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는 사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 Mar 15. 2023

더 글로리, 인간이 만드는 지옥도와 구원에 관하여

<더 글로리>를 보고 나서

*인스타그램에 기록한 글을 옮겨둡니다.


https://www.instagram.com/p/Cpy1NG3v4cr/?igshid=YmMyMTA2M2Y=




*스포일러 있음


더 글로리를 보면서,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이겠구나 싶었다.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지옥도의 적나라한 모습. 누구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비참한 실상. 일그러져가는 연진의 표정은 과연 지옥으로 향하는 자의 얼굴이었다.


동은의 고통과 복수의 고단한 과정을 보며 생각한다. 얼마 전에 읽은 이사야서에서 고통받고 학대당하는 이들을 위해 신원하라고 했는데, 고통당하는 이들의 편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하는 일인가를. 감기에 걸린 친구, 일상적인 불편함을 토로하는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삶의 코너에 몰려 삶과 죽음을 오가는 이의 곁에 선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커다란 부분을 내어주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걸, 동은을 향해 한결같은 마음을 보여주는 여정을 보며 생각한다. 오래 전 작품이지만 만화가 강풀의 <아파트>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을 다뤘던 기억이 난다.


복수는 통쾌하지만 이런 거대하고 치밀한 판을 짜는 것은 현실에서 찾아보기도 계획하기도 어렵다. 폭력의 피해자가 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은보다는 경란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동은은 복수를 향한 집념, 계획과 실행력, 순발력, 심지어 인간적인 매력(미모를 포함한)까지 전부 지닌 희귀한 캐릭터이므로. 그러나 그런 동은도 염치도 수치도 모르는 부모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받고(어머니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야 중단되는) 연진과는 또다른 이유로 일그러진 얼굴로 절규하며 울부짖는다. 마침내 복수를 끝내고도, 복수 전에 이미 복수의 마무리로 계획해놓은 듯, 생을 마감하려는 난간 위에 올라서게 되고.


신은 내 편이 아니라던 동은은 마지막 집주인에게 남긴 편지에서 신의 개입으로 ’좋은 어른‘들을 만났음을 고백한다. 동은 주변에는 잔인한 인간들이 많았지만 보건선생님, 이모님, 성희, 집주인, 그리고 여정과 여정의 부모님 같은 비현실적으로 용감하고 정의로운 사람들까지.


인간이 망쳐버릴 수 있는 세계를 조금이나마 더 낫게 만드는 건 그런 사람들 덕분이겠지. 드라마에서는 동은도 여정도 상처입었음에도 아름다운 존재들로 그려지지만, 실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전혀 입히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는 없다. 살아가는 일이 결국 누군가에게 상처입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웠던 적이 있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노력하지만.. 동은과 여정이 서로에게 100%가 되어주며 구원이 되기를 갈망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또 그에게서 상처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몸짓이 아름답다고 믿는다. 서로에게 100%가 되어주려는 그 마음. 그 노력. 그 눈물겨운 헌신. 그래서 의인은 없으되 하나도 없다는(로마서 3:10) 선언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마태복음 22:39) 가르침을 동시에 주신 것이리라.


인간의 폐허를 직시하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정의와 사랑의 길로 나아가는 것. 말은 쉽지만 삶은 어렵다. 그래도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생각하며 나아가고자 애써야 하겠지. 때로 비겁하더라도 다시 돌이키면서. 엉망인 우리를 위해 주어진 가없는 사랑을 기억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그들이 달까지 가야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