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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ysu Nov 04. 2020

우주를 유영하는 밤, 슬픔은 속닥거린다.




                           

   전주 시외버스 정류장이었다. 전주 고속버스 터미널과 전주 시외버스 터미널을 혼동해 헐레벌떡 달려온 뒤였다. 숨을 몰아쉬며 손목을 돌려 시계를 봤다. 6시 20분이었다. 버스 출발은 6시 30분. 안도의 한숨과 뛰어오며 차오른 숨을 뭉텅이로 쏟아냈다. 이제 초겨울이 올 것이라는 양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달리며 체온이 올라갔는데도 목덜미가 시렸다. 몸을 바람에 떠는 나뭇잎들처럼 파르르 떨며 의자에 앉았다.      




   그때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문을 밀며 나오고 계셨다. 다소 힘겨워 보이셨다. 문을 잡아드리고 다시 의자에 앉자, 할머니가 고맙다며 고갤 끄덕거리셨다. 나도 겉으론 민망해하고 속으론 뿌듯해하면서 어깨를 좁혔다. 둘 사이의 미묘한 움직임이 그치고 막이 내릴 줄 알았는데, 제2막이 연달아 시작되었다. 할머니가 손을 펼쳐 보인 것이다. 엄지와 검지를 잇는 부분이 갈라져 피가 말라 굳어있었다. 날씨가 건조해지면서 손은 갈라지고 지팡이를 짚다 결국 살짝 찢어진 듯했다. 그 순간, 소소한 슬픔이 밀려왔다. 메마른 손에 쥐어진 메마른 휴지. 배웅하는 이 없는 버스 정류장. 문을 열어주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아픔을 펼쳐 보이며 의지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슬픔이.      



   곧장 화장실로 갔다. 휴지에 물을 묻히고 상점에 들렀다. 대일밴드를 카드로 계산하려다 현금으로 계산했다. 아주머니가 나야 좋지, 하며 1,500원을 거슬러줬다. 갑자기 현금을 주고 거스르는 과정이 카드보다 5초 정도 더 걸린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시간을 인지하고 몇 시인지 자동으로 손목을 돌려 시계를 확인했다. 6시 25분이었다.      




   할머니는 분홍색 재킷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계셨다. 파마가 살짝 풀린 옆모습이 추위에 지친 다람쥐 같았다. 다람쥐들은 월동 준비를 잘하고 있을까, 누가 또 도토리를 마구 주워가진 않았을까. 걱정하며 할머니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할머니가 고갤 들고 나는 손을 잡았다. 찢어진 부분뿐만이 아니라 손 마디마디가 굵고 부어 갈라져 있었다. 지문은 나무껍질 같았다. 가뭄에 마른 논밭 같기도 했다. 또 조금의 슬픔을 마음에 담으면서 물에 젖은 휴지로 피를 살살 닦아 냈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아주 작아서 바람에 밀리는 호수가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웅얼거리지만 소란스럽진 않은, 웅덩이에 빗방울이 튀길 때처럼 퐁퐁하며 속삭이는 것 같은 소리. 할머니는 그 목소리로 고맙다고, 연신 고맙다는 소릴 했다.      




   대일밴드까지 붙여주고 할머니 가방에 대일밴드를 넣었다. 할머니가 손을 느릿하게 저으시며 작은 주머니의 지퍼를 열었다. 5,000원이었다. 완강히 고갤 저으며 할머니의 손을 밀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어딜 가냐고 물었다. 대구에 간다고 했다. 대구? 대구…. 대구? 하며 연신 물어보시다가 몇 시에 가냐고 물었다. 6시 30분이요 하며 손목시계를 봤다. 6시 29분이었다. 화들짝 놀라 고갤 들자 방송이 흘러나왔다. 시골 이장님처럼 마이크에 대고 후후-불고 아아-하며 걸쭉하고 까끌까끌한 중년 남성이 볼륨을 체크했다. '6시 30분 예정이던 버스가 길이 막혀서, 에, 늦어지고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하고 능숙한 태도로 말했다.      




   안도하는 사이 내게 할머니가 표를 내미셨다. 진안, 이라고 적혀있었다. 6시 30분 행이었다. 진안? 내가 탈 버스 옆자리 버스였다. 하품을 하시다가 내가 달려오자 자기 버스가 아닌 옆의 버스라고 알려준 기사님의 버스에 떡하니 적혀있었다. 진안, 6시 30분. 할머니는 너는 대구 가니, 나는 진안이라는 곳으로 가. 하는 듯 순진무구한 눈이었다. 이번엔 소소한 슬픔과 조그만 슬픔을 넘어 울컥하는 슬픔이 찾아왔다. 내가 이곳으로 헐레벌떡 오지 않았다면, 걸어와 할머니의 문을 잡아드렸던 우연을 마주치지 못했다면, 혹여라도 누군가에게 외면당하는 슬픔을 겪었다면, 이 순순하고 동그란 어깨는 어떻게 하나. 손에 말라서 굳은 피는 어찌하나. 거친 손에 대일밴드는 언제 붙이나. 버스를 놓쳤으면..... 



   할머니의 손을 잡고 버스로 가 기사님께 표를 보여드렸다. 내가 탈 버스가 도착했고, 할머니가 탄 버스는 출발했다.





                     

     





   나는 내가 왜 조그맣고, 소소하고, 울컥하며 슬픔을 느꼈는지 돌아오는 버스에서 곰곰이 고민했다. 버스 안은 불빛 하나 남기지 않고 기사님의 손가락 움직임에 의해 암전되었다. <한나 아렌트의 생각>(김선욱 저, 한길사 엮음)에서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참고 견디며 들여다보는 가운데 이해를 추구해야 한다고, 일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진행되었는지 체계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고 아렌트는 말한다.”(67p) 고 한 것처럼 나는 슬픔을 들여다보았다. 이 시간은 ‘나’라는 정치 시스템에서 슬픔이 독재 권력을 행사하려 할 때 저항할 힘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슬픔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슬픔의 독재에 행동하지 않는 내가 문제가 될 수 있기에. 나는 고민했다. 왜 마음이 아렸을까.      




   나는 할머니의 슬픔을 알아차린 것이다. 아프고, 춥고, 외롭다는 슬픔을. 나도 아프고, 춥고 외로웠던 슬픔을 아는 사람으로서. 슬픔이 슬픔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때 나는 ‘안다’라는 지식 차원을 넘어 ‘이해’하고 행동했다. 굳은 피를 닦으며, 손을 잡고 버스를 태우며. 자꾸 슬펐던 이유는 내가 그 슬픔과 연결된 아픔과 추위와 고독을 버리거나 없애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나라는 책장에 책자로써 꽂아두었고 도서 부록에 남아있다는 흔적이기도 했다. 혹여 과거에 내가 슬픔을 외면하기 위해 불태워버렸다면. 이기기 위해 짓밟았다면 할머니의 손을 닦아 드릴 수 있었을까. 앉은 자리에 발목 부근에서 히터가 나오고 있었다. 할머니의 발목도 따뜻했으면. 집에 잘 도착하셔서 히터와 가을바람에 건조해진 몸을 씻고 푹 쉬시길. 고단한 여정을 풀고 단잠을 이루시길. 슬픔이 뒷좌석의 여자들처럼 속닥거렸다.               










   고속 도로엔 전봇대가 하나도 없었다. 버스 안팎으로 어두웠다. 문장 그대로, 어둠을 달리고 있었다. 맨 뒤 자석에선 여자 세 명이 놀며 조용히, 조금 소란스럽게 웃었다. 나는 뒤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의자를 젖혔다. 커튼을 열자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마주했다. 그렇게 많은 별을, 나는 열두 살 때 이후로 처음 봤다. 도시의 빛은 항상 별빛을 삼켰다. 몇억 광년을 날아온 빛이 보이지 않을 만큼. 더욱 환해지고 밝아졌다. 그러나 어둠을 누워 달리는 나는 지금 우주에 있었다. 긴 여행을 마치고 지구에 닿은 빛을 만나 비로소 어둠을 달리는 것이 아닌 우주를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황홀함을 품고 슬픔이라는 책 귀퉁이에 메모했다. 2020년 11월 3일. 우주를 유영한 밤. 피를 닦은 밤. 손을 잡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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