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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얀 Jan 08. 2023

우리들이 있었다

공포의 첫 히치하이킹 (feat. 귀곡천막)


Vol 11. 우리들이 있었다




대만집, 으로 돌아다.

온 동네 사람들이 같이 찾아주었던 집이다. 역에서 내려 들어서는 목마다 반가 마음 . 지나가는 동네 사람이 왠지 아는  같이 느껴진다. 마음이 편하다는 것은 이렇게 기쁜 일이었구나.

이번에는  쉽게 찾았다.(바보가 아니라고)


숙소 바로 앞에서 개를 만나 캐리어를 버리고 도망가는 일이 있었지만 용감한 초등학생이 도와주었다.

 "무서워~저기 큰 개가 있어~" 하고 옷소매를 잡고 늘어지는 다 큰 어른을 씩씩한 대만 어린이는 지켜주었다. 어린이의 도움으로 캐리어 무사히 수습했다. 돈이며 살림살이 다 든 가방을 버리고 도망가다니, 파란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황당함에 웃음이 났다.



 

오늘은 양밍샨(양명산)으로 간다. 200만년 전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휴화산으로 대만에서 세번째로 큰 국립공원이라고. 등산을 좋아하는 진득한 인간이 아니지만 버스를 타고 가다 중간에 내려 원하는 코스 구경하면 된다기에 그 쯤이 뭐, 하고 갔다. 그렇게 간 양밍샨에서 생애 최대 공포체험을 하게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시작은 환상적이었다.

운이 좋았.(장르의 법칙인 듯) 관광안내소에 들러 대략 설명을 듣고 순환버스를 탔다. 산중턱에서 하차한 나는 꽃이 예뻐 유명하다는 지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앞서가는 청년들 무리가 있었는데 대만 대학생들인가 했다. 저쪽은 대략 열명 남짓되는데, 어디서 왔느냐며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한국에서 왔고요. 혼자 여행하고 있어요.

오! 우리는 홍콩에서 온 대학생들이에요.


같이 움직이자,라고 이야기가 되어 얼결에 나보다 5살쯤은 어려 보이는 대학생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무슨 일을 하나요?
몇 살인가요?
우리는 졸업여행을 온 거예요.
펜탁스! 그 dslr을 고른 이유가?
나도 그 카메라가 좋아요.
우리는 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군요.



와. 여러 친구들의 질문과 대답, 그리고 관심이 한낮의 유성처럼 쏟아진다. 홍콩인들은 영어에 무리가 없다. 나는 과부하가 마구 걸리고 있지만 최대한 제대로 된 영문조합으로 말하기 위해 정신을 붙잡고 있다.

신선놀음이란 말이 절로 떠오르는 경치 속에서 예쁜 산책로를 더 예쁜 친구들과 걷고있다. 여학생, 남학생 양쪽에서 웃고 재잘거리고 속닥거린다.

저기 멋지다, 저 꽃 보고 가요, 하며 멋진 풍경이 나오면 알려주기 바쁘다. 이 친구들 덕분에 대만 와서 처음으로 영어를 정말 많이 말해본다. 그리고 안내지도를 볼 필요가 없었다. 순한양처럼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즐거운 대화에 밝고 활력이 넘치는 친구들, 얼마나 행운인지!




청명한 하늘에 다정한 동행들까지, 완벽한 하루다. 단체사진도 함께 찍는다. 졸업앨범에 내가 들어가는 거 아니야, 웃음이 만개한다. 황홀했다. 그래, 거기서 딱 그쳐야 했는데. 친구들이 버스 타고 이제 내려가자고 할 때 같이  갔어야 했다.

과욕은 문제를 부른다. 설마 내가 두 번은 산을 오르지 않을 것 같아 조금 무리해 한 곳을 더 볼 수 있었으면 했다. 잰걸음으로 가보자, 했던 것이었다. 친구들과 헤어졌다. 건강하게 여행을 마치자고, 서로 격려하고 응원해 주었다.



몰랐다. 인적 없는 산에 혼자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한참 풍경 사진을 찍고 있는데, 주변이 어둑해지려 했다. 돌아가야 했다. 차도로 나와봤지만 버스정류장이 보이지 않는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분명 있을 것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아래로 걸었다.


없다.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이성을 잃었다. 이 길이 차가 다니는 길이 맞기는 한가. 어두워지는데, 처음 와보는 외국의 산 한가운데 나 혼자다. 주변에 집도, 지나가는 차도, 사람 흔적도 없다. 이 바보, 어쩌자고 이 시간까지 지체한 거야. 안돼, 제발, 하며 헤매고 있었다. 그러다 낡은 천막 하나를 발견했는데, 묶여 있었지만 큰 개가 으르렁거리고 있다. 평소 같으면 가까이 가지 못했겠지만 살아야 했다. 실례합니다, 를 낮게 중얼거리며 다가가니 할아버지 한 분이 고개를 . 맙소사. 사람이야. (귀신일리가!) 영어를 전혀 못 하셨다. 버스, 버스,라고 지도를 보여드리며 간절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못 알아듣는 눈치지만 이 분 밖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할머니가 지팡이를 고 나타나시더니 큰 소리로 할아버지께 윽박을 지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손사래를 치고 뭐라 하셨는데, 할머니가 굉장히 화가 난 상태라 웅크리고 앉아 더는 쳐다보지 않으셨다. 할머니 지팡이를 내 쪽으로 뻗어 가라는 식으로 밀어내다. 믿기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기괴한 상황에 심장은 놀라 터질 것 같고, 무서워 울고 싶어졌다. 주인의 모습에 흥분했는지 목줄에 묶인 개가 달려들 듯 짖기 시작한다.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덜덜 떨리는 발을 억지로 떼어내며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이때 내 표정이 어땠는지 상상도 못 하겠다. 온갖 끔찍한 생각이 마음을 잠식하려 다. 일단,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는 것만 생각해야 한다. 버스는 아무래도 끊긴 것 같다.

기도했다. 내려가다가 히치하이킹을 하자.

차는 한 대도 보지 못했다. 그래도 그 수밖에 없다. 울면 완전히 무너져 기절할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무섭고 한심하다.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 줄 몰랐다. 허나 자괴감은 나중의 문제다. 주변을 살피며 길을 따라 걸었다. 

그때, 어스름한 저녁 빛을 뚫고 차 한 대가 얼굴을 보인다. 분명 자동차다.

초심자의 행운, 이라고들 하지. 소설 연금술사의 어느 순간이었더라. 여행 하수인 내 눈 앞에 알 수 없는 행운이 다가온 것인가.


초심자의 행운 : 어떤 분야에 막 입문한 초보자가 일반적인 확률 이상의 성공을 거두거나, 심지어 그 분야의 전문가를 상대로 승리하기도 하는 기묘한 행운을 일컫는 말

                                                                     


                                                                        나무위키 인용


못 보고 지나칠까 봐 있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와중에 남자가 운전하는 차라면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 했다. 차는 내 앞에 멈춰주었고, 다행히 뒷자리에 부인과 어린아이들 .

그날 해녘 양명산에, 겁쟁이인 내게 꼭 맞는 차가 와준 것이다. 인생 첫 히치하이킹이었다.

 

감사해 어쩔 줄 몰랐다. 안도감이 온몸으로 밀려든다. 연이은 충격으로 벌게진 얼굴로 감사합니다, 를 연발했. 뭐라도 드리고 싶어 가방을 뒤지는데, 한사코 사양하신다. 이들이 어디를 가는 중이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나를 안전하게 산 아래까지 데려다주다. 그 가족의 맑은 얼굴을 잊지 못한다. 은인이었다.



(청춘물에서 호러로) 장르가 바뀔 뻔한 위기는 아름다운 가족의 도움으로 막을 내렸다. 이걸 겪고 돌아가는 숙소가 내가 좋아하는 대만집이어서 다행이다. 8인실로 돌아가야 했다면 정리되지 못한 감정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못난 꼴을 보였을지 모르겠다. 돌아가는 mrt 안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편안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파란대문집으로 어서 가야지.




작은 고난 스쳐갔다.

나는 오늘 찾아온 모든 행운과 기쁨을 복기하고 감사하기로 한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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