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두 쪽 나도 명절에는 차례를 지내야 한다던 아버지의 입에서 별안간 여행 가자는 말이 나왔다.
아니 잠깐, 그건 매년 내가 습관처럼 하던 말이잖아? 내가 그랬을 땐 맨날 헛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놓고선. 수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가 아버지의 그것이 맞는가 싶어 순간 멍해졌다.
해마다 명절이면 공항이 북새통이라는 뉴스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보수적인 집안, 장남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내게는 늘 딴 나라 이야기였다. 차례상 차리고 치우기도 바쁜데 여행은 무슨!
어렸을 땐 가족여행을 꽤나 자주 다녔다. 그런데 내가 직장인이 되고나서 휴가 일정을 맞추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교사인 아버지는 방학이 아니면 시간이 나질 않았고, 나는 신입급이라 명절이 아니면 길게 휴가 내는 것이 부담스러웠으니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린 각자 떠나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나를 뺀 부모님과 동생만 스페인에 다녀왔고, 나는 나대로 친구들과 열심히 돌아다녔다. 네 명이 완전체로 마지막 여행을 다녀온 것이 어느덧 4년 전 일이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평생 굳건할 것만 같던 아버지의 신념이 갑자기 왜 변했는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내가 습관처럼 하던 말에 드디어 세뇌당하신 걸까?
"아버지 저러는 거 진심이야?" 아버지가 주무시는 사이 어머니께 슬쩍 물었다.
"니 아빠 그 말 한지 꽤 됐어. 너 시집 가기 전에 같이 시간 보내야 된다고."
남자친구가 있다는 말은 했지만 아직 결혼을 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면 그냥 "잘 지내라" 하시던 아버지였는데 이번 남자친구는 느낌이 좀 다르신가 보다. 자꾸만 "그래서 그놈이랑 결혼할 거냐" 물어보시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왜 오버하냐"며 얼버무리곤 했는데, 아버지는 나 몰래 딸내미 시집 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셨나보다.
나라는 존재가 아버지께서 60년 가까이 이어온 집안의 전통(?)을 깰 만큼 영향력 있었다니. 아버지의 눈에는 항상 시골에 혼자 계시는 할머니만 밟히는 줄 알았다.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할머니와 집안행사를 뒤로하고 명절에 여행을 가자고 하는 건, 아버지로선 큰 결심이 아닐 수 없었다.
혼자 딸과의 벼락치기 추억쌓기를 계획하고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이상하게 가슴이 아리다. 스무 살 되던 해에 독립해 벌써 집에서 나와 산지도 10년차, 그간 넋 놓고 청춘을 즐기느라 부모님이 뒷전은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애틋해졌을까? 가족끼리 함께 보내는 시간이 원래 이렇게 신념을 뒤집어야 가능할 만큼 특별한 거였나. 어느 시점부터 부모님께서는 내 자취방에 한 번 올라치면 내 눈치를 보시고, 나 역시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은 직접 못하면서 뒤에서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는 드라마만 보면 눈물을 훔친다(아니 펑펑 운다). 그냥 서로 자주 보고,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양쪽이 바보같이 그러고 있다.
"초는 몇 개 드릴까요?" "큰 걸로 여섯 개요."
이번 주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들른 고향. 생신케잌을 사는데 문득 초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