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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륫힌료르 Mar 16. 2020

3년 만에 다시 수험서를 폈다

전문직 회사원의 방황 (1)

2017년 6월,

입사한지 반 년도 채 되지 않아 첫 직장을 때려쳤다.


나의 첫 직장은 여의도의 한 노무법인이었다. 인고의 연속이던 수험기간과 한 달 간의 집체교육. 그 끝에 야심차게 시작한 수습노무사 생활이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그해 말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지방에 있는 공기업으로 이직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어느덧 회사에서는 내 밑으로 후배가 3기수나 들어왔다. 벌써 연말이면 대리다. 그렇게 내가 회사에 적응해나갈 동안, 3년 전 함께 수습생활을 시작했던 동기 노무사들은 업계 베테랑이 됐다. 어엿한 법인 대표, 노동조합 간부, 인센티브 빵빵하게 받는 4년차 노무사로 말이다.

요즘 같이 힘든 시기에 월급 받고 사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한 번 사는 인생, 세상에 왔다간 흔적을 남기고 싶은 '관종 회사원'은 평범한 월급쟁이 생활이 항상 성에 차지 않았다. 동기들은 노동사건을 멋지게 해결하고 굵직한 컨설팅도 따내고 이곳저곳 강의를 다니며 전문가로서 역량을 맘껏 뽐내고 있는데, 나는 뭘까? 그나마 알던 노동법도 잊어가고 있었다.


8대 전문직이라는 노무사 자격증이 장롱 속에 처박힌 운전면허증과 뭐가 다를까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부서 대리님께서 말씀하셨다.

"회사 5년쯤 다니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회사에서는 나름 인정도 받고 점점 쓸모있어지는데, 회사 밖에서의 나는 갈수록 무능해지는 것 같다는."

대리님은 회사 밖에서도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최근 전문자격시험 공부를 시작하셨다고 했다. 그리곤 내게 말했다.

"나는 주임님이 부러워요. 주임님은 이미 노무사잖아."


회사만 다니다 뒤쳐지는 건 아닐까 조바심을 느끼차에 대리님의 말씀은 기분 좋은 자극제가 됐다. 감사하게도 내겐 남들에게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이미 존재하지 않는가?



자격증의 존재는 생판 모르는 남에게도 비교적 쉽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큰 무기다(명함 교환 때 주임에 불과한 내게 거래처가 보인 반응을 보고 알게 됐다). 때론 그것이 인생의 보험이자 하나의 확실한 선택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무기도 갈고 닦지 않으면 닳는 법. 그동안 나는 전문직이라는 그럴듯한 타이틀을 스스로를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했을 뿐이었다. 마치 찬장 속에 전시해둔 트로피처럼 말이다.




2020년 3월,

노무법인 퇴사 후 쳐다도 보지 않던 노동법 책을 3년 만에 다시 펼쳤다. 


비로소 나는 장롱 속먼지 쌓인 노무사 자격증을 다시 꺼내보기로 했다. 필요한 순간에 도로 위를 달려면 미리 연수를 받아야 하듯,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니까 말이다. 노무사라한들 인사팀 신입사원보다 노동법을 모른다면 누가 갖다 쓰겠는가? 무지는 언제든 들통나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회사에 다니는 내가 실무에서 두 발로 뛰는 노무사들의 깊이를 따라갈 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특별한 월급쟁이'이고 싶기에, 언젠가 회사 밖으로 나갔을 때 유능한 사람이고 싶기에 오늘도 수험생 시절로 돌아간다. 




ㅡ(2)편에서 계속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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