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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Dec 21. 2022

자기계발서를 읽는 이들을 위하여

신영준+주언규의 『인생은 실전이다』를 읽고

처음 어떻게 주언규 피디를 알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책 <돈을 사랑한 편집자들>을 읽다가 책 속의 저자들에 대해 검색해보다가 관련 자료들을 통해 알게 되었던가. 그러고보면 내게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대부분의 루트는 ‘책’을 통한 것이 많다. 새로운 세계로 가는 징검다리. 그게 내겐 책이기도 하다.


<돈을 사랑한 편집자들>은 광화문 교보에서 샀다. 그날 거기에 왜 갔느냐 하면, 공저자로 쓴 책이 광화문 교보에 ‘누워 있는’ 장면을 알현하러 갔었더랜다. 기라성 같은 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는 건 감격스럽기보다는 신기한 경험이긴 했다. 단독저자로 책이 나오게 된다면 또 다른 기분이기는 하겠지만.


그날 휘리릭 사진을 찍고 주차장 쪽으로 향하다 발견한 신간이 그 책이었다. 주로 재테크, 부동산 관련 책들을 편집해온 에디터 둘이서 알콩달콩 즐거이 쓴 책을 참 재미있게 읽었다. 차마 고상한 출판계에서 어쩐지 하대받는 것 같은 ‘자기계발서’라는 분야. 대놓고 ‘나는 자기계발서 같은 책은 읽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도 많이 들어봤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의 사정을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다. 책을 통해 세속적이고 옅은 잔꾀를 얻으려는 마음이 한없이 얕고 가벼워 보였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 누군가에겐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이 절실한 독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책을 읽는 것이 사유의 깊고 얕음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하기도 어렵다.


나는 어떤 분야의 책이든 사람들이 많이 찾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책의 인기와 완성도가 항상 일치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삶의 이치에 대해 정연하게 깨닫게 되지가 않는다. 오히려 거세게 몰아닥치는 세파에 갈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는 일이 잦다. 때로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졌다고 느꼈다가도,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문제들에 발부리가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그런 때 어떤 이는 술에 의존하고, 친구를 만나 고민을 나누고, 혹은 우울에 빠지거나 문제를 회피하기도 한다. 아니면 그저 온몸으로 인생의 파도를 맞이하거나.


그리고 어떤 이들은 책을 읽는다. 물론 그것이 꼭 자기계발서일 필요는 없다. 소설 속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고, 사회과학이나 철학서에서 생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고투할 수도 있다. 가벼운 에세이를 통해 그저 나와 비슷한 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공감하고 치유되는 경험을 할 수도 있고, 심리학서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발견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레시피북을 사서 요리의 세계에 푹 빠져볼 수도 있으리라. 소위 '식덕(식물덕후)'이 많아지는 요즘, 식물과 플랜테리어에 관한 책이 많아지는 것도 괜한 일은 아닐 것이다. 책을 통해 우회적으로 힐링을 경험하는 과정이리라.


그 중 특별히 직장에서 만나는 온갖 디테일한 문제의 답은 자기계발서를 통해 단기간에, 좀더 빠르게 짚어볼 수도 있다. 직장에서 동료들이나 상사와 잘 지내는 법, 보고서 쓰는 법, 이메일에 대한 매너, 팀장의 역할, 직장 내의 위계질서 등에 관하여. 혹은 스타트업이나 이직, 창업과 관련한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중구난방의 포스트 여러 개를 읽는 것보다 잘 정리된 책 한 권이 훨씬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가 현장에서 긴급하게 맞닥뜨리는 온갖 문제에 대한 해법을 얻기 위해 책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그리고 이 분야에서도 탁월한 편집력을 보이는 에디터들이 대한민국에는 아주 많다. 이들의 공력이 어째서 폄하되어야 할까. 자기계발서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은 만화라는 장르에 대한 오랜 오해만큼이나 이롭지 않은 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 그대로 ‘인생은 실전’이기에, 우리가 만나는 온갖 진흙탕이나 늪에 대해 먼저 겪어본 이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값진 경험이다.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대처해 왔는지 귀 기울여 보며 나에게 적용할 수 있는 지점과 팁을 찾아볼 수 있다. 자기의 치부까지 드러내며 타인에게 노하우를 공유해주는 이들을 나는 리스펙한다. 이러한 책은 그 어떤 우아한 이야기들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리하여 나는 때때로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그것도 기꺼이. 물론 다른 분야의 책을 고를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책이나 읽지는 않는다. 작가와 편집자가 공들여 쓰고 다듬어 차려낸, 좋은 책을 선별해 읽으려 애쓴다. 이 책은 중고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주언규 피디가 단독으로 쓴 다른 책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공저로 쓴 책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책은 단지 돈 버는 법이나 직장생활에서 성공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인생 전반의 태도와 가치관에 대해 두루 담고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두 저자가 각각 어떤 글을 썼는지 표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인데, 읽으면서 주언규 피디보다는 신영준 님의 분량이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짐작된다(글 속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나 전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서 미루어 보면). 주언규 피디의 이야기도 궁금한데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는 것이 아쉽다. 이 부분에 좀더 신경을 써서 편집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신영준 님은 '신박사 tv'라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는데 이분의 영상도 한번 보고 싶다. 공학박사이기도, 전 삼성디스플레이 개발실 책임연구원이기도 하셨다고. 다른 책들도 쓰셨다니 궁금해진다.


연습 없이 살아가야 하는 매일매일. 하루를 살아도 지혜롭고 산뜻하게, 그리고 즐거이 살아가기 위해. 혹은 마음이 흐리고 진창에 빠진 것 같은 날에는 그저 안온한 위안을 얻기 위해.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책읽기가 당장 내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못한다 하여도 그저 읽는 순간이 행복하기에, 책은 이미 그 소임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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