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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Mar 24. 2024

대상포진이라니

나에게도 찾아온 녀석


지난 병가 기간에 쓴 글. 지금은 병가는 끝났고, 지난 금요일에 학부모총회와 수련회 추진위 회의가 있어 출근했다. 내일부터는 다시 본격 출근이다. 컨디션이 여전히 별로이긴 하지만, 감당해야 하는 업무가 많아 더 이상 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올해 미션 중 하나가 꾸준한 운동이었는데, 어떻게 실천해보아야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겠다.


참, 사진은 새학기 출근 첫날 아침에 찍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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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 소홀한 사이 구독자 분들이 100명이 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아,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계속 방치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나는 대상포진에 걸려 있었다.


사실 이미 전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겨울방학 내내, 미리 계획한 여행 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쉬는 날이 없다시피 했다. 맡은 업무가 방학 중에도 계속되는 일이기도 했고, 학년말 예산과 지출을 정산하고 각종 서류처리를 마무리하는 일이 끝없이 고되게 진행되었다.


1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맞추며 깨알같이 적힌 엑셀파일을 들여다보고 수기로 숫자들을 종이에 빼곡하게 적어가며 들여다보고 계산기로 더하기빼기곱하기나누기를 얼마나 두드려보았던가. 어디 물을 데도 없고 행정실 예산 담당 선생님께 물어물어 도움을 받아 겨우 일 년치 숫자를 맞추어 정산시스템에 입력하고 나이스에도 입력하고 요청된 자료집계도 제출했다. (같은 내용을 어째서 세 가지 루트와 서로 다른 양식으로 보고해야 하는지 여전히 의문. 일원화해주면 참으로 좋을 텐데)


내가 맡은 일은 방과후 업무였는데(이 외에 다른 일도 있지만 이것이 가장 굵직한 일), 작년 2학기에 투입된데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여러가지로 헤매며 여기저기 묻고 알아보면서 처리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로서는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 그것이 나의 교사로서의, 공무원으로서의 양심이고 덕목이며 가장 중요한 정체성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최선이라 여겼다.


방학중에도 방과후수업은 계속되어 여러 수업을 관장하고 안내하고 강사비를 품의하는 등 서류작업을 마무리했다. 학부모님들 민원전화도 받고 여러 선생님들과 소통하면서 일을 처리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우리학교 너무 성실하고 센스 넘치는 코디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정말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이 자리를 빌려 선생님께 진짜 너무너무나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진짜 너무 최고세요!!)


그러던 중 학기말에는 인생 처음 찾아온 A형 독감, 방학중에는 심지어 중이염이 찾아왔다. 의사샘이 어른들에게는 잘 찾아오지 않는 병이라고... 아이들이 주로 걸리는데 많이 피로했던 모양이라며 여러가지로 처방도 해주시고 치료에 필요한 팁도 주셨다.


그렇게 2월 28일까지 마감해야 하는 업무를 모두 끝내고, 나는 새학기를 담임교사로 시작하게 되었다.


성격상 뭐든 대충 하는 게 안되는(?) 사람이라 담임 업무 시작을 앞두고 이것저것 준비하고, 2월에 수업을 위한 자료들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3월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이런 컨디션으로 바로 새학기에 투입되어도 괜찮은 걸까‘ 하는 우려가 있기는 했지만 다행히 3월 초 바쁜 시즌에고 불구하고 여러 좋은 선생님들과 또 착하고 어여쁜 학생들 덕분인지 순항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아차, 지지난 주말 몸살이 찾아오는가 싶더니 슬금슬금 몸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얼굴에 뭔가 뾰루지가 나는 듯 한데 평소랑 다르게 너무 간지럽고 모양이 길쭉하게 번져가는 것이 아닌가. 최근 남편이 2월에 대상포진을 먼저 겪기도 했어서 내 얼굴을 보더니 바로 병원에 가보라고, 몇 번이나 당부를 하는 거다. (남편은 처음에 대상포진인 줄 모르고 여기저기 병원에 다니다 나중에 진단받아 증상이 심했다)


학교에 가서도 이미 대상포진 경험이 있는(ㅠㅠ 왜 이리 교사들 유경험자분들이 많은 건가요ㅠㅠ) 선생님들이 모두 빨리 병원에 가보라 조언하셔서 그날 바로 병원을 예약해서 가보니, 참으로 예감은 틀리지 않은 것인지 어김없이 대상포진이 맞단다.


의사샘 말씀이, 영국에서는 대상포진 증상이 있어도 사례가 별로 없어 진단도 못 내린다며(실제 그런 환자분이 있어 한국 와서야 진단 받았다고), 원래 60대쯤 되어야 걸리는 병인데 한국에선 젊은 사람들이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과로해서 많이 걸린다며 너무나 통탄해하셨다(나보다 더더 안타까워해주심). 그러면서 얼굴로 오면 시신경을 건드려 실명까지 가거나 안면마비가 올 수도 있다며 걱정에 걱정을 하셨다(이때도 나는 뭐가 뭔지 모르는 얼떨떨한 상태. 나중에 검색해보니 정말 무서운 상황이었음).


그러면서 바로 약을 처방해 주셨고, 병원에서 비타민 D 주사도 맞았다. 발진이 눈썹 부분과 눈두덩이 부분(다래끼 흔히 나는 그 부분)에도 있어서 무서운 마음에 바로 안과도 찾아 검진을 받았다. 여러 검사를 받고 다행히 망막에는 아직 침투를 안 했다고 해서 그걸 방지하는 안약 두 가지, 그리고 혹시나 전염됐을 경우 바르는 안연고도 처방해 주셨다.


안약은 하루 4회, 두 가지를 5분 간격으로 넣게 되어 있어 타이머를 맞춰가며 지키고 있다. 복용하는 약은 얼마나 센지 먹고 나면 어지럼증이 심하고(이게 대상포진 증상인지 약 때문인지는 잘 분간이 안 간다) 구토감도 있어 실제로 구토하기도 하고. 약이 너무 센가 싶어 진통제를 하나 빼고 먹어봤더니 온몸에 통증이 심해 다음 텀에는 다시 진통제를 먹기도 했다.


그렇게 이번 주는 병가를 내고 쉬고 있다. 병가를 내기 위해 여기저기 연락드리고 설명하는 절차가 언제나 그렇듯 참 쉽지만은 않다. 업무 담당자로서는 빠지는 사람 때문에 그 자리를 메꾸기 위해 여러가지로 애써야 하는 상황이 되어 힘드실 것이 예상되어 참 마음이 불편하다. 안 아프고 건강하게 출근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이 몸뚱이가 참 그간 너무 무리를 했나보다.


이제는 정말 몸을 제대로 돌볼 때인가보다, 하고 친한 샘께 이야기하니 복귀하면 건강해지는 방법을 하나하나 같이 찾아보자고 너무나 스윗하고 따뜻하게 말씀해주신다. 기프티콘 보내주시며 기도문까지 적어 보내주신 너무나 따뜻한 선생님도 계시고, 걱정말라며 격려해주시는 우리부서 부장샘께도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병가 맘편히 내도 된다며 뭐든 필요한 걸 기탄없이 말해달라는 부담임샘도 감동. 이분들께 감사해서라도 약 꼬박꼬박 잘 먹고 얼른 나아서 건강한 몸으로 보답을 해야겠다!


그리고 자리 비워 미안한 내새끼들, 우리반 아이들에게도. 좋은 선생님으로 곁에 있어주고 싶은데 시작부터 이렇게 되어 너무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도 회장 부회장을 잘 뽑아놔서(?) 조금 마음이 놓이긴 하지만..


일련의 진단을 받으며 느끼는 것은, 사람은 쉬어줘야 할 때 정말 잘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몸의 소리에 제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더 큰 쓰나미로 올 수 있다는 것. 의사샘도 그러셨다. ‘젊은 사람이 대상포진에 걸렸다는 건 몸이 제발 쉬라고 말하는 거라고’. 그런데 나는 쉬면서도 이상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학교 업무 관련샘들을 불편하게 할까봐, 자리를 비워 누를 끼칠까봐. 한편으로는 아프면 쉬는 게 맞는데 지나친 모범생 컴플렉스는 아닐까 싶기도 하면서도 병가를 위해 여기저기 연락하고 통화를 하면서 편치 않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네. 이 불편함을 겪고 싶지 않으면 건강이 답이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그리고 삶이라는 것이 어디 직진이기만 하던가. 그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생의 부리에 걸려 넘어진 이에게 서로 너그러워지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길인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나 말고도 많은 선생님들이 격무에 시달리며 너무나 분투하고 있다. 업무는 갈수록 편리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학생 수는 줄고 있다고 하지만(일단 우리 학교는 지원자가 많아 이미 포화 상태) 학급당 학생 수는 좀처럼 줄지 않고 담임이든 비담임이든 교사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업무는 신규 때 이래로 꾸준히 늘어온 것 같다.


교과교사만이 아니라 행정실샘들, 영양샘들과 조리사 여사님들, 주무관님 등 모두가 애쓰고 있는 구조다. 그런데 다들 한 모범생 하는 사람들이라 꾸역꾸역 주어진 일을 어떻게든 애쓰며 해내고 있다. 특히 신설인 우리학교는 그 중에서도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그런지 더더욱 열심인 분들이 많다.


아... 그래서 대상포진에 걸린 분들이 다른 곳보다 더 많은 것인가(교직원 60여 명 중 개교 이래 벌써 내가 네 번째다). 모두들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귀한 열정을 가진 분들이 과로와 스트레스로 소진되지 않으시기를. (이라고 쓰지만 늘 열심이신 몇몇 분들이 떠오른다. 소중한 선생님들 건강하셔야 해요.)


+진통제의 여파로 침대에 넉다운되어 핸드폰으로 의식의 흐름대로 쓰르륵 쓴 글이라 러프합니다. (그런데도 말이 많네) 앞으로 회복하면 좀더 생생한 글을 써보도록 노력할게요! 긴 글 읽어주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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