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륫힌료르 Aug 30. 2020

'디지털 특고' 플랫폼 노동의 현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플랫폼 노동자들

"문 앞에 두고 벨을 눌러주세요."

언젠가부터 우리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든 문장이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언택트(Untact, 소비자와 직원이 직접 접촉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소비 형태)'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문장을 접할 일은 더욱 많아졌다. 유명 맛집의 음식도 달달한 디저트도 심지어 커피 한 잔까지도 스마트폰 몇 번만 두드리면 문 앞까지 날아온다. 바야흐로 배달음식의 시대다.

그런데 이런 어마어마한 편의를 누리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음식에 발이 달리지 않고서야 저절로 집 앞까지 올리 만무하니, 바로 우리 대신 땀 흘리며 신속한 배달에 여념이 없는 배달 노동자들이다. '배달의 OO' 'O기요' 등 스마트폰 앱, SNS를 기반으로 일하는 이들ㅡ우리는 이들을 '플랫폼 노동자'라 부른다. 배달기사로 대표되는 플랫폼 노동자, 그들이 처한 현실은 어떨까?






플랫폼 노동은 수요자와 공급자가 플랫폼을 매개로 서비스를 주고 받으며 이루어진다. '판을 깔아주면' 노동자들이 알아서 돈을 버는 구조다. 배달기사, 택시기사, 대리운전사 등은 플랫폼 제공자에게 일정 수수료를 지하고 스스로 일거리를 찾는다. 이들은 특정 업체에 전속되지 않으며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다. 노동시장이 점 전통적인 관료제에서 벗어나 유연화 되고 있는 지금, 자유로이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플랫폼 노동은 굉장히 매력적인 영역이다.


그런데 일한 만큼 버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할까? 노력한 만큼 대가가 따르는 것은 좋지만 이러한 수익구조 때문에 노동자들은 더 빨리, 더 많이 일하길 원한다. 단시간에 많은 건수를 채우기 위해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도로 위를 내달린다(실제로 악천후에는 인센티브가 평소보다 높아진다고 한다). 어찌 보면 플랫폼 노동자들은 수요자 대신 위험을 감수하는 이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은 미비하다. 플랫폼 노동시장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변화하는 모든 것들이 으레 진통을 겪듯 아직은 과도기인 셈이다. 항상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플랫폼 노동자들은 지금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는 이에 근거해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했고 대표적인 것이 바로 4대보험 제도다.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물리적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특히 산업재해보상보험 적용의 필요성이 높은 직종이다. 현행법상 산재보험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여야만 혜택을 받을수 있는데, 판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사용종속관계 하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판단하고 있다. 즉 특정 사업주에전속되어 그의 지휘 명령 하에 일하는 사람들만이 근로기준법과 산재보험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 업체에 전속되지 않고 자유로이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은 현재로서는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


한편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범위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플랫폼 노동이 이슈가 되기 전부터 '특수고용직 노동자(이른바 '특고')'의 근로자성이 항상 문제됐기 때문이다.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화물트럭 운전수 등 겉으로 드러나는 전속성은 없지만 실질적으로 보호 필요성이 있는 자들이 많아서다. 다행히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범위는 긴 논의를 거쳐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20년 7월부터는 5개 업종의 특고 종사자가 추가로 산재보험을 적용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더미다. 보호 범위가 늘어났다고는 하나 대상 업종이 제한적이며, 대부분 개별적 사안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 산재보험의 경우 특고 종사자가 원하지 않으면 적용 제외신청을 할 수 있어 이 경우 재해가 발생하더라도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일반적 형태의 근로자들은 당연가입이 원칙이므로 사업주 보험료를 부담하나, 특고 종사자는 사업주가 특정되지 않아 본인이 보험료를 내야 한다.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이들은 공제액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용 제외를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최근 정치권에서특고 종사자의 보험 당연가입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플랫폼 노동자 역시 특고 종사자와 노동 형태가 유사해 '디지털 특고'라고도 불리므로 이러한 논의를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로나19 확산으로 언택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플랫폼 노동시장은 불에 기름 부은듯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모두가 타인과의 연결을 거부하는 시대에 플랫폼 노동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를 하나로 잇고 있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들은 누군가가 주문한 음식을 배달하고, 쏟아지는 콜에 손님을 싣고 도로 위를 달린다. 앞으로도 이러한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높은 확률로 지속될 것이며 이에 발맞춰 플랫폼 노동자들 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과거 농업이, 제조업이, IT산업이 그러했듯 플랫폼 노동도 이제 시대를 이끄는 하나의 큰 흐름이다. 따라서 이는 특수한 것이 아닌 하나의 일상적인 노동 형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아울러 근로기준법, 산재보험법을 비롯한 법적 보호망도 촘촘하게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오래 전 전통적인 노동 형태를 가정하고 만들어진 법은 계속해서 등장하는 새로운 노동 형태를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식 개선과 노동환경 개선이 함께 뒷받침될 때 플랫폼 노동과 같은 새로운 노동 형태도 지속가능한 노동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배달음식을 시키며 세상에 한 마디 보태본다.


"라이더님, 안전하게 오세요."

작가의 이전글 90년생이 오려다 말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