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 시장에 가 아침으로 먹을 과일을 사 오는 데 옆방 프랑스인과 눈이 딱, 마주친다. 그는 숙소의 거실 소파에 앉아 대만 여인과 뜨거운 애정행각 중이다.
어우, 저 능글이. 두 번 양보해서 여자친구일지 모른다고 넘어가려 해도,다른 사람들이(실은 나만..) 보는데 저 수위는 소중한 여친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7시가 되면 숙소를 나가는 것이 나의 루틴인데, 늦었다.
온천에 갈 거다. 나는 오늘 왕족급의 여행을 할 거라고.
베이터우에는 온천을 하러 왔다.
이 날을 기다려왔다. 대만에 온 후 석회물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머리를 감아도 뻣뻣하고, 매일 씻어도 피부가 돌가루 같은 이 찜찜함.
나는 모처럼 벅벅 씻겠다는 생각으로 폭염 속에 온천으로 가는 길을 씩씩하게 걷고 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온천 박물관을 대충 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지열곡도 휘리릭 보고, 규모가 있는 좋은 온천호텔들을 쭉쭉 지나친다. 나는 고집스럽게 점찍어 둔 온천을 찾아갈 것이다. 미리 골라둔 곳은 롱나이탕으로, 일본 히로히토 왕세자가 방문한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게다가 온천인데 단돈 몇천 원,다른 데 갈 수 있냐고.
다 왔다는 생각이 들 무렵,
한국말이 들려왔다.
한국인이에요?
오, 등산복 차림의 아주머니다.
우리는 나무 그늘 아래 같이 앉았다.
여기서 온천하려고? 아유, 하지 마~
이게 무슨 소린가. 나는 여기에 오려고 원주민 마을 우라이에서도 온천을 스킵했는데.
왜요? 하고 나오신 거예요? 어떤데요?
궁금증 폭발.
아유, 뭐라 말을 못 하겠네. 난 금방 나와버렸어~ 아무튼 하지 마~ 볼 것도 없어~
아주머니는 먹을 것도 주시고, 어떻게 혼자 왔냐며걱정도 해주시고는 한사코 온천은 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지 마, 할 때 그 표정이 너무 리얼하다. 도대체 어땠길래!
그때, 아저씨가 나오셨다. 아주머니는 남편을 기다리고 계셨던 모양이다.
한국에서 온 아가씨야?
아저씨도 그늘 아래 앉으신다. 방금 온천을 마치고 나와 개운해 보였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껄껄, 웃으시고는
왔으면 들어가 봐야지. 괜~찮아. 괜찮아.
온천수가 좋았던지 아저씨의 얼굴이 말끔했다.
반면 내 얼굴은?
아,난감하네.
이제 스스로 말해본다. 괜찮아, 괜찮아...
무려 한 나라의 왕세자가 방문했다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가이드북에도 소개된 그 온천에 첫발을 디딘 나는 잠시 벙벙해졌다.
알몸으로 입장은 했는데,불안한 눈빛은 숨겨지지 않는다.
돌덩이처럼 멈춰 선 나를 몇몇 분이 쳐다본다.
저 시선은 그런 뜻인 것 같다.
너, 몰랐구나!
여기를 온천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목욕탕, 이곳은 우리 집 화장실보다는 좀더 큰 상당히 낡고 허름하고 어두운목욕탕이었다. 100년도 더 되었다더니. (수리는 설마 한 번도 하지 않았나!)
만류하던 아주머니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간다. 아저씨와 달리 그분은 상냥한 분이었던 것이다. 나도 나가기만 하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누군가를 말리고 싶어졌다.
갑자기 바쁜 일이라도 생각난 사람처럼 옷을 주섬주섬 입어볼까.하아, 주저앉아 몸을 씻기 시작했다.침착해, 자연스럽게.
둘러보니 거의 중년의 대만인들이고 젊은 사람은 나뿐이다. 여기는동네사람들이씻으러 오는,일본식 가정집을 개조한듯한초미니 목욕탕이라고나 할까.
당혹감이 차오르지만 목적은 잊지 않았다.
당황하면 웃어버리는 버릇이 있다. 벌거벗은 채로 웃음거리까지 될 수야 없지. 헛웃음이 샐까 이를 꽉 깨물어야 했다.
말끔히 씻었다. 해냈다.
저 온천(목욕탕)에서 정신을 지키며 씻는 것이 수월한 일이 아니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 아주머니만이 내 심정을 알 것이다. 이제 내 얼굴도 아까 마주쳤던 한국인 아저씨처럼 말끔할 것이다.라듐이 들었다더니,자세히 모르지만물이 좋은 것만은사실인것 같다.
돌아가는 길, 너무 더우니 역까지 태워주겠다는 호인을 만났다. 양명산에서 히치하이킹도 했는데, 이쯤이야 싶었다.
나는 선생님이에요.
안경을 낀 인상 좋은 그녀는 선생님이었다.짧지만 산뜻한 대화를 나누고,헤어질 때 가지고 있던 기념품을건네니 기분 좋은 웃음으로 받는다. 먼저 호의를 베풀 줄 아는 그녀는 근사한 사람이겠지?
사진출처 : 픽사베이
인생은 낚고 낚이는 것이라 말하며 웃던 나의 여행메이트,잊지 못할그 애가 생각난다.넌 어쩜 그리 옳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