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서먹해진 판례들을 마주하니 문득 과거의 내가 존경스러워졌다. 그땐 이걸 어떻게 다 머릿속에 집어넣었지?
공부를 다시 하면 날아간 지식만 돌아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나는 '나와 재회했다'.
한여름 태양처럼 뜨겁던 4년 전 나와.
다시 펼쳐진 책 앞에서 잠시 수험생 시절을 떠올려본다. 그야말로 역설투성이인나의 '흑역사'이자 '리즈시절'이다.
[역설1. 주적과 '베프'가 됐다]
수험생활 초반 나는 '계획이 다 있었다'.
# 새벽 6시 기상 > 헬스 1시간 > 오전공부 오후공부 밤공부.
흡사 마늘과 쑥만 먹으며 사람 될 날만을 기다리는 웅녀 같았다.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그나마 웅녀는 100일만 참으면 되는데 내게는 기약이 없다는 것. 일기장에는 '불금이지만 참아야지' 'KBO 시즌이지만 참아야지' 따위의 다짐들이 가득했다.
타이슨의 말처럼 누구나 다 계획은 있다(얻어맞기 전까진). 야심차게 그린 '빅 픽쳐'는 금새 삐걱댔다. 몸과 마음이 2인3각 경기를 하는데마음은 저만치 앞서가고 몸은 그에 따라주지 못해 몇 번이고 넘어졌다.
결국 몸이 먼저 큰소리를 냈다.
"야!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한여름에 비타민D 부족이 말이 되냐? 왜 이렇게 미련해?"
이에 질세라 마음이 대꾸했다.
"넌 뭐가 그렇게 느긋해? 시험 얼마나 남았다고. 나중에 떨어지고 울면서 내 탓하지나 마라!"
자책과 원망이 반복되면서 몸과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멀어졌다. 나는 둘을 화해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책상 위 스톱워치를 치워 조급한 마음을 달랬고, 일주일에 한 번은 캔맥주에 '무한도전'을 즐기며 몸을 타일렀다.
어르고 달래고 스스로와 처절하게 싸우면서도 끝까지 고집한 것은"밥값은 하자"는 철칙이었다. '나는 공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야. 그러니까 직장인들처럼 최소 8시간은 공부해야 밥값을 하는 거야.'
공동의 적이 생기면 내집단은 더욱 똘똘 뭉친다고 했다. 시험이 가까워올수록 몸과 마음은 의기투합해 "할 수 있다"고 외쳤다. 우리는 결국 해냈고 비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친해졌다.
주적인 동시에 한 평생 같이 갈 '베프', 그건 다름아닌 나 자신이었다.
[역설2. 경쟁자라 쓰고 전우라 읽는다]
나는 주로 학교 고시반에서 공부했다. '사'자 한 번 달아보겠다고 겁없이 덤벼든, 수십 마리 불나방들과 함께. 숨소리조차 거슬리는 그곳은 총성 없는 전쟁터였다.
노무사 준비생은 나를 포함해 다섯이었다. 2열람실 한 켠에서 불나방 다섯 마리가 매일같이 전쟁을 치렀다.
우리의 암묵적인 룰 ㅡ '나는 너를 알지만 모른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절대 아는 척하지 않는, 이상한 관계가 이어졌다.
3개월쯤 지났을까? 불나방 한 마리가 나가떨어졌다. 어느 순간 그의 책상에는 노동법 책 대신 공무원시험 기출문제집이 놓였다.
'아싸, 한 놈 제꼈다!'
나는 모두에게 싸움을 걸었다. 자신과의 싸움만으로 벅찬 시기에옆사람이 무슨 책을 보는지 얼마나 공부하는지 의식하기 바빴다. 낡은 책에서 풍기는 고수의 향기에 압도당했다가, 내 진도가 더 빠르다는 사실에 안도했다가.. 혼자 '쌩쇼'를 한 거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드디어 시험 전날. 그간 다른 수험생들은 대부분 시험을 마쳤다. 고요한 열람실에 우리 넷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 뜨거운 여름날 다들 산으로 바다로 떠났는데 우리만 여전히 전시상황이다.
아, 그런데 갑자기 이게 무슨 감정인가? 여태 적군이라 생각했던 그들에게서 전우애가 느껴졌다. 이상하다. 나 군대도 안 가봤는데?!
"내일 시험 잘 보세요!"
시험 전날 밤, 열람실을 나서며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전우에게 말했다. 1년여 만에 나눈 첫 마디였다.
그렇게 시험은 끝이 났다. 며칠 뒤 자리를 정리하러 오랜만에 열람실에 들렀는데, 책상 한 켠에 붙어있는 노란 메모지가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친구도 나를 무척이나 의식하고 있었다. 내가 자주 입은 추리닝 바지가 어떤 무늬였는지, 즐겨 마시는 음료가 뭐였는지까지도.
"누나 때문에 제가 그 동안 얼마나 쫄렸는데요!"
경쟁자라 쓰고 전우라 읽는 관계. 서로의 잔에 축하주를 따르며 비로소 우리의 역설적인 관계도 끝이 났다.
[역설3. 덜어낼수록 차오르는 '갬성']
1분 1초가 아까운 수험생에게 '갬성'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그러나 나는 수험생 시절에 가장 말랑했다. 휴대폰을 끄고 SNS를 끊고ㅡ속세와의 단절로 쓸데없는 '갬성'을 제거하려 했으나 글쎄. 덜어낼수록 차오르는 감정을 어쩌지는 못했다.
첫째, 기침과 사랑은 숨길 수 없었다. '공부하는 동안 연애는 절대 안 할거야'ㅡ초반에 했던 다짐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보란듯이 마음이 콩밭으로 향했다. 스스로가 수험생이기 이전에 스물다섯 청춘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결국 누를수록 넘실대는 감정에 굴복해버렸다.
둘째, 그 어려운 걸 해냈다. 부모님께 사랑한다 말하는 것 말이다.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마다 참아냈던 말인데 어느 순간 질러버렸다. 시험에 붙든 떨어지든 나는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딸이라는 사실이, 넘어질 때마다 나를 일으켜세워줬다.
셋째,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하루 중 내게 허락된 유일한 휴식은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식사 후 알레그로의 음악을 들으며 산책하는 시간을 사랑했다. 이어폰 꽂고 캠퍼스를 거닐다보면 사계절이 그렇게 뚜렷할 수가 없다. 어제까지도 봉오리에 불과했던 꽃이 활짝 피고, 그제까지도 푸릇하던 나뭇잎이 수줍게 물드는 걸 보면서 그 모든 순간과 사랑에 빠졌다.
나의 스물다섯은 이토록 뜨거웠다.
수험기간 동안 나는 남김없이 연소했다. 누군가 "떨어지면 1년 더 할 거야?" 물었을 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아니. 할 만큼 했다"고 답했을 만큼.
왜, 사랑을 할 때도 그렇지 않은가? 결국 승자는 상대에게 최선을 다한 쪽이다. 결과를 떠나 수험생 때만큼 '나'라는 인간에게 오롯이 집중한 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