있네. 한적한 시장에 나타난 무방비 상태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언니들은 놓치지 않았다. 시식을 권하고, 나는 사양하지 않는다. 최애과자가 새우깡인 여자는 미끼에 물린다. 얼굴에만족감이 동동 떴는지이것도 먹어봐, 요건 어떠니, 아침부터 나타난 손님에 손놀림이 부산스럽다.
한가로운 시장 안, 느슨하게 풀어진 분위기 속막무가내 영어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이 터진다. 언니들 추천인 누구나 좋아할 맛, 을 샀다. 이렇게 즐거운데 안 먹으면 손해가 아닌가.
결국 양손에 커다란 과자봉다리와(기꺼이 다 털림) 기념품들을(아기자기한 가게가 많다고)몇 개 들고, 탐욕스러운보따리상 같은 몰골로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왔다. 이쯤이면 단수이에는 과자를 사러 갔구나.
이거 꼭 오. 늘. 샀어야했던가.
널브러진 봉다리 사체들을 보고 있으니,이성이 시비를 걸어오기 시작한다.
됐어. 오늘, 즐거웠지.
밖으로 도는 것은 좋았고, 숙소에서는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게스트 하우스에서잘 쉬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밤에 코 고는 소리 (범인이 나였어)에 움찔해서 몇 번이나 깼다.선잠을 자고 만다. 눈치가 보여 편치가 않은 게지. 친구를 쉽게 사귀는 성격이 아니다. 알고 보면 다좋은 언니들일 수도 있는데. 안다, 스스로도.
스린야시장으로 밤마실을다녀온다.(숙소에 최대한 늦게 가고파서)줄 서서 지파이(닭튀김)를 먹는다. 과연, 너는 그저 그런 닭이었나. 두 번을 먹었는데도 애매하다.
첫 느낌을 지우고, 두 번째에 진실한 마음으로 음미해보고자 했는데 쉽지 않다. 이미, 아는 맛이 됐어.
첫 경험의 특별함을 다시 찾기란 어려움을 알았다.
애매한 맛, 을 받아들인다.
5천 원에 대해서 묵상한다. 그 가치는 어떠한가. 베드버그에 물려 의사가 공인한 악건성의 몸뚱이를 벅벅 긁어야 할 만큼의값어치가 있는가. 무서운 언니들(아닐 수 있음) 틈에서 기 못 펴고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지내는 것은 또 어떠했지? 5천 원을 더 얹으면 침구만큼은 호텔 뺨치는 대만 첫 숙소, 미로 찾기 급으로 도착이 어려웠던 추억의 옛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실수한 것에 대한 오기와 패기로 선택한 이 게스트 하우스와 작별해도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